23년, 팀을 옮기게 된 이야기
2023년 봄,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대리라는 직급을 달고, 나름 팀에 필요한 일을 하고 있었고, 반복되는 업무 방식에 적응되어 나름 적당히 일하면서 편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이렇게 대기업에 다니면 평범한 일상을 그냥저냥 보내게 된다.
하지만 외부는 변화가 계속되고 있었다. 외부 환경에 맞춰 조직 변경이 계속 일어났다. 올해도 큰 조직변경이 예견되어 있었고, 우리 사업부 또한 마찬가지였다. 거의 매년 연례행사식으로 조직변경을 하는 것에 비해 내 업무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기에, 조직변경에 대해 무뎌져 있었고, 이번에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달랐다. 나에게 직접적인 변화가 찾아왔다.
4월 즈음, 아는 선배랑 우연히 커피를 마셨는데, a라는 팀에서 내 얘기가 몇 번 나왔다는 것이었다. a팀은 내가 같이 일하는 팀이긴 한데, 왜 내 얘기가....? 실상은 이랬다. 실장님이 a팀 보고를 받는 와중에 a팀과 같이 일하는 담당자가 나라는 얘기를 듣고, 내 칭찬을 한 것이었다. 나름 높은 분이 칭찬을 한 터라, a팀 사람들에게서도 내 얘기가 나왔나 보다... 하지만 현재 있는 팀이 너무 좋아 당시에는 별 생각이 없었고, 마음 한 켠에 고민을 남겨둔 채 자리를 나왔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까? 이번엔 갑자기 실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현재 업무에 대해 이야기하다 실장님께서 "홍홍 씨랑 같이 일하고 싶어 하는 몇몇 팀이 있다. 홍홍 씨도 이제 대리면 회사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존재이고, 스스로에게도 중요한 시기이니 본인 커리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결정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좀 막연했다. 예상되는 팀은 있었지만 정확히 무슨 팀인지도 몰랐다. 그리고 또다시 무뎌졌다. 나는 회사가 삶의 전부가 되어선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생각으로 보면 지금 팀은 나에게 최적이었다. 적당한 업무량에 같이 일하는 팀원들도 너무 좋은 사람들이었고, 고과도 사실 어느 정도 잘 받을 자신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또 속절없이 흘러갔다.
그리고 2주가 지나 실장님이 나를 또 불렀다. 전체 조직변경이 구체화돼서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고. 결정을 못하고 있는 나에게 실장님이 이번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었다. 나를 원하는 팀과, 이번 조직변경으로 인해 바뀌게 되는 팀 업무 등 상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 설명을 듣고 생각이 많아졌다. 현재 팀에 남아도 결국 내 업무는 바뀌게 되는 것이었다.
사실 회사에 들어온 뒤로, 내 업무는 거의 매년 계속 바뀌었다. 나름의 정해진 업무 분야에서 도메인 지식을 가지고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학생때 했던 것과 다른 일을 하고 있고, 그 일 자체도 도메인이 계속 바뀌었으며, 이번 조직 변경으로 또다시 바뀔 예정이었다.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고 싶은 나에게 이런 변화는 별로 탐탁지 않았다. 그러고 나서 a팀의 장단점을 비교해 보았다. a팀의 믿을만한 지인에게도 연락해 나름의 정보를 얻고, 혼자 며칠 동안 고민을 했다. 그리고 마음에서 시키는 대로 결정했다. 실장님께 a팀으로 가고 싶다는 메일을 썼다.
내가 a팀으로 가고 싶다는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a팀 업무가 내가 관심 있어하는 업무인 것, 특정 분야의 도메인 지식을 쌓아 전문성을 키우고 싶다는 것, 그리고 그 도메인이 쌓이고 학생 때 했던 분석 쪽으로도 연계하고 싶다는 것,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대리'라는 직급은 아직은 안정보다는 도전을 해야 하는 시기란 생각이 들었고, 30대 초반은 아직 배워야 하는 시기라는 것이었다.
누구나 느끼는 것이지만, 회사를 다니고 나이가 들어가면 '도전'보다는 '안정'을 택하게 된다. 사람 습성이 혹사보다는 안락함, 편안함을 추구하고, 지켜야 한 가정이 있고 본인 노후를 생각하면 당연히 '안정'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갈수록 새로운 환경에 대한 도전의 기회는 점점 멀어져 간다. 대기업 직장을 다니다 보면 다들 비슷하다.
나의 선택이 각 조직장들의 귀에 들어가고, 몇몇 조직장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의 생각을 다시 한번 물어보았고, 나름 아쉬움을 표현하는 분들도 계셨으며, 한편으로는 나의 선택이기에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계셨다. 그중에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조직장 들은 나의 선택에 대해 존중해 주었고, 응원해 주었다. 특히, 나보고 지금 업무만 하기엔 아까운 사람이라고, 가서도 잘할 거라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계셨는데 진심으로 나를 대해 주셔서 감사했다.
반대로 a팀으로 가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현재 팀에서 필요한 존재이고, 같이 일을 하고 싶다고. 원하는 업무를 할 수 있게 해 주겠다는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한 사람도 있었다. 하기 싫은 업무를 해서 a팀으로 가겠다는 것도 아닌데.... 나는 a팀으로 간다는 발언을 하지 않았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고, 소문도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반대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가 이 팀을 떠나야 한다는 이유가 더 명확해지는 것 같았다.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할 때, 여러 찬성과 반대를 동시에 듣게 된다. 다양한 의견을 참고하는 것은 좋지만 흔들리지 않는 소신이 필요하다. 사람은 각자 개인의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에, 선택에 대해 각자 자기의 입장에서 다른 의견을 낸다. 그 반대 때문에 시작조차 안 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시간이 흘러, a팀으로 결국 이동하게 되었다. 신입 때 처음 팀에 배치된 기분 같았다. 애초에 업무가 많다는 걸 알고 들어와서 배워야 할 게 딱 봐도 많아 보였다. 하지만 걱정보다는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것 같다. 물론 여기 문화와 환경이 나랑 안 맞을 수도 있다. 업무가 괜찮아도 사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좋지 않으면 힘들 수밖에 없다. 또한 이 분야에 대한 기대를 갖고 있더라고, 현실을 많이 다를 거라 예상한다. 원래 선택과 결정이라는 것은 단지 시작점에 불과할 뿐이고, 그 시작과 끝 사이에는 온갖 좋은 운과 나쁜 운,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결과는 예상치 못한 곳으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그래도 내가 선택한 것이고, 정답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기에 후회는 하지 않으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생각보다 회사에서 '기회'라는 것은 잘 찾아오지 않는다. 시키는 일을 그냥 하는 곳이기 때문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끌려가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나 역시 지금까지 다 그랬었다. 하지만 이번엔 '기회'가 나를 찾아왔고, 그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냥 내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일을 한 것뿐인데, 나에게 기회를 주고 나란 존재에 대해 그래도 좋게 생각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예전 취업 준비 시절에 자소서를 쓰면서 "학생으로 남고 싶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곤 했다. 세상에는 배울 것이 많은데 직장에 들어갔다고, 나이 들었다고 다 끝났다고 배움이라는 것을 멈추면 사람이 무료해지고, 순식간에 늙어갈 거라고 생각했다. 5년이 지난 시점에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역시 세상에는 배울 것이 너무 많다. 오히려 5년 전의 시야보다는 현재 시야에서 바라볼 때 배울 게 더 많은 것 같다. 5년 후에는 또 더 많아지겠지... 나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도전'보다는 '안정'과 '편안함'을 추구하면서 살 것이고, 점점 보수적으로 바뀔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