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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철 Aug 11. 2019

소녀의 야채가게 체험 이야기

진로교육, 새로운 상상을 위하여

최근 몇 년 사이 진로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학생들이 지역사회로 나가 직업체험을 하는 기회가 많아졌다. 그 어느 때보다도 학생들이 학교밖으로 나가 많은 체험을 하고 있다. 그런데 곳곳에 일터가 있지만 마땅한 체험처를 찾는 게 그리 쉽지만은 않다. 학생들이 원하는 곳을 찾으려면 더 힘들어진다. 멋드러진 체험처를 찾다보면 더욱 그렇다. 모지역의 장학사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자녀의 진로체험 수요조사를 했는데, 가장 많이 나온 응답이 의사체험이었다니, 흔히 말하는 수요자 맞춤형 직업체험 프로그램 운영이란 게 가능할리 만무하다. 하지만 멋지지는 않지만,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직업인 멘토는 생각보다 많다. 직업에 대한 우리들의 흔한 기대치는 늘 현실성을 넘어서서 수요자 요구에 맞춘다는 건 아예 가능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늘 기대한 대로 꿈꾸는 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의 교훈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인생은 미스매칭이다. 직업체험도 그렇다. 게다가 직업세계의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니 미스매칭은 불가피하다. 아예 미스매칭을 전략으로 삼으면 어떨까?


직업체험, 직업보다 사람이다.


한 소녀의 직업체험기를 소개할까 한다. 소녀는 직업체험에 대한 나름대로의 기대감이 있었다. 멋진 예술가나 엔지니어를 꿈꾸었을까? 직업체험하면, 멋진, 엣지있는 그런 직업을 꿈꾸기 마련이니까. 야채가게 아주머니가 진로멘토로 학교를 찾았다는 얘기나 야채가게를 체험처로 섭외했다는 얘기는 좀처럼 들어보기 힘들다. 총각네 야채가게 얘기는 유명세를 좀 탔지만, 대박난 젊은 사장의 이야기이라 평범한 야채가게 얘기는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전통시장 한 모퉁이의 야채가게는 대체로 마음이 가지 않는 게 대부분 소녀들의 정서일 게다. 체험처를 애타게 찾아다니면서 야채가게에 들러 ‘멘토되어 주실래요?’라고 말 걸기보단 그냥 지나쳐 버리는 것이 흔한 풍경일 것이다.


소녀도 야채가게에 보내질 거라곤 생각지 못했던 모양이다. 어떤 연유로 소녀가 야채가게 체험을 하게 된 것인지는 모른다. 여튼 소녀는 내키지 않았다. 왜 내가 여기에 와 있어야지? 야채가게 아주머니도 뭘 해야 할지 모른 채 멘토가 되어 주신 듯하다. 소녀의 입은 댓 발 나왔다. 짜증 섞인 흐느낌. “흐.” 이게 야채가게 진로체험기 첫 번째 막의 분위기였다. 야채가게 아주머니는 그저 야채를 팔고 있었을 뿐이다. 짜증으로 가득찬 아이에게 뭘 가르치겠나, 꿈 많은 소녀에게, 너 야채 한번 팔아볼래? 씨알이 먹히겠나? 그냥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그 날은 아주 추운 겨울이었다. 소녀가 그 때까지 본 것이라곤 그저 아주머니가 야채를 파는 일 뿐이었다. 둘 간에 말도 없이 시간은 가고, 점심 때가 되었다. 야채가게 앞 노점상 할머니는 늘 도시락을 싸오시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추운 날엔 도시락이 얼어버린다. 야채가게 아주머니는 할머니의 도시락에 따뜻한 국물을 부어주었다. 그 장면 때문에 소녀의 마음도 다소 풀린 모양이다. “흐흐”. 마음이 움직였다. ‘아. 할머니의 언 도시락 따뜻해졌네. 소녀의 마음도 따뜻해졌다.’


멋진 체험은 겉보기에 멋진 곳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직업체험이랄 것도 없는 체험이 끝나가고 있었다. 소녀와 아주머니는 딱히 주고받은 말도 없었다. 아주머니는 손님들한테서 받은 지폐를 두꺼운 책 사이에 넣어두고, 거스름돈을 줄 때는 거기서 다시 꺼내서 주었다. 소녀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것이었다. 그날의 직업체험이 끝나갈 무렵. ‘얘, 오늘 내가 너한테 뭘 가르쳐야 할지, 뭘 가르쳤는지 모르겠다. 근데, 내가 왜 손님들한테서 받은 돈을 이렇게 펴는지 아니?’ ‘손님들은 대개 나한테 지폐를 구겨서 줘. 그러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 기분이 되게 나빠. 그래서 난 손님들이 기분 나쁘지 말라고 돈을 펴서 주는 거야. 그냥 그거야. 내가 너한테 뭘 가르쳐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어. 이게 다야.’ “흐..흐..흐” 소녀는 그날 저녁 마음 속의 감동을 후기로 남겼다. 소녀의 부모도 아이가 야채가게에 보내진 게 내키지 않았을 게다. 하지만, 아이의 후기를 보고 부모의 마음도 따뜻해졌다.


이 얘기는 학생들에게 체험처를 제공하는 모기업 본부장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다. 본부장은 체험이 끝난 후 마무리로 소녀의 야채가게 체험 얘기를 들려준단다. 직업체험은 말이야 ‘어른들은 이렇게 산다’라는 걸 체험하는 거야. 어수선해진 진로체험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들에게 꽤 먹히는 마무리란다.


직업체험의 첫 발은 인생체험으로도 족하다. 아무리 멋져 보이는 직업이라도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크게 남을 게 없다.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반드시 감동까지는 아니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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