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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철 Feb 13. 2021

엔지니어링 센스 그리고 상상력

경험하는 인간, 호모 익스피리엔스(Expiriens)

나는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했다. 어려서부터 과학을 좋아했고, 만들기를 좋아했던 나는 공학수업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밤새 실험실에서 실험을 하고 뭔가를 발견해내는 희열을 만끽하는 그런 꿈. 그런데, 그런 건 꿈에 지나지 않았다. 공학도에게 주어진 많은 시간은 공식을 외우고, 열심히 공학문제를 푸는 일로 채워졌다. 중간시험과 기말시험 말고도 수시로 퀴즈시험이 있었다. 한번은 퀴즈시험을 자주 보게 하는 어느 교수님이 출제한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퀴즈문제가 과거 한 시점의 족보에서 그대로 출제됐던 게 발단이었다. 족보를 공부하지 않은 학생들이 불공평한 처사라며 재시험을 요구했다. 결국 이 요구는 받아들여졌다. 교수님은 재시험을 치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중요한 것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과거 한 시점의 족보에서 문제를 그대로 낸 것에 대한 변명치곤 궁색했다. 그리고 나선 또 이렇게 말했다. ‘공학도에게 필요한 것은 엔지니어링 센스야.’ 이 말에는 귀가 솔깃해졌다. ‘엔지니어링 센스라!' 이 의미심장한 말은 나중에 교육학자가 된 이후엔 더 의미있는 말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그 교수님은 늘 푸는 데 정신이 팔리게 하는 분이었으니 이 말도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진정 엔지니어링 센스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교수님은 따로 있었다. 이 노교수님은 매일 수업 전에 퀴즈문제를 칠판에 적었는데 퀴즈문제들은 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색다른 것들이었다. ‘당신은 100기압을 느껴보았는가?’, ‘당신은 4차원을 느껴보았는가?’, ‘부정형의 종이의 넓이를 자와 칼과 저울만을 이용해서 구하시오.’ 이런 식의 문제들이다. 공식을 외우고 문제를 풀던 다른 수업과는 너무나 달랐다. 바깔로레아에 나올 법한  문제들. 하지만 에세이를 쓰라는 것이 아니라 공학 지식을 활용해서 답하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엔지니어링 센스가 없으면 풀기 힘든 문제들이다. 이런 경험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과학교육은 어린 시절부터 꼬여 있었다. 국민학교 2~3학년 때부턴가 부친이 사다주신 위인전을 한권 한권 읽기 시작했는데,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에디슨과 같은 과학자들의  전기였다(에디슨의 뒷얘기를 들을 수 있는 요즘 같았으면 다른 꿈을 꾸었을지 모른다). 여튼 그때부터 과학자가 되겠노라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과학을 좋아하게 된 건 결코 학교수업때문은 아니었다. 아직도 기억이 생생히 남아 있는 어린 시절 과학교육의 한 장면이 있다. 국민학교 3학년 때. 막 받아든 교과서와 전과(오늘날의 참고서)에서 나는 갖찍어낸 인쇄물의 냄새엔 묘한 끌림이 있다(전과라는 한국 특유의 출판물에 대한 얘기도 흥미로운 주제지만 나중으로 미뤄놓겠다). 막 펴든 전과의 냄새에 이끌려서 우연히 펼치게 된 한 페이지. 시선이 아래로 미끄러져 한 지문에 눈이 닿았다. 오른쪽 본문 칸에는 교과서에 제시된 질문이 나온다. ‘물건은 왜 떨어지는가?' 라는 질문이 있고, 친절한 너무 친절한 전과는 왼편 컬럼에 곧바로 답을 보여준다. 정답은 '중력'. '지구가 물체를 잡아당기는 힘'. 이 친절한 설명은 나의 단기기억 속에 저장된다. 운이 좋았던 걸까? 다음 번 과학시간. 선생님이 질문을 던지신다. 손에 분필을 집어 보이시더니 손을 놓는다. 분필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선생님은 '왜 떨어지지?'라고 물으셨다. 난 전과가 알려준 답을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은 없었다. 지구가 물체를 잡아당긴다? 이건 내 경험 밖의 일이었으니까. 늘 전과가 말해주는 정답은 신뢰할 수 있는 것이지만 나의 경험을 넘어선 추상적인 지식을 설명할 만큼 자신은 없었으니. 한 아이가 손을 들고 대답한다. '손잡이가 없어서 떨어져요.' 반 아이들이 ‘그래 맞아’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듯한 대답이지 않은가? 선생님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니'라고 답하신다. 잠시 후 또 다른 아이가 손을 들고 말한다. '받침대가 없어서 떨어져요'. 이번에도 많은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 저기서 '맞아, 맞아'. 그런데 선생님은 또 다시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나선 어떤 아이도 더 이상 손을 들지 않는다. '아, 역시 중력이 답이구나'. 이제 내 차례다. 손을 들었다. 그리고 '중력이요'라고 말했다. 선생님은 곧바로 응답하셨다. '맞아. 바로 그거야. 중력.' '중력이 뭐지?', '지구가 물체를 잡아당기는 힘이요.' '그래 맞아.' 답을 맞췄다는 뿌듯함이 있었지만, 그 순간은 과학적 상상력이 멈추는 순간이었다. 손잡이가 없다거나 받침대가 없기 때문이라는 우리들의 일상적인 경험에 대해서 선생님은 더 이상 묻거나 토론하지 않으셨다. 대답한 아이들은 더 생각할 기회도 없이 ‘아! 틀렸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은 물체가 떨어지는 이유는 중력이라고 암기했을 것이다.  '넌 지구가 물체를 잡아당기는 힘을 느껴봤니?'라고 나에게 되물었다면 어땠을까?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질문들은 생각해보면 참으로 많지만, 우리들의 과학교실에 그런 여유는 없다. 이렇게 해서 과학적 상상력을 키울 기회는 사라지고, 점점, 더 점점 과학교과는 생각하는 교과가 아니라 암기과목이 되어 갔다. 이 같은 경험이 어디 중력을 배울 때만 이던가? 명색이 과학도였던 나에게 괴짜 같았던 노교수의 질문이 당혹스러웠던 것은 십수년간 쌓인 어린 시절 과학교육의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맞거나 틀리거나 둘 중 하나다.' 요즘은 공학교육센터도 있고 공학교육인증제도 있고 또 교육기자재도 그 때와는 다를테니 나의 공학교육경험이 그저 옛날 얘기에 지나지 않기를 바란다.

몇 해 전 카이스트 이광형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분이 하신다는 '미존(未存)수업'은 과학적 상상력이 없으면 어려운 수업이다. 학생들은 매 수업 때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기술에 대해서 얘기해야 한다고 한다. 참으로 흥미로운 수업이다. 이런 수업이야말로 엔지니어링 센스를 키우는 수업이라고 할만하다. 카이스트 대학원생이나 할 수 있는 수업일까? 앞서 얘기한 중력을 학습했던 나의 어린 시절의 수업도 이런 식의 수업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얼마든지 가능한 상상이다. 뉴튼이 중력 개념을 생각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아이들은 조금이라도 맛볼 기회를 갖지 못한다. 생각할 시간이 없다면 과학교육은 암기과목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중력은 참으로 중요한 개념이다. '물체는 왜 떨어지지?'라는 초등학생 수준의 간단한 질문에서부터 '중력은 왜 생기는 것일까?', '중력이 없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구의 어디든 같은 중력이 작용할까?', '행성의 크기가 크면 중력도 비례해서 커질까?' 등등 수없이 많은 질문이 가능하다. 물체와 물체가 잡아당긴다? 지구가 물체를 잡아당긴다? 이 초경험적 개념이 '중력=지구가 물체를 잡아당기는 힘'이라는 간단한 문장을 암기하는 일로  끝나버린다. 이게 과학교육의 현실이다. 우리의 경험과 감각의 세계를 넘어선 초인지적 초경험적 지식을 머리 속에 구겨넣는 일로 과학교육이 점철되니 어떻게 과학에 흥미를 느끼겠는가? 국제학업성취도평가에서의 높은 과학점수가 무색하게 과학에 대한 자신감은 바닥을 치는 현실은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질문에 당신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다음 중 4차 산업혁명에 적절히 대응하는 교육방법과 가장 가까운 것은 무엇인가?  1. 드론 체험하기, 2. 메이커 스페이스 체험하기, 3. 중력에 대해서 깊이 있게 생각해보기, 4. 3D 프린팅 체험하기. 정답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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