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복수에 대하여.

책 <토니와 수잔> 영화 <녹터널 애니멀스>

by 지인

I. 책 소개


오늘 여러분과 이야기하고 싶은 책은 1993년에 출간된 오스틴 라이트의 스릴러, <토니와 수잔>입니다. 이 소설을 토대로 폴 포드 감독은 제이크 질렌한과 에이미 아담스를 캐스팅해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영화를 2016년도에 만들었고, 같은 해인 제73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기도 있죠. 이에 힘입어 우리나라에서도 무려 소설이 나온지 23년이나 지난 2016년에 <토니와 수잔>이 번역되어 국내에 소개되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출간된 오스틴 라이트 책이라고 합니다.


<토니와 수잔>은 복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갑자기 작가의 삶을 살겠다는 남편 애드워드에게 지쳐 이혼하고 재혼한 수잔에게, 20년이 지난 어느 날 책 한 권과 함께 편지 한통이 도착합니다. 바로 전 남편 애드워드가 보낸 것이었죠. 자신이 쓴 소설이라고, 당신은 늘 나의 가장 좋은 조언자였다고, 당신이라면 이 소설에서 빠진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거라며 읽어보고 직접 만나서 생각을 들려달라는 20년만에 온 전남편의 연락에 무언가에 홀린듯이 에드워드가 보낸 소설을 읽게 됩니다. 그리고 애드워드가 보낸 소설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닌, 자신을 향한 에드워드의 복수라는 걸 수잔이 느끼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독자인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복수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저는 진정한 복수란 내가 복수하고 싶은 대상보다 성공하거나 그 대상을 잊어 내 인생에서 지우는 게 아닌, 상대방에게 나를 각인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복수 소설 3권 - 미나토 가나에의 [고백], 아멜리 노통브의 [앙테크리스타]에 이어 제가 가장 추천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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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저자 소개


먼저 간략하게 저자 오스틴 라이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오스틴 라이트는 1922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하버드를 졸업한 후 신시내티 대학의 영문과 교수로 40년간 재직했습니다. 틈틈히 소설을 썼던 라이트는 1993년 <토니와 수잔>을 출간했습니다. 발표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 후 꾸준히 독자들의 관심을 받으며 증쇄를 거듭했고, 2003년에 돌아가시기 전에는 영화 판권까지 팔려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주로 남녀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미스터리 형식으로 썼던 오스틴 라이트는 <토니와 수잔>이라는 소설은 특이하게 액자식 구성으로 전개해 독자로 하여금 두 가지 이야기를 동시에 읽으며 이입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제목 <토니와 수잔>에서 토니는 애드워드가 수잔에게 보낸 자신의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에 등장하는 남자의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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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소설 구조 - 액자식 구성


그렇다면 액자식 구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볼까요.


액자는 사진이나 그림을 넣는 틀을 말하죠. 소설이 액자식 구성을 따랐다는 건 사진이나 그림이 액자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 안에 또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는 구조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두 가지의 이야기가 한 이야기 속에 있는 거지요. 그래서 핵심적인 이야기는 내부 이야기 그리고 이를 둘러썬 이야기는 외부 이야기라고 합니다.


<토니와 수잔>에서의 내부 이야기는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소설, 즉 애드워드가 이혼한지 20년이 지난 어느 날 수잔에게 보낸 작품입니다.


<토니와 수잔>에서의 외부 이야기는 <녹터널 애니멀스>라는 소설을 읽고 있는 수잔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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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줄거리 - 내부&외부 이야기


-내부 이야기 <녹터널 애니멀스> -


먼저 애드워드가 보낸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에 대해 알아볼까요. 녹터널 애니멀스는 야행성 동물이란 뜻인 동시에 애드워드가 수잔에게 붙였던 별명입니다. 이 이야기에는 토니라는 40대 수학과 교수와 부인 로라, 외동딸 헬렌에게 일어나는 불행한 사건을 다룹니다.


여름 휴가를 떠난 이 가족은 한밤 중의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나타난 괴한 3명때문에 강제로 차를 세우게 됩니다. 교수로 살며 스스로 문명인이라고 자부하는 토니는 그렇기 때문에 폭력은, 갈등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이유 하나로 아내와 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 괴한들의 말에 저항없이 곧이곧대로 따릅니다. 그러다가 결국 이 날 아내와 딸은 강간 살해를 당하고, 토니 역시 숲 속에 버려지고 겨우 목숨을 건집니다.


홀로 살아남은 토니는 해당 사건을 신고하고, 다시 교수로서의 일상을 이어갑니다. 하지만 사건 당시 아내와 딸의 말을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엘리트임을 계속해서 되새기며 그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심한 죄책감과 자괴감을 느끼며 사는 토니는, 문명인이라는 단어에 계속해서 집착하며 정체성과 가치관에 혼란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런 혼란 속에서도 성욕은 사라지지 않는구나, 하고 자조하며 이웃 여자와 제자와 관계를 가지면서소심하고 비열한 자신의 모습에 경멸을 느끼기도 하죠.

그러던 어느 날, 지명수배가 내려져 체포된 괴한 3명 중 한명이 - 나머지 2명을 리드했던 레이라는 남자가, 법망을 피해 풀려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스스로 복수를 하겠다며 자신의 아내와 딸을 강간하고 살해하라고 지시한 남자를 찾아나섭니다. 이런 토니의 조력자로 시한부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보안관의 도움을 받죠. 그리고 레이를 잡는데 성공합니다.


레이를 잡자마자 토니는, 그에게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왜 자신의 아내와 딸을 죽였는지에 대해 묻죠. 재미있어서 죽였다는 레이의 대답에, 그러니 너도 한번 해보라는 그의 도발에 - 토니는 분노는 커녕 전에 없었던 마음의 평화를 얻습니다.


왜냐하면 레이의 대답이 토니를 혼란 속에서 구원해주었기 때문이죠.


그동안 토니는 계속해서 괴로웠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아내와 자식이 죽었는데, 그 이유가 자신이 충분히 그들을 지킬 수 있었던 상황 속에서도 지키지 못했던 현실이 - 그러니까 자신이 저열하고 무식하고 야만적인, 하층민들이나 저지르는 폭력을 행사하고 싶지 않다는 명목 하에 아내와 딸을 지키지 못한 자신에 대해서, 나는 과연 진정한 문명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면 단순한 겁쟁이일 뿐인가 - 에 대해 끝임없이 고민하고 고통스러워 했었거든요.


그런데 재밌어서 죽였다는 레이의 대답을 듣고 여기서 드디어 해방이 된거에요.

왜냐하면 자신은 결코 누군가를 재미 하나를 위해서 죽이거나 폭력을 행사하지 않을테니까요.


역시 이 남자는 제대로 교육 받지 못한 야만인이군, 나는 달라, 나는 엘리트야, 나는 배운 사람이야, 나는 교수야, 나는 상류층이야, 나는 문명인이야'라는 생각을 하며 기뻐하거든요.


그리고 그 행복 속에서 레이를 고통스럽게 죽이는데 성공하고, 결투 중에 장님이 되어 앞이 안 보이는 상황 속에서스스로 강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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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 이야기 - 현실 이야기 / 애드워드와 수잔의 이야기 -

그렇다면 외부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외부이야기는 이런 토니의 이야기를 담은 <녹터널 애니멀스>를 읽고 있는 수잔의 이야기입니다.


애드워드와 수잔은 소꿉친구입니다. 남들이 영화 속 커플이다 할 정도로 부러운 연애와 결혼을 했죠. 애드워드는 로스쿨에 들어갔고, 수잔은 영문학 교수를 꿈꾸며 작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애드워드는 돌연 로스쿨을 그만두고 갑자기 작가로서 살고 싶다면서 문학 전공인 수잔에게 자신의 작품에 대한 조언뿐만 아니라 가정의 경제마저 대신 꾸려달라는 희생을 강요합니다. 수잔은 영문학 교수로서의 삶과 작가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대학에서 강사로 살며 돈을 벌고, 늘 푸념하며 자신보다 실력이 없어보이는 애드워드의 작가 능력을 실랄하게 비판하죠. 그리고 이웃집 의사와 바람이 나고, 그 의사와 재혼을 합니다. 그리고 세 아이를 낳아 평범한 의사 남편을 둔 주부로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어느 날, 자신이 쓴 소설이라며 당신은 늘 나의 가장 좋은 조언자였으니 이걸 읽고 여기서 무엇이 빠졌는지 알려달라고 하는 편지 하나를 받습니다. 그리고 날짜와 함께 여기서 만나 이야기를 해달라는 편지도 전해 받습니다. 기한에 맞춰 애드워드의 소설을 읽던 수잔은 지난 20년간 애드워드의 실력이 일취월장했음을 느끼면서, 동시에 자신이 버렸던 꿈인 작가라는 걸 기억하고 행복할 줄 알았던 자신의 결혼 생활이 사실은 그 반대라는 것을 인지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모습이 그토록 이중적이고 양가적인 소설 속 토니의 모습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소설을 다 읽은 수잔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애드워드를 만나러 가죠. 하지만 애드워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수잔은 소설에 대해 내 의견이 듣고 싶으면 연락하라라는 쪽지를 전하는 것으로 소설이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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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진정한 복수 - 각인


저는 <토니와 수잔>이 복수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복수에 대한 이야기.


여러분은 진정한 복수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어떤 사람들은 진정한 복수란 성공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무관심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복수는 바로 각인입니다.

상대방에게 나를 영원히 새기는 각인.

나와 헤어진 연인이 나를 생각하느라 이후 그 누구와도 온전한 사랑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각인.


그 사람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과 생각에 나의 모든 것이 배어져 있는 것. 나의 전부가 상대방의 모든 것에 녹아 스며들어 있는 것. 그래서 나를 영원히 느끼게 하는 것.그리고 그로 인해 가치관마저 변하는 것. 나를 늘 생각하고 보고 싶어하고 만나고 싶어하는 것. 그러나 나는 만나주지 않는 것. 나를 만나지 못하는 벌을 주는 것. 저는 이것이 진정한 복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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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20년이나 지나서 그동안 연락도 안하고 지냈던 전처에게 자신의 소설과 만나자는 편지를 쓰고 끝끝내 나타나지 않고 연락도 하지 않은 에드워드가 이상하다, 집착이 심하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이상하지 않은 사람은 없고, 상처가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물론 애드워드가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갑자기 잘 다니던 로스쿨을 그만둔데다가 부인인 수잔에게 자신은 글만 쓸테니 밥벌이를 하라며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요했고 실제 수잔은 원하던 교수직과 작가라는 꿈을 버리고 애드워드의 뒷바라지를 했으니까요. 물론 나중에는 지쳐 바람이 나고, 둘은 이혼했지만 수잔의 바람에 애드워드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부부간의 윤리적인 책임이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이분법적인 관계가 아니라 그래서 그렇게 어떤 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고 했을 때, 그리고 그 상처가 몇 십년이 지나도 계속 꼽씹어질 정도로 그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영향을 주는 상처라고 했을 때, 과연 그 사람은 자신에게 이토록 끔찍한 상흔을 남긴 사람에게 어떤 복수를 하느냐 - 그리고 여기서 진정한 복수란, 무엇이냐, 에 대해 저는 이야기하고 싶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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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봤을 때 진정한 복수를 한 사람은 바로 에드워드입니다. 수잔으로 하여금 자신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만나고 싶게 만들었고, 대화하고 싶게 만들었으니까요.


소설 <녹터널 애니멀스>의 토니의 이중적이고 가식적인 모습은, 결국 아내와 딸의 복수보다는 끝끝내 자기자신을 그런 불한당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 환희로 가득 차 사람을 죽이고 본인도 자살을 선택하는 토니라는 남자를 창조해내면서 수잔 역시 토니와 같은 종류의 가증스러운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애드워드가 보낸 소설을 다 읽고 난 수잔은 본인이 내내 인정하고 싶지 않고 회피했었던 자신의 불안한 결혼 생활을 인지하고 인정하게 만들었고, 자신이 작가로서의 꿈을 포기한 이유가 애드워드 때문이라고 늘 말했지만 사실은 그가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독자와 출판이라는 두려움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서 이미 언급한 바지만 - 20년동안 생각도 안하고 오히려 무시하고 있었던 사람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고, 감탄하게 만들었고, 만나고 대화하고 싶게 만들었으니까요. 복수하고자 한 상대에게 '나'를 각인시켜 그의 세상을 비트는 것. 이보다 더 쾌감을 주는 복수가 어디있습니까.


나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나를 만나지 못하는 벌을 주는 복수보다 더 서늘한 복수는 없습니다.




소설 끝에 애드워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나올 필요가 없죠. 아마 처음부터 나갈 생각이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만약 그가 수잔의 그 만나자는 편지를 받았다면, 분명 열어보지도 않고 버렸을 겁니다. 자신의 복수는 완성되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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