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 그 후 이야기 (ii)
2년 동안 있었던 일들.
첫 번째.
무엇보다 러닝을 진지하게 하게 되었다. 지난 6년간 그렇게 혼자 뛰었는데 최근 6개월 안에 풀 마라톤을 2번이나 완주했고 러닝 크루라는 것도 처음 시작하고, 선수 출신 코치한테 러닝 훈련도 받고 있다. 책과 영화는 늘 삶의 중축이었는데 이제 그 안에 러닝이라는 새로운 기둥이 들어와 건강한 삼각관계를 만들고 있다.
두 번째.
과거가 현재를 구원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어렸을 때 나는 구원이란 타인과의 만남으로만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나는 진정한 구원이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으로만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그 구원이라는 것은 반드시 미래에서 현재로 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과거가 나를 구했다. 러닝 글들을 정리하면서 7년 전 내가 썼던 일기를 다시 읽었는데, 그렇게 힘들고 괴롭고 죽고 싶던 순간들에도 살려고 발버둥 치는 게 느껴졌다. 힘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구원받았다. 내가 나 자신한테 구원받는다는 게 이런 뜻이구나 싶었다. 불안과 두려움은 여전하지만 지금은 그 위를 걸을 수 있는 힘이 있다. 육체도, 정신도 마음도. 7년 전 내가 썼던 일기를 보니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원하던 내가 되어 있다.
세 번째.
달리기 책을 쓰고 있다. 원고 펑크가 여러 번 났고 그리고 사실. 과거를 다시 돌아보며 쓰는 게 괴로웠다. 이제 겨우 새살이 돋았는데 다시 쥐어 뜯어 쫘악. 튿어서 벌리는 것 같아 아팠다. 오랜만에 두통, 장염, 하혈, 폭식, 체증을 오가며 악몽을 꾸는 날들이 많았다. 무조건 겪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그래도. 굳이 다시 또 그때의 기분과 스트레스를 몸으로 다시 겪어야 하나 싶었다. 무서움은 여전했다. 몇 십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이 또한 지나가리라던데 안 지나가. 아무것도. 영원할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 도망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어떤 날은 10줄을 쓰는데 3시간이 걸렸다. 어떤 날은 쓰고 지우다가 아무것도 못 쓴 날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다. 쓰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목적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가족과 친구들이 내 생각과 시간을 알기 위해서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나처럼 1km도 못 걷던 사람들이 방문을 열고 다시 웃고 걷고 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혼자가 아니라는 걸 믿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 하나면 됐다. 그리고 만약 나의 지옥이 영원하다면 이제는 그마저도 상관이 없어졌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괜찮다 이 또한 지나가지 않아도.
네 번째.
이 모든 글이 누군가에게는 내 약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괴로웠다. 사랑받고 자란 아이같은 인상을 세상은 원하는데, 내 이야기는 그런 것이 전혀 아니니.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 이젠 상관하지 않는다.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약점으로 보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공감을 사고 함께라는 힘을 주리라 믿는다.
다섯 번째.
지금 당장 하버드나 스탠포드 입학이 더 쉽다고 느껴질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목표가 생겼다.
3가지 꿈이라 이를 위해 내 인생에서 중요했던 3가지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이 중 하나는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라 이 포기들이 앞으로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궁금하다.
굉장히 오래 생각하고 결정했다.
나는 잃을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