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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람지쓰 Aug 19. 2022

장기 육아휴직자의 복잡한 심경

딸에게 보내는 편지, 장기 육아휴직의 유혹과 그늘


출산과 육아를 위해 휴직한 지 2년 5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다. 내 주변에도 공무원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오래 육아휴직을 사용하는 사람은 없다.

어린아이 곁을 지키면서도 소속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감사하지만, 좋기만 한건 아니다.


육아휴직을 연장할지 고민하던 때에, 내 주변은 나에게 아이 곁에 있어주는 게 좋지 않겠냐고

아이의 어린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말해줬다. 한창 육아가 재미있을 때고, 아이가 예쁘기만 할 때고 일하러 가기 싫다는 생각도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망설임 없이 휴직을 연장했다.


아가야, 네가 엄마처럼 육아휴직기간이 고민되면 엄마 사례도 한 번 보려무나.




작년 11월쯤, 회사 선배가 같이 일해보는 건 어떠냐고 러브콜을 보냈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일찍부터 보내고 있었지만 아이가 말을 할 수 있을 때까지만은 곁에 있어주고 싶다고 복직을 유예했다. 내가 원하는 시기에 복직해도 별 어려움 없을 거라고 믿었다.


한 달 전에는 헤드헌터로부터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어느 플랫폼의 특정 카테고리 속에 포함된 이들에게 무작위로 보낸 메일이겠지만 왠지 설레었다. 이참에 10년의 커리어도 정리해볼 겸 자기소개서나 써보자 싶었다.


이 헤드헌터는 책임감이 투철한 분 같다. 1시간도 안돼서 전화를 줬다. 커리어를 인색하게 적은 자기소개서는 차치하고 현업에 떠나 있는 시간이 너무 길다는 피드백을 줬다.


머리가 띵했다.

헤드헌터의 말은 나의 상황을 더 냉정하게 돌아보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휴직을 길게 쓸 수 있던 이유는 많은 이들이 긴 육아휴직제도를 사용하고도 잘 복직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휴직기간 동안 자기 계발을 해서 다른 곳으로 떠나는 이들도 있었다. 나도 향후의 커리어를 선택할 수 있는 포지션일 줄 알았다.


일반적인 경제상황에서도 3년은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금리가 변동되고 새로운 규제가 생기기도 하고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산업의 양상이 변한다.

최근 3년은 코로나19라는 변수로 인해 더 다이내믹한 변화가 있었다.


내가 속한 기업도 다른 기업들처럼 위기에서 살아남고자 주력산업을 재정의하고 조직을 개편했다. 회사를 떠나는 동료들도 많았고 조직도에는 모르는 이름이 많아졌다. 회사는 이제 내가 알던 곳이 아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나는 집에서 경제변화를 인지할 겨를도 없이 아이와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육아가 익숙하지고 나를 돌아볼 만큼 여유가 생겨서 주변을 돌아보니 나만 아직 2019년도에 살고 있다.


현장감 떨어진 거 맞네.




작년에 복직했으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본다.


엄마가 곁에 있고 없고 가 정말 아이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겠다. 우리 아이는 잘 자라고 있다. 소근육, 대근육, 인지능력, 발육 모두 문제없다.

주변을 둘러보면 맞벌이 부부 아래 자라도 잘 자라는 아이도 있고, 전업맘이 키우는 아이더라도 성장 스탯이 평균에 못 미치는 아이도 있다.


1년 전에는 우리 핏덩이가 너무 걱정되었지만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는 21개월짜리 아이를 보니 내가 복직했더라도 아이는 적응했을 거라고 확신이 든다.


휴직 연장은 나를 위함이었다. 만의 하나 내가 복직했는데 아이의 성장이 더뎠다면 내 선택을 원망했을 테니. 커리어를 포기하고(자체평가) “좋은 엄마” 타이틀을 얻었다.


우리 아가가 커리어가 소중한 사람이라면, 아이 걱정하지 말고 법정 육아휴직 기간 내에 복직하면 좋겠구나.


(엄마가 손주를 맡아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네가 비혼 주의자일 수도 있으니 나중에 생각해보자.)




떨어지는 현장감을 되찾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현업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스트레스받을게 뻔한 미래가 보이는데 9월에 복직하나 12월에 복직하나 큰 차이가 있냐 싶어 좀 더 현실에 안주하기로 한다.


기왕 이렇게 된 거 4개월 신나게 놀자.


#육아휴직

#장기휴직

#전업맘

#워킹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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