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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도 넌 내 손바닥 안이니

진짜 사랑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해야>


히어유아가 준비한 아이브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은 4월 29일 발매된 EP 앨범의 타이틀곡 <해야>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이번 작품은 전체적으로 ‘한국풍’을 컨셉으로 하고 있다. 우리는 뮤비의 배경이나, 장신구 등에서 한국 전통의 미학이 아주 잘 드러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아이브 <해야> 뮤직비디오

지독한 활자중독에 걸린 독자를 위한 히어유아인 만큼, 우리 매거진에서는 작품의 한국풍 컨셉을 드러내기 위해 ‘가사’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조명해보려고 한다. 가사에도 한국적인 모티브가 많이 담겨 있다. 우선 특징적인 것은, <해야> 가사 속에서 말하는 이가 한국의 국수(國獸, 먹는 국수 아님) 호랑이로 설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어둠 속 빛난 tiger eyes, 날 감춘 채로 다가가” - 아이브, <해야>


시에서 작가와 화자는 구별된다. 작가가 남성이라고 해서 화자도 남성일 필요는 없고, 작가가 어른이라고 해서 화자를 어린아이로 설정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다. 예컨대, 42세 남성 시인 서정주가 지은 <추천사>의 화자는 16세 소녀 ‘성춘향’이고, 21세의 어른인 김소월이 발표한 <엄마야 누나야> 안에서 우리는 어린 꼬마애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를 확장하여, 화자를 동식물, 나아가 무생물로 설정하는 작품들도 으레 보인다. 이재무의 <딸기>의 화자는 제목 그대로 딸기이고, 아이유가 작사하고 정승환이 부른 <눈사람>의 가사 속 화자는 역시 눈사람이다. 이처럼 화자를 사람이 아닌 대상으로 설정하는 것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경험을 환기한다는 점에서 문학성을 높이는 장치로 종종 쓰인다.


특히, <해야>의 가사는 화자를 호랑이로 설정해 둔 것뿐 아니라, 한국의 전통적인 신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가사를 지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한국인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전래동화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 등장하는 호랑이의 유명한 대사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를 활용해 앙큼하게 써낸


“네 맘 나 주면 안 잡아먹지 right now” - 아이브 <해야>


를 비롯하여, 가사의 전반적인 내용 역시 유명한 한국 설화 중 한 가지를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해야>의 가사는 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결국 그를 삼켜버리는 호랑이의 이야기이다. 신기한 것은 문명권을 막론하고, 해나 달을 물어 삼키는 동물의 설화가 전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한국 문명에서는 어쩌면 한 번은 들어본 적이 있을 <까막나라 불개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먼 옛날 어딘가에, 온 사방이 암흑천지인 나라가 있었다. 까막나라라고 이름한 이 국가는 어느 날 빛을 가져오라는 명령을 ‘불개’에게 내린다. 그러나 해나 달을 물어 까막나라로 가져가려던 불개는 해는 너무 뜨겁고, 달은 너무 차가워 차마 삼키지 못하고 뱉기를 반복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의 조상님들은 이렇게 귀여운 설화를 통해 일식과 월식의 원인을 설명하려고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설화는 이집트 신화의 ‘아포피스’나 북유럽 신화의 ‘스콜과 하티’ 이야기와도 유사한 면이 있다.


‘해를 삼키는 동물’이라는 신화소는 <해야>에서 아이브의 서사에 딱 들어맞는 메타포로서 활용되고 있다. 아이브의 서사의 메인 테마는 ‘자기애’였다. 히어유아는 앞선 두 아티클을 통해 아이브의 나르시시즘적 자기애는 결국 타인에 의존하거나 집착하지 않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사랑으로 발전하는 서사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해야>의 가사 속 해를 삼키는 호랑이의 모습 역시,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소극적이고 방어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동화 속 공주님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쟁취해 내는 신화 속 영웅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탐나는 대상을 얻어내기 위해 공격적으로, 또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적극적인 사랑꾼, 아이브가 다음, 또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계속 기대해 봐도 좋을 것이다.


Editor. 류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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