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티오피아에서 한국인은 대체로 문화 충격이라고 부를만한 일들이 크게 없는 편이다. 대륙이 다르고 거리가 먼 탓에 양국 간 직접 교류는 20세기 말, 한국 전쟁을 통해서야 이뤄졌지만, 깜짝 놀랄 정도로 비슷한 문화가 많다. 에티오피아의 문화는 대한민국의 20세기 말 문화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나라이다. 즉 에티오피아는 집단주의 문화가 아직도 강하다. 대한민국도 최근에서야 달라졌을 뿐 이러한 집단주의 문화의 영향력이 아직도 남아 있기에 에티오피아 문화와의 공통점이 많다.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이지만 필자는 어릴 때 집단주의 문화가 더 강한 시골에서 성장했기에 에티오피아의 이런 문화가 낯설지 않았다. 이번 글을 통해 에티오피아 생활을 통해 알게 된 에티오피아 문화에 대해 공유해보고자 한다.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개인보다는 집단 구성원 간의 공유가 활발한 경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에티오피아 집단주의 문화는 공동체 구성원끼리 서로 친밀감이 크고 그 구성원의 범위도 제약이 없고 포괄적인 게 특징이다. 현재 활동 및 거주하고 있는 지역인 Assela의 경우 지방 소도시이다. 그러기에 시골 특징이 남아있고 그 덕에 상당히 마을 주민 간에 커뮤니티 및 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아직도 대한민국의 농어촌 지역의 경우 마을 주민 간에 관계가 혈연 친인척 관계인 집성촌이 존재하는 것처럼 이 도시도 비슷한 성향을 갖고 있다. 물론 도시 규모가 있어서 전 구성원이 친인척 관계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종교로 서로가 얽히게 되는 구조이다. 즉 주민들 간 네트워크가 굳이 친인척이 아니어도 가능하다. 일례로 필자가 시장에서 정신 이상자에 쫓겨서 근처 상인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왔는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사건에 대해 언급도 안 한 집 주인이 괜찮은지 안부를 물어왔다. 알고 봤더니 그 도움을 준 상인과 집 주인이 지인 관계여서 바로 소식이 전해진 것이었다. 농어촌 지역에서 마을 주민 간 소식이 빠르게 전달되는 것처럼 여기 에티오피아도 상당히 비슷하다.
집단주의로 인한 혈연, 지연, 학연 등 한국 사회에서 자주 비판을 받는다. 에티오피아의 경우도 비슷한 지점에서 여러 비판들이 겹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네트워크의 편익을 많이 얻고 있다. 실생활적인 예로 지금 거주하고 있는 집의 집주인의 경우 집의 유지보수 관련 일들을 혈연을 통해서 처리하고 있다. 그리고 그 덕에 평균적으로 일 처리가 느린 에티오피아지만 집주인이 요청만하면 모든 일들이 한국과 비슷한 속도로 처리된다. 물론 이렇게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빠르게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집주인 내외가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서로 도움을 주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 덕에 세입자인 필자도 편익을 누리고 있다. 이런 상부상조가 특정 집단의 이익 도모에만 전용되기에 혈연과 지연 학연이 비판을 받는 지점이다. 결국엔 정도의 문제이다. 특정 정도만 지킨다면 공익을 극대화하는데 이러한 문화는 일조한다. 하지만 사람이기에 이 정도를 공정하고 공평하게 지킨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리고 그것이 결국 부정부패의 싹이 된다. 집단주의 문화가 부패에 취약하다는 지점을 에티오피아에서도 체감하게 된다.
대부분의 집단주의 문화권이 그렇듯이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문화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행정 업무 일 처리는 Top-Down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즉 대부분의 업무가 과정과 절차 중심보다는 권력자, 리더의 의지 중심으로 업무가 처리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점진적으로 시스템이 개선되고 나아져 업무 처리 절차의 중요성이 행정 업무 전반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하지만 에티오피아의 경우 아직은 부족한 편이다. 한국과 조금 다른 점은 이런 의사 결정 구조의 전반을 책임지는 리더가 나이에 상관없이 능력 중심으로 이룰 수 있는 일정한 개방성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하게 능력 중심주의 사회라고 보기는 어렵다. 리더가 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조건들이 있고 그 리더 선출을 위한 다양한 요인에 의해서 결정된다. 단지 그 조건들 속에 나이만 없을 뿐이다. 조직의 장이 생각보다 젊은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리고 설사 하급자가 나이가 많다 할지라도 조직 운영에 큰 장애 요인이 되지 않는다. 한국도 이러한 성과와 능력 중심의 리더 선출을 노력 하고 있으나 나이는 분명히 아직도 고려 요인에 포함되고 있는 실정임에 비해 조금은 낫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에티오피아를 이끄는 총리의 경우 현재 40대 초반이다. 한편으론 에티오피아는 리더가 나이와 상관없이 될 수 있다고 해서 연장자에 대한 존중 문화가 약한 것도 아니다. 어디서든지 연장자는 존중받는다. 설사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연장자라면 기본적인 예의를 지킬 정도로 나름의 문화가 있다.
에티오피아는 어린이들 놀이 문화도 한국과 상당히 유사하다. 지금 어린 친구들이야 해당되지 않지만, 필자 어린 시절에 했던 구슬치기나 고무줄놀이 등의 놀이를 여기 어린이들은 지금도 하고 있다. 방법이 너무 유사해서 처음 봤을 때는 정말 깜짝 놀랐었다. 어떠한 문화적 접점이 없는 두 나라 사이에서 어린이의 놀이 문화가 이러한 유사성을 띨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서 세세한 규칙을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외형적으로 봤을 땐 정말 유사하다. 에티오피아에 와서 가장 놀란 것 중 하나가 한국과 비슷한 어린이들의 놀이 문화였을 정도로 실제로 보면 정말 놀랍다. 집단주의 문화 속에서 어린이들끼리 협동 놀이를 해야 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되다 보니 쉽게 할 수 있는 놀이가 고무줄 및 구슬을 활용한 것이겠냐는 추측만 가질 뿐이다. 물론 이러한 놀이 문화가 비슷하다는 것도 한국의 오늘날과 비교했을 때는 맞지 않는다. 필자가 농촌 지방에서 성장했기에 경험한 놀이 문화를 도시에서 자란 또래 친구들은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즉 한국에서는 이미 사라져버린 놀이 문화가 에티오피아에서는 아직도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국 간 문화를 보다 보면 집단주의 문화가 인종 및 언어 그리고 종교적 유사성을 넘어서는 일정한 공통점을 형성하게 만들어낸 것이 아니겠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덕에 이 나라 현지 적응 교육 때 문화 수업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보통 타국의 문화라면 어떤 점이 다른지, 차이점에 대한 비교가 늘 기본이었는데 이 나라는 공통점을 찾는 게 더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나라와 공통점이 있는 대부분의 문화는 이미 한국에서는 점차 사라져가는 문화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유사성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에티오피아에 호감을 갖게 만드는 데 나름의 역할을 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이 문화가 한국처럼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호기심도 생겼다. 한국과 비슷한 에티오피아 문화는 여러모로 신기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