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탐구생활

내가 만들어가는 나 사용설명서

by 수수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던 중이었다.

가끔씩 노트에 끄적이곤 했지만, 키보드를 토닥이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그래서 쓰기가 어려웠다. 오랜만이어서.

내 마음속의 갖가지 이유로 지금 이렇게 네 줄을 쓰기까지가 어려웠다.

지금 이렇게 다섯 줄을 쓰는 동안도 여러 번 브레이크를 걸며 멈칫하고, 백스페이스를 누르는 중이다.

그 갖가지의 이유를 다 토해내듯 써보고 싶은데, 무언가가 가로막는다.



그러나 그만큼의 갖가지 이유로 키보드 위에 손을 얹었다.

요즈음 내 마음 안, 스무 살 그날들 언저리, 그 무언가와 조우하고 있다.

그때 내가 가장 많이 했던 일, 내가 나를 만났던 일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기에.


대한민국에서 마흔 즈음이면 마땅히 가져야 하는 것들을 나도 알고 있다. 외면하기에 불안한 마음에 헉헉대며 쫓아보지만, 쫓는다는 말이 무색하게 한참은 먼 곳에 서있는 기분이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고 허우적대면 댈수록 깊은 늪에 빠지는 느낌이라, 모든 것을 차치하고 다시 나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죽었다 깨나도 못하는 것말고, 남들이 죽었다 깨나도 못하는 무엇일까.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딱 하나를 알겠다.

나만이 알 수 있는 것은 '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도 아직 잘 모르지만, 이것은 그 누구도 나보다 더 잘할 재간이 없다. 희망이 있다.



몇 번인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차 창문을 열었고 기분 좋은 저녁 바람이 훅 들어와 내 살결에 닿았던 순간이었다.

내 몸을 빌어 나라는 존재로만 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몸을 빌어 다른 사람의 존재로 살고 있는 사람은 어떤 감정이고,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른다는 생각.

반면 내 몸을 빌어 나라는 존재로 살고 있는 사람은 유일무이 나뿐이므로, 나의 감정과 나의 선택과 나의 방식을 아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생각.

이것은 그 사람이 놓여진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이 바람이 곁에 왔을 때 이만큼의 온도와 느낌으로, 이러한 생각이 드는 것은 나겠지. 나는 다른 사람이 이 바람을 어떻게 느끼고, 이 순간 무엇을 생각하는지 절대 알 수 없지.

이 바람을 이 만큼의 온도와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그 순간의 내가 이만하면 좋았고,

이 존재에 든 것이 이만하면 괜찮고,

이왕이면 이 존재를 잘 쓰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존재를 잘 쓰는 방법은,

무엇을 좋아하고, 잘 하고, 빛나는지 아는 것.

다행히도 이만큼 나이를 먹었기에, 그동안 그것들이 무엇인지는 예전보다는 조금은 더 알겠다.

물론, 아직도 알아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