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오겠습니다."

by 수수한

"다녀오겠습니다."

설거지하는 남편의 등에 90도로 인사하고 길을 나선다.


레깅스에 단색 티셔츠, 그 위에 얇은 아노락 점퍼를 걸치고 슬리퍼를 질질 끌며 한량처럼 걷는다. 가방도 없다. 홀홀 단신 나섰고, 주머니에 푹 꽂힌 폰 하나가 소유물의 전부이다. 아직은 적당히 서늘하여 점퍼가 필요한 여름 저녁 시간. 한낮에 이런 차림의 외출이었으면 뜨거운 태양 아래 내 낯이 더 뜨거워질 판이지만, 살짝이 저문 저녁의 기운은 내 마음도 한없이 풀어지게 만든다. 나와 다른 방향에서 마주치며 오는 그들은 퇴근 후인지 제법 사회적인 차림을 한 모양새다. 이 시간도, 장소도, 내가 가진 옷도 모두 나에게 익숙한 것들이다. 다만 이 세 가지가 한 번에 장착이 되는 순간 더없이 생경함을 가지게 된 것뿐이다. 내 정체 따위는 전혀 가늠할 수 없겠지라는 생각에 낮들의 나와 다른 내가 된 기분이다. 잠시 후 만날 밤들의 나와도 다르겠지.




운동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은 먼 사람이다. 내 근육량을 들으면 다들 깜짝 놀라기에, 준비되지 않은 당신들에게 배려 없는 숫자를 툭 내뱉은 내가 미안해질 정도. 늘그막에 고생하지 말아야지 하는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다소 서글픈 이유로 운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만' 먹었다. 몇 년을 그렇게 마음만 먹었다.


육아를 핑계로 저녁시간에 자리를 비운다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졌다. 공부 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엄마인지라 저녁시간에 내가 봐주어야 한다는 혼자만의 책임감에 사로잡혀, 저녁시간에 밖을 나선다는 것은 꿈도 꾸지 않았다. 하고 싶은 운동도 딱히 없었고, 원래도 집순이인데 저녁에 밖을 나선다는 것이, 그것도 운.동.을. 위해서라니. 안될 말이었다.


그러다가 '과연 내가 저녁에 옆에, 늘, 항상 붙어있는 것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까?' 반문했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걸까. 운동을 해보겠다고 어쭙잖은 홈트를 한 두 번 따라 하다 재미없어 그만두었던 날이었을까. 남편의 커다란 마스크 걸이로 전락한 현관 께에 실내 바이크를 바라보는 죄책감에서 비롯되었을까. 다행히 바이크를 사겠다고 선언했을 때, 절대 옷걸이로 전락시키지 않겠다는 약속만은 굳게 지켰다.

아무도 묻지 않았잖아. 나더러 꼭 저녁에 집에 있어달라고. 내가 만약 한다면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유일한 운동을 무엇일까? 그냥 근처에 그럴만한 곳이 있는지 궁금해할 수는 있잖아. 검색창에 **동 요가라고 써보았다.

한 요가원에서 진행하는 요가의 수는 어찌나 많은지, 그 많은 요가들이 일주일이라는 시간표 아래 정갈하게 담겨있었다. 요가원의 인테리어는 꽤 고급스러웠고 가보지 않았으나 어렴풋 그곳의 향까지 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그곳에서 요가하는 멋진 언니야들의 몸매와 요가복들을 제멋대로 상상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서 허리가 굽혀지지 않는 조그마한 나뭇통 나.


스크롤을 아래로 더 내리다 보니, 어라? 여기에 요가원이 있었나? 싶은 곳에 요가원이 있었다. 대표 전화번호도 없고, 홈페이지도, 블로그도 없다. 당연히 가격도 알 수 없고, 시간표도 없다. 연결된 인스타에는 사진 몇 장뿐. dm으로 물으니 시간은 화, 목 8시 타임만 말하신다.

"나 화요일 목요일 저녁에 요가할까 봐."

그 누구도 동요하지 않았다.

"1달에 12만 원이래. 괜찮지?"

전에 검색해본 필라테스며 요가원들의 가격에 헉소리 났던지라 아무도 묻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을 질문으로 되묻는다. 질문으로 되묻기 전에 내 마음속은 이미 12만 원 나누기 약 8회의 계산을 마친 뒤였다.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않아 월,수,금에는 당신도 운동을 하러 가라고 뭐라도 등록하라고 부추긴다.



가장 믿지 못할 것은 함께 사는 세 명의 박 씨들이 아니라 내 마음이기에 엉덩이를 가릴만한 긴 요가용 티셔츠 두 개를 서둘러 주문했다. 이미 가지고 있는 레깅스는 두 벌이나 있지만 무료배송의 이점을 놓치는 것은 알뜰하고 현명한 주부의 올바른 처사가 아니므로 적당한 레깅스를 하나 더 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드디어 D-day.

요가원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5층에 있었다. 세지 않고 계단을 올랐더니, 과연 끝은 있는 걸까 숨이 헐떡거리는 순간에 건물 꼭대기에 다다랐다. 문을 열자 일제히 나에게 쏟아진 8개의 눈.

한 개의 녹색의 매트가 비워져 있었다. 내 자리인 것이다. 나는 점퍼만 얼른 벗어두고 얌전히 내 자리인 것으로 보이는 곳에 앉았다. 선생님 앞 제일 좋은 자리였다.

요가원에 화려한 요가복도, 조명도, 몸매 짱 언니야들도 없었다. 헐렁한 티셔츠의 운동복을 입은 언니야들의 대신 있었을 뿐. 요가원 문은 열고, 점퍼를 벗고, 매트까지 가는 동선은 우리 집 거실 내에서 오갈만한 협소한 공간이다. 그 짧은 동선을 종종거리며 걷고 내 자리를 찾는 동안

"아유~어리다. 어려."

라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을 뿐.



첫날의 요가는. 무어라 말해야 할까. 신기했다.

13년 전쯤인가 요가를 배웠던 때가 있었고, 몇 년 전에 태국 여행 중 몇 차례로 요가를 한 적도 있지만 이 요가는 좋다고 혹은 나쁘다고 표현하기에 둘 다 적합하지 않은 신기한 느낌이었다.

영화로 치면 일본 영화의 <안경>과 같은 무드의 한 공간에 놓여 있는 기분이랄까. 저마다 열중하였고, 헉헉거렸고, 밭은 숨소리가 들렸다. 뼈가 부딪히는 뚝뚝 소리도 들리고.

중간중간 이어지는

'에구구'소리라든지,

'휴. 안 되겠다.'라는 추임새와 그에 대한 간헐적인 짧은 대답들은 여태껏 접한 요가원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나도 무슨 대답이라도 해야 하는 걸까. 그저 빙긋 웃으면 되는 걸까. 마스크 속에서 빙긋 웃는다 한들 내 사회적 미소를 눈치채기는 할까.

나는 요가를 하고 있는 걸까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지금 좋아하고 있는 걸까, 별로라고 느끼고 있는 걸까.

1달 결제만 해야 할까 10프로 할인된 가격에 3개월 결제를 해야 하는 걸까. 10프로 할인이면 얼마가 세이브되는 거지? 이 요가원은 이렇게 달랑 회원 세 명으로 운영이 되는 걸까? 곧 망하는 건 아닌가?

몸으로는 선생님의 동작을 부지런히 좇으면서, 머릿속으로는 더 부지런하게 생각을 이어갔다.

물론 나도 더없이 뚝뚝 거리는 뼈 부딪힘 소리를 내면서.


"나마스떼. 감사합니다."

1시간가량의 수련을 마치고, 모두가 공손히 합장을 하고 선생님께 인사를 했다.

"요가 배우신 적 있나요?"

"아주 예전에 배웠는데, 몸이 배웠다고 할 수 없어요."라고 대답하자,

"아우, 어리면 금방 배우더라."라고 그녀들이 나를 응원해준다.


"학생인가 봐." 나에게 묻는 말은 아니지만 분명하게 들리는 말.


아, 이 대목에서는 더 이상 가만히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가장 쉽고 빠른 대답으로 일축하자.

"아니어요. 애가 있어요."

동그란 눈들과 쏟아지는 말에

"아니요. 마스크를 써서요. 제가 몸이 자그마해서요."라고 조용조용 그러나 다급하고 바쁘게 대답했다. 티셔츠 안의 겸손한 똥배에 대해서도 이야기할까 하다가 말았는데 그러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누구도 내게 아이가 몇 있는지, 아이들은 몇 살인지, 아들인지 딸인지,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디 사는지, 남편은 무엇을 하는지 묻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어스름한 저녁에 나섰는데 어느새 검은 밤이었다.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여니 온기가 후끈 내 몸을 감싼다.

내 일상이 거기 있었다.

내가 나간 줄도 미처 몰랐다는 듯 나의 하루는 고스란히 거기 있었다.

나를 여태 붙잡았던 것은 바빴고 생각 많았던 내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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