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쓰는 편지

삼 십대의 엄마가 어른이 된 너에게 미리 쓰는 편지

by 수수한

나중에도 네게 편지를 쓸 수 있겠지만, 서른 네살의 엄마가 쓰는 편지는 지금뿐이니 때때로 써 보려해.

고민에 휩싸인 그 당장의 너에게도 물론 말해줄 수 있겠지만, 그때의 엄마는 쉰 살이 넘은 엄마일 수 있으니..

삼십 대의 엄마의 말은 이러했단다. 하고 조금 더 어린 엄마의 말을 듣는 재미도 네겐 있겠지..

좀 덜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해 주려나. 아니면 우리 엄마도 이리 미숙하고 풋풋한 시절이 있었다고 생각해 주려나.


그 안에 파묻혀 있을 때는 보이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니, 너를 키우면서 엄마가 잊어버릴 수 있는 지금 엄마의 다짐들도 이 편지를 통해 돌아볼 수 있겠지. 가령 성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대학 어느 과의 간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따위의 다짐 같은 것 말이야. 내가 중고등학생 학부모가 되어, 혹 엄마가 너의 성적에 목을 매는 괴물 같은 모습을 하거든 꼭 이 편지들을 읽어야 할 텐데.


여하튼, 미래의 너에게나 나에게나 전해주고 싶은 지금의 목소리들을 때때로 적어보려 해. 생각은 변화되기 마련이지만, 또 한편으론 지금의 생각들은 담지 않으면 흩어지기 마련이니까.



무슨 이야기를 먼저 할까 하다가.. 오늘 너를 목욕시키면서 생각난 울컥한 감정을 전하는 것이 좋을 듯하구나.

언젠간 너도 사랑이란 걸 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면 이별도 겪고 슬픔도 느끼겠지.

네가 겪을 이별에는. 응당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것들이니 당연한 것이라 받아들일 수 있다. 또 누군가 너에게 이별을 고했더라면 그에게도 그의 마음이란 것이 있고, 사랑이란 것은 변할 수도 있는 것이니 너와 헤어질 그에 대해서도 원망의 마음이 없다.


다만 엄마가 염려하는 것은 이별을 겪었다고 해서, 누군가가 너를 떠났다고 해서. 네가 가치 없는 사람이라거나 네가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꼭 말해주고 싶다. 엄마는 네가 그런 감정과 생각에 휩싸이는 것을 견딜 수가 없구나.


오늘 5살의 너의 몸을 어루만지면서 단단한 너의 몸, 생기 있는 눈빛과 맑은 미소를 보고 있자니 이것이 너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일 심한 욕이 '욕심쟁이'라고 말하는 아이. 오늘 친구와 다투어 속상해 울고 있는 네 머리통 하나만큼 더 큰 친구에게 문득 다가가 안아주어 토닥여주었다는 아이. 그런 너를 안에 담고 자라난 것이 지금의 너라고 말해주고 싶다.


네가 오늘의 내가 되어, 이 욕조 안에서 벗은 너의 몸을 어루만져 씻겨본다면. 너의 반짝이는 눈을 보고. 고 작은 머릿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재기 발랄한 생각들 하며. 재잘대서 욕실 공기를 가득 채우는 낭창한 목소리를 듣는다면. 도저히 도무지. 네가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거란다.



엄마도 이별에 아파봤고. 그것이 다인 듯 살아봤었다. 많이 울어도 되고, 아파도 되고, 헤매어도 괜찮아..

잔인한 말이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덜 아파지고, 무던해지고 네 길을 찾게 될 거야.

다만 너를 상처 주는 것만은 하지 말아라. 네가 보잘것없어서 이별한 것이 아니란다.



너무 아파하는 너라면,

오늘의 나의 자리를 잠깐 빌려주면 참 좋으련만.

이 꼬마 아가씨를 만나게 되면.

아마 너는 분명히 반하게 되고, 네가 더없이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을 확신하게 될 거야.



사랑해 아가.


오늘도 네게 수도 없이 했던 말이란다.



2015.4.2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