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되면 죽어버릴 거야."
예쁘장한 아이였다. 우리는 기울기가 제법 있는 언덕길을 오르는 중이었고, 불편한 교복을 입은 소녀들에게 가방은 적당히 무거워 손으로 어깨끈을 받치고 걸었고, 한낮과 저녁 사이의 하교시간은 지루하고 늘어졌다. 어떤 맥락에서 튀어나온 말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쌜쭉하니 망설임 없이 말한 그 아이의 얇은 입술은 생생히 기억이 난다. 나도 쿨하게 "나도 그럴 거야."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난 죽어버리기 싫었으니까. 아니면 "왜?"라고 물어봤으면 지금까지 툭툭 튀어나와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 텐데. 난 그때 무어라 대답했을까. 마흔의 나를 한 번도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십 대의 나는 마흔이란 나이를 먼저 둘러보고 온 것 같은 십 대의 네가 던지는 말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래. 당황했다는 말이 옳다. 아득했다. 눈이 유난히 커서 예뻤던 그 아이의 마흔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 뒤로 한 번도 그 이야기를 그 아이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꺼낸 적이 없었다. 아마 그 아이도 자신이 한 말을 잊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반이었던 그 아이와 다른 반이 되었고, 고등학교도 다른 학교로 가서 자연스럽게 연락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서로 잊힌 사이가 되었는데도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장면이 가끔씩 떠올랐다. 특정 나이의 마디를 지날 때마다 문득 떠오른 것이다. 이를테면 스물아홉이라든지, 서른, 혹은 서른다섯. 그리고 아마 그 숫자에 임박해지면 임박해질수록 더 자주 기억했던 것 같다.
숫자에 집단적 집착증을 보인 시기가 떠오른다. 밀레니엄 시대가 다가온다, 종말이 온다, 21 세기다하며 1999년의 그들은 2000년이라는 숫자가 아득하게 느껴져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많이 떠들어댔다. 물론 그들에 나도 포함되어있었다. 정말 종말이 오면 어쩌지. 이렇게 피 터지게 공부만 하다가 죽으면 억울한데. 마흔 살에 죽어버릴 거라던 그 십 대 소녀와 달리 나는 이 때도 역시 죽기 싫었다.
수업시간 중 19와 공란 두 칸 뒤에 년이 새겨진 칠판 왼쪽 한 켠을 보며 생각하곤 했다. 이제 2000년이 오면 저건 어떻게 되는 거지? 한 치 앞은 못 보는 인간들은 2가 첫자리가 되는 시대가 그리 빨리 올지 몰랐겠지.
밀레니엄은 시시하게 왔다. 1999년 12월 31일과 2000년 1월 1일을 넘어가는 그 순간 검은 밤하늘에 펑펑 터지는 폭죽, 격앙된 아나운서의 목소리 그뿐이었다. 특별한 날이라고 신경 써서 수놓은 폭죽이겠고, 많고 많은 12월 31일들과 다르게 조금 더 신경 써본 한 끗이 있었겠지만 그러나 저러나 폭죽은 폭죽이었고 그다음 해, 그 다다음 해의 12월 31일은 늘 새로운 날이었다.
그 뒤로 이미 인쇄된 19가 아로새겨진 인쇄물을 만난 적이 있으나 두 줄을 쫙쫙 긋고 20을 쓰면 그만이었다. 그게 무슨 어려운 일이라고. 19가 새겨진 칠판? 아무려면 어때. 그 칠판을 뜯어서 새로 붙였든, 옹색하게 19를 아세톤 따위로 지워서 20을 새겼든 여하튼 생각보다 덤덤히 새로운 시간을 맞이한다. 그리고 여기까지 왔다. 2022.
그렇게 마흔이 되었고, 마흔을 넘겼다.
어마 무시하게 부담스럽고 큰 숫자이다.
여기까지 와서 되돌려 상상해본다. 내가 만났던 이미 마흔이었던 이들을. 헤아려보니 결혼을 일찍 한 엄마는 내가 중학생일 때 사십 대가 되었구나, 내가 학생 시절 그 선생님이 이 나이쯤 되었겠구나, 내가 근무했을 때 옆 반 선생님이 이 나이쯤이었겠구나. 그러다 화들짝 놀란다. 뭐야 완전 어른이잖아! 여기서 생각이 멈추면 다행이었을 텐데. 완전 아줌마, 아저씨들이잖아.
거울 속을 들여다본다. 양심 없게도 아직 아줌마는 아닌 것 같은데. 마음을 들여다본다. 더더욱 아줌마는 아닌 거 같은데. 새삼 내 멋대로 아줌마, 아저씨라고 규정지었던 내 인생 안의 마흔들에게 죄송스러워진다. 마음은 청춘이라는 어른들의 말이 애처롭게 들린 적도 있었는데, 그게 진짜였을 줄이야.
서른이 되었던 밤을 생각한다. 태국의 해변가 펍과 맥주. 그렇게 맞이한 서른은. 좋았다. 2에서 3을 다는 그날이 내게는 밀레니엄을 맞는 기분이 들어 미리 지레 겁먹고 있었는데 3을 달았던 날 이후, 괜찮았다. '행복은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이 없는 상태'라는 법륜스님의 말을 빌려 보자면, 나의 서른도 나쁘지 않았으니 괜찮았다. 스무 살의 나날이 더 부럽거나 하진 않았다. 철없었던 나의 스무 살에게 서른의 내가 돌아가고 싶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서른아홉에서 마흔이 되던 날 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거기서부터 내 나이를 세는 것을 잊은 듯하다. (이거 나이 든 사람들이 어김없이 보이는 증상인데.) 때때로 필요시 딸에게 묻는다.
"센아. 엄마 몇 살이지?"
딸이 또박또박 발음해주는 그 나이는 들어도 생경하다.
나이를 먹어서 새롭게 생기는 역할들이 그 나이를 규정하곤 한다. 초등학생 혹은 중고등학생의 엄마, 부양할 부모님, 직장에서의 역할 등. 내가 해야 할 일의 리스트와 고민거리는 온전히 나만이 중심에 있지 않다. 새해 첫날마다 적곤 하는 다이어리 첫 장의 계획란 내 단골 카테고리는 몇 개는 더 늘었다. 아이들. 여기에 둘로 가지치기한다. 첫째 이름, 둘째 이름. 각각 가지치기한다. 공부, 키, 운동...공부 안에서는 또 몇 갈래의 가지가 뻗쳐 나간다.
엄마가 된 지 십 년은 훌쩍 넘었는데 아직도 엄마라는 호칭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아이들이 엄마라고 불러주어서 엄마이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아이들은 자라나고 나도 어영부영 시간을 따라 간신히 해낼 수 있는 것은 해내고 그렇지 못하고 지나친 것은 남겨 두며 지나왔더니 12년째 엄마라고 불리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 엄마를 보고 나는 엄마 될 자신이 없었는데, 역시나 우리 엄마와는 다른 엄마가 되었다. 이런 엄마도 엄마라면.
아이가 있는 마흔 여자의 삶이란 그렇다. 새롭게 규정된 역할들을 다 차치하고 본연의 나로만 보았을 때 지금의 나는 무엇일까. 내 생각엔 스무 살과 지금의 큰 차이는 그것 같다. 역할의 규정이 너무 커서 본연의 나를 자주 잊고 산다는 것. 즉 지금은 초딩 두 명의 엄마 노릇 중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중딩, 고딩, 대딩의 엄마 노릇, 그 뒤의 세계에서는 새로 부여받은 역할을 수행하느라 그 역할이 곧 내가 되어 삼켜버리고 만다. 다이어리 첫 장을 펴서 슬쩍 아이들 카테고리를 손바닥으로 덮어본다.
그 역할들을 다 떼어버리고 들여다보면, 난 아줌마도, 어른도 아니고 그냥 1999년 뒤의 2000년 같은 존재이다. 스무 살의 몇 년 뒤 언저리. 서른 살의 몇 년 뒤 언저리. 그 느낌. 다만 그때보다는 덜 흔들리고, 그때보다는 나를 덜 미워하는.
그래서 요즘 들어 열심히 요가하고, 부지런히 읽고, 즐겁게 쓰고 그린다. 스무 살의, 서른 살의 언저리의 나도 좋아할 법한 그것들을.
그 아이를 떠올려본다. 아마 예쁜 마흔이 되었을 것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