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답을 들어야 하는 사람

by 수수한


“너의 작품을 많이 좋아하지만, 하루에 한 두 개만 포스팅을 하면 더 좋을 거야.”

라고 영어로 쓰여 있었다.


어디에? 인스타 그림일기 댓글란에.

앞부분 “너의 작품은 많이 좋아하지만”까지 읽었을 때는 기분이 좋았다가 뒷부분 ‘but’으로 시작되어 ‘would be better’로 마무리 짓는 부분을 읽었을 때는 판단 이전에 목과 명치 사이에 불쾌한 물리적 느낌이 먼저 닿았다. 그리고 느낀 감정을 되짚어 표현해 보자면 수치심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그럴 이유가 없다하더라도 반사적으로 드는 이물감이었다.


내가 얼마나 많이 올렸다고. 최근 올린 피드의 수를 훑어보았다. 단 이틀만 세 개의 피드를 올렸고, 그전에는 쭉 하나나 두 개의 피드만 올리고 있었구먼. 나도 모르게 변명을 하고 있어 그것이 더 짜증 났다. 이미 내 머릿속에는 댓글에 대한 답변을 하고 있었다.


'그전에는 하나나 두 개만 올렸잖아. 최근 단 이틀만 세 개를 올렸어.

그리고 세 개 올린 날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어. 나는 너도 알다시피 그림일기는 매일 쓰고 있으니 하나는 무조건 올리고, 그날 마침 읽던 책을 마무리해서 따끈따끈한 서평 쓸 기력도 있었고, 오래간만에 브런치 글도 올린 날이란 말이야. 또 그 전날은 욕실에 영차영차 데리고 와 샤워시킨 내 초록 식물이 얼마나 예쁜지 그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남기고 싶었어. 분갈이해서 더 큰 집으로 옮긴 날이기도 하고. 이런 기록들이 내 흔적이니까.

나는 전문적으로 그리는 사람도 아니고, 그리는 사람만이지 않아.

나는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식물도 기르고, 뜨개질도 하고, 책도 읽고 그것들을 정리하는데 이 공간을 사용해.

게다가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포스팅하지 못해 밀린 책들이 많아.

내가 무슨 10만 팔로우를 지닌 인플루언서도 아니고 내 계정에 내가 올리는데 개수까지 눈치를 봐야 해? 무리하게 매일 도배하는 것도 아닌데.

어차피 곧 바빠져서 그림일기 한 개 피드 올리는 것도 겨우 하게 될 거야. 걱정 마.'


결코 달지 않을 적나라하고 유치하고 생생한 댓글을 마구 생각해 내면서, 내가 왜 얼굴도 모르고 캐나다에 사는 것으로 추정되는 매우 잘 그린 그림 포스팅을 하루에 하나나 아니면 며칠에 한 번 올리는 그를 위한 답변을 만들고 있는가 의문이 들었다. 이 상쾌한 이른 아침에. 이 불필요한 감정과 마음을 멈추고 싶어도 생각이란 녀석은 자꾸 그쪽으로 흘러 그의 의도를 해석하려고 애썼고 내가 마음이 상한 지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싶었으며 자연스럽게 여러 개의 정돈되지 않은 답변들을 늘어놓게 만들었다. 마치 만지면 만질수록 더 덧날뿐 득이 없을 것을 알지만 자꾸 손이 가는 딱지처럼. 어설프고 성급한 댓글을 달고 나서 제2의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싶지 않고 잠시 생각을 멈추고 싶어 책을 폈다.

마침 폈던 책에서 이 대목을 만났다.


돌이켜 보니 이런 잡다함과 산만함이야말로 생활에서도 일에서도 스스로를 지탱하는 동력이었던 것 같다.. 한 가지만 파고드는 덕후도, 최대한 얕고 넓게 파고드는 멀티플레이어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용케 여기까지 왔다. 도대체 나는 왜 이모양일까 시무룩해지다가도, 나 자신이 결국 한 권의 잡지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기분이 좀 나아진다.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 중 ‘아무튼, 잡지’에서 발췌했다는 문장


간혹 상황에 맞는 책 속에 문장을 만날 때에는 운명을 느낀다. 씩씩거리던 마음이 점차 진정이 된다.

그래. 난 잡지 같은 사람이야.

그리고 또 생각의 꼬리를 자르지 못하고 머릿속에서 그의 댓글에 쪼르르 달려가 댓글을 달고 있다.

“난 잡지 같은 사람이야.”



다시 한번 그의 말을 읽어보았다. 목소리가 없는 건조한 문장을 내가 말의 속도와 빠르기를 상상하여 읽지 않았는지 되짚어 본다. 그는 분명 그림만 올려달라고 말하지 않았는데 내 멋대로 한 개나 두 개만 올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그림만 올렸으면 좋겠다는 말로 상정하고 읽었다. 그는 내 계정을 정말 좋아해서, 더 크게 성장시킬 수 있는 조언으로 안타까운 마음에 그러한 말을 건네준 것일까. 그림은 언어를 넘어 전달되는 힘이 있는데, 책 이야기와 나의 글들은 그에게는 알지 못한 암호와 같은 문자의 향연이고 지루하게 느꼈을 지도 모른다.


이 지난한 혼자만의 사유의 과정을 그와 댓글로 나누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의 의도를 안다고 한들, 나의 의도를 설명한다고 한들.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공간을 두고 왈가왈부할 일도 아니고 그를 설득시킬 이유도, 내가 설득당할 이유도 없으니.


다만 내가 나에게 실망한 지점은 문장을 불쾌하게 꽂는 칼날로 바꾸어 그것을 염두에 두고 마음속에서 작은 투쟁의 답변을 이어나갔다는 점이었다.

‘당신의 생각은 그러하시군요. 그러나 저에게 이 공간은 나의 기록장이에요. 체계적이고 통일성 있는 피드로 팔로우 수를 늘리는 영리하지 못한 중구난방 인스타 이용자이지만, 저에게 이곳은 온라인 다이어리와 같아서 좋은 것이 있을 때마다, 기억하고 싶은 것이 있을 때마다 적어두는 곳이에요. 유난히 마음을 움직이고 좋았고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이 많은 날에는 그랬던 날인 거예요. 난 잡지와 같은 사람입니다.’

라는 단단한 답변이 내 안에 있다면 어떤 문장이 와서 부딪히더라도 그 활자에 내 멋대로 상상의 목소리를 입혀 해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냥 쓱 읽고 말면 그만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여전히 옹졸하고 많이 단단하지 못한 나는 그날 기어이 세 개의 피드를 올리고 싶었다. 매일 올리는 그림일기와 밀린 서평 중 하나와 브런치 글을 뚝딱 써서 브런치 글 하나와. 그러나 저녁이 되자 유난히 피곤했고 기력이 떨어져 분하게도 하나의 그림일기만 겨우 올리는 밤이 되었다.

그는 통쾌했을까. 내 댓글대로 내 말을 들었군, 하고.

아무렴.

그는 그대로 만족하고, 나는 나대로 만족했으면 되었지 뭐.

사실 답을 들어야 하는 사람은 그가 아니라 나였음을 여기까지 쓰고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