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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글방 Mar 07. 2022

나는 경계선의 존재를 아는 대통령을 원한다

하마글방 수강생 사유의 글

보통 사람들은 선과 면을 구분해서 이야기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선에도 면적이 있다. 그리고 사회에는 그 가느다란 면적 위에 위태롭게 놓여진 존재가 있다. 나는 항상 그들에게 마음과 시선이 쏠리고, 문득 나 또한 그 위에 서 있는 사람임을 인지한다. 나는 우리를 '경계선 위에 선 존재'라고 부른다.



내게는 엄마와 아빠, 친형제가 한 명 있고 엄마의 줄기와 아빠의 줄기를 따라 여러 명의 이모, 고모, 삼촌, 사촌 등의 혈연이 있다. 가족은 아직 없다.


혈연과 가족을 구분하는 이유는 내가 가정폭력 생존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적은 후 문득 이 글을 읽은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할 지 상상한다. 가해자가 누구일지 무의식 중에 맞췄을까? 어떤 피해를 당했을지 순식간에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을까? 나는 남매 폭력의 생존자이고 위협이 지속되는 한 여전히 피해자이지만 몸에 상처 하나 없는, 드러나지 않는 생존자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아주 어릴 때부터 친형제는 항상 화가 나 있었다. 그때마다 나를 '씨발년'이나 '병신'으로 불렀고 늘 알 수 없는 이유로 위협을 가했다. 그는 자주 나를 찢어 죽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보통은 나를 방 안에 가두거나 무언가를 집어 던졌다. 그는 물건을 잘 던지는 사람이었다. 또한 영민해서 결코 나를 맞추지 않았다. 나는 몸집만한 의자가 마구마구 넘어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가 사라지면 다시 의자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울었다. 종종 그는 자신의 주머니에 돈을 찔러 넣고 내게 돈을 훔친 도둑년이라며 쌍욕 해대고 물건을 집어 던지면서 화를 풀었다. 그에게 그것은 유희였을까. 아마 그랬을 것 같다. 많은 폭력의 날들이 우울증에 의해 기억 속에서 흐려졌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것도 있다. 가령 친형제가 어른들 앞에서 장난이라며 미소를 지은 채 내 배에 주먹을 마구 꽂던 날이라든지. 주말 저녁 엄마, 아빠와 함께 밥을 먹을 때 내 의자를 차던 그의 발길질과 그걸 외면하던 모부의 눈동자 같은 것들.



아무도 정신적 학대를 폭력이라고 불러주지 않아서 그리고 나도 그게 폭력인 줄 몰라서, 친형제를 혐오하면서도 정상 가족 체계를 위협하는 내 존재를 더욱 혐오했다. 어른들은 외면하거나 남매는 원래 그렇게 크는 거라고 설명했고 나는 내게 주어진 단 하나의 설명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를 죽이는 상상보다 나를 죽이는 상상을 더 자주 했다. 유서의 내용은 자주 갱신되었다.


정신적인 학대도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 남매 사이의 폭력이 가정 폭력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건 20살일 때였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수없이 반복되어 전형적인 틀을 가지게 된 가정 폭력 서사 속에서 신체적 학대 정황도 없고 성폭행 정황도 없는 나의 경험은 감히 낄 자리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아주 가느다란 면적 위에서 비틀비틀 자리한 채 피해자는 아닌데 그렇다고 아주 아니라고도 하기 어려운 상태로 오랫동안 방황했다. 지독한 자기 검열의 시간이었다.


가정 폭력임을 인지하고도 다시 ‘남매 폭력’이라는 단어를 획득하고 스스로를 생존자라고 칭하기까지 7년이 걸렸고 문장으로 정리해 글을 쓸 수 있게 되기까지는 약과 함께 1년이 더 필요했다. 20살까지는 무엇을 감당하는지 모르는 채로 감당하느라 흔들렸고, 20대에는 감당했던 폭력을 떠올리고 규정하느라 흔들렸다.



나는 이런 위태로운 사람들의 존재를 인식하는 대통령을 원한다. 그리고 언어를 획득하지 못한 이들에게 자신을 명명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대통령을 원한다.


가정 폭력에서 남매, 자매, 형제간의 폭력을 배제하지 않는 사람. 성폭행, 성추행 사건에서 동성 간의 사건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 청각 장애인 중에서 특정한 음역대의 고음이나 저음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 사회적 편견에 굳혀진 틀 안에 꼭 맞게 들어가지 않는 존재들이 있다는 사실을 늘 인지하고 그 경계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을 간절히 원한다.


작가 사유

https://brunch.co.kr/@sayuu

매일 읽고 종종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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