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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글방 Apr 16. 2020

세상이 떠들썩했던 그 날, 기억나세요?

3월 하마글방 수강생 하키마의 글

Q. 혹시 그날 있었던 일들 기억하세요?


그날이 수요일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요     


그날은 내가 좋아하는 배드민턴 동아리가 있는 날이었거든요. 당시 전 스마트폰이 공부에 방해된다며 2G폰을 쓰고 있었기에 컴퓨터를 켜지 않는 이상 인터넷을 볼 수 없었어요. ‘세월호’라는 단어를 처음 본 건 점심시간 전후에 있던 나른한 영어 시간이었어요. 수업용 티비에서 처음 봤는데, 아마 선생님이 수업 전에 보셨던 인터넷 창인 듯해요. 전원 구조라는 말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검색 창에 타이핑된 글자였는지 실시간 인기 검색어였는지. 그것들은 가물가물하지만, 여튼 ‘세월호’라는 글자를 봤어요.      


그날 배드민턴 시간에는 교장 선생님이 우리가 치던 네트를 뺏어 신나게 치시는데 억울해서 친구들과 짜증을 내며 밖으로 나왔었어요. 그리고 나를 데리러 온 엄마 차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세월호가 배라는 걸 알았어요. 엄마께 교장선생님 얘기를 하며 열을 내고 있었는데, 갑자기 엄마가 내가 건강히 살아서 운동도 하니 감사하다고 말했어요.


  “갑자기 무슨. 나 오늘 생일 아닌데?” 그랬는데, 엄마가 세월호라는 배가 가라앉았고, 거기에 저랑 동갑인 애들이 잔뜩 탔다고 되게 심란한 목소리로 말 하셨어요. 그제야 라디오 소리가 귀에 들어왔어요. 오늘 낮에 본 세월호가 이 일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죠. 저는 엄마에게 어디 학교냐고 물어봤어요. 혹시 친구네 학교일까봐.. 순간 무서웠어요.     


그날 밤 온 가족이 한참 뉴스만 봤죠. 아빠가 우리가 단원구로 이사 가려고 했었다고 그랬어요. 니가 저기 있었을 수도 있었다며... 부모님들 마음은 어쩌냐고 하시며 연거푸 한숨을 쉬셨죠.        

   

Q. 2014년 4월 16일 사고 당일 이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당연하다고 생각한 대처들이 일어나지 않는 날들이 쌓여만 갔잖아요. 답답했고, 친구들과 욕도 많이 했지만, 그럼에도, 제 일상은 여전히 당연한 것들로 채워져 흘러갔어요.      


늘 그랬듯 매일 학교에 가고, 야자를 하고, 밥을 먹고, 매점에 가고, 친구들과 웃기도 했죠. 그러나, 순간순간 웃음이 멎었어요. 내가 이렇게 평온히 살아도 되는 걸까. 지금 그곳에 사람이 있는데. 지금 내가 이렇게 웃고 떠들고 밥을 먹고 있어도 되는 걸까. 생각했죠.          


Q. 그러한 일상 속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으신가요?     


네. 어느 날엔 급식실에서 세월호 탑승자 가족들의 현재 모습을 영상으로 반복해서 틀어줬어요. 이 일을 기억하고 잊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은 백번 이해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그들만큼 슬퍼하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게, 그 와중에 밥숟가락을 입에 넣는 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그렇다고 안 먹는 건 또 왠지 착한 척하는 것 같아서 꾸역꾸역 먹었지만, 결국 얼마 먹지 못했어요.          


Q. 사람들이 리본을 달기 시작했을 때리본을 달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잖아요리본과 관련해서 기억나는 것들이 있어요?         


사진 하키마


맞아요. 저는 처음에 집에 있는 노란 리본을 가방에 묶고 다니다가, 나중엔 친구들이 만든 리본을 달고 다녔어요. 이런 상황에서 그곳에 달려가지 않고 매일 같은 일상을 사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으로, 최소한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여기며 나는 그 리본을 달고 다녔죠.     


그런데 학교 담임 선생님께서 그 리본을 단 지 3-4일이 지나자, ‘그런 것들은 달고 다니는 때가 있는 거야. 그때가 지나고 달고 다니는 건 좋지 않아.’라고 하셨어요. 이후에 기억나지 않지만 다른 말들도 덧붙이며 리본을 계속 달고 다니는 데에 거부감을 드러내셨어요. 선생님께 왠지 모를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저는 바보같이, 정말 바보같이. 그런가? 때가 지난 건가? 생각해버렸던 게 기억나요. 그 뒤로 계속 달았는지 안 달았는지는 기억이 안 나네요.                     


Q. 혹시 그때 남겨둔 기록이 있나요?         

사진 하키마

1년 후인 2015년 4월 16일에 아침방송으로 전교 회장이 추모 방송을 했었는데, 그 일부를 적은 게 있더라고요.     

“우리는 잊지 말고 바로 알아야 합니다. 어찌할 수 없는 이 현실에 침묵하지 말고 분노해야 합니다.”     


당시에 이 말이 참 시원하면서도 왠지 뜨끔했어요. 그즈음 분노해야 한다는 말을 정말 많이 마주했었는데, 늘 분노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는 생각을 이어가지 못했거든요.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그날에 대해 분노를 터트리는 때는 화가 많은 내 친구들과 수다를 떨 때뿐이었어요.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사람들이 그 안에 아직 살아 있는 거잖아. 에어포켓 있다며. 빨리 뭐라도 해야지.”,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진짜 우리나라 썩어 빠졌다.”, “거기에 가족이 있는 사람들은 지금 어쩌냐고 진짜 속 터져. 왜 숨겨 진짜 자기 가족이 거기 있어도 저럴거냐고.”, “티비 뉴스 믿을 게 못 돼 다 썩었어.”     


이러면서요. 그 수다에서만큼은 분노가 터져 나왔죠. 근데 그 분노의 수다가 새로운 움직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어요. 수다를 떨면서도수다를 마치고도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절망감만을 느낄 뿐이었죠. 그리고 나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언제나 그날의 일은 제쳐두었던 것 같아요. 원래 그랬듯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그렇게 열심히 하지도 않는 공부를 붙잡고 불안해했죠.                 

                                      

Q. 성인이 된 당신에게 그 일은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그날 이후에도 말도 안 되는 일들은 계속해서 일어났잖아요강남역 어느 노래방에 갔던 우리 나이대의 여자가 화장실에 갔다가 이유도 없이 갑자기 살인을 당했고, 당연히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들, 혹은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것들을 누군가는 공권력으로 누리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고요.                 

그림 하키마

그런데 저는 똑같이 살았어요사람들이 모여서 소리높여 변화를 요구하는 동안, 나는 여전히 친구들과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사냐며, 세상이 망해간다며 또 분노의 수다만 떨었죠전 늘 기사로만 시위의 현장을 접했어요. 휴대폰으로 기사를 볼 때마다, 리본을 다는 것조차 어찌 결정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던 제 모습을 떠올렸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계속 발견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촛불시위로 정권까지 바뀌고 나서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로 만든 세상을 공짜로 얻어 빚지고 살아가는 것만 같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내가 가만히 있는 움직임이 단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내가 욕을 하고 있는 그 상황이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데에 동조하는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라고요그러기 시작하니까 이제는 점점 수다 떨며 욕만 하는 게 불편해지기 시작했어요.          


Q. 촛불집회와 정권교체가 하나의 전환점이 된 것 같네요그 이후에 삶에 변화가 있었나요?        

 

사진 하키마

2018년이 되어서야 조금씩 움직이느라매사에 뭐라도 해야 해라는 생각으로 늘 움직이게 됐어요2018년 4월 16일엔 지인의 목공 동아리에서 하는 리본 만들기 모임에 갔고, 그해 여름엔 미투 관련해서 인생 처음으로 혼자 시위도 갔었어요. 진실 공방으로 시끄러울 때였는데, 그곳에 있는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잔 마음으로 갔었죠. 2019년 4월 16일에는 5주기를 맞아서,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생겨, 검색해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고 기록해보기도 했죠. 그때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청원이 있다는 걸 알고 동의했었어요. 그리고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당시 대통령의 7시간의 기록이 봉인됐고, 혹여나 지금 밝혀지지 않더라도 30년 후에는 열린다는 것도 알았죠.           


Q. 벌써 2020세월호 6주기에요. 6년의 시간을 보내면세월호는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글방 동료가 그랬어요. 세월호 참사 이후로 한국 사회가 엄청 큰 변화를 겪었다고 생각한다고요. 맞는 거 같아요. 그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하지 못했다는 무기력감이 사람들에게 두 번 다시 이런 일을 겪게 두지 않겠다는 힘을 내게 했던 것 같아요. 코로나에 이렇게 빨리 대응해온 것도, 저는 그날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저는 세월호라는 기억을 마주하면서, 변화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목격하면서, 거대한 문제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방법을 배워온 것 같아요. 일상의 중력 안에 있더라도 뭘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어요. 작년 4월 16일에 과제에 알바에 여유가 없는 일상 속에서 인터넷으로라도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았던 것처럼요.           


Q. 이번 6주기에는 세월호를 어떻게 기억하며 보내실 건가요?


세월호가 왜 침몰 되고, 그 안에서 가족이, 친구가, 지인이 왜 죽어갈 수밖에 없었는지가 아직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잖아요. 기사를 보니 유족분들의 정신적 고통이 여전히 크다고 합니다. 6년째 떠난 이를 가슴에도 묻을 수도 없었지 않을까요. 두 분이 스스로 세상을 떠나셨더라고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지 생각해보려고 해요. 세월호 특별수사단이 어떻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지도 한 번 찾아보려고요. 그 이후에 뭐 할지는 찾아보고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작가

하키마(gahyun9207@gmail.com)

그림과 글로 기록하는 하키마입니다. 

하마글방 2020.3월 수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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