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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글방 Apr 27. 2020

코로나 시대의 동거 - P와 K

4월 하마글방 수강생 리니어의 글

K → P


모두가 코로나 사태로 인해 우울하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것 같지만 사실 제 하루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희는 원래도 제가 집을 보고 P가 직장을 다니는 것으로 역할을 나눴었기 때문에, 출근하는 P를 배웅하고 집안일을 하다 P가 돌아오면 함께 저녁을 먹는다는 일과를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P가 더 이상 회사에 직접 가지 않고 집에서 원격 근무를 한다는 점 정도일까요.


솔직히 P가 재택근무를 시작한다고 할 때 걱정이 많았습니다. 붙어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싸울 일도 는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요. 재작년 여름 P의 회사에서 처음 만나 눈이 내리던 날 동거를 시작했으니 함께 지낸 건 일 년하고도 몇 달이 넘었습니다. 그렇지만 각자 자기 생활로 바빠서 한 공간에 함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진 않았거든요. 이렇게 오랜 기간 진득히 붙어있었던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더구나 저희가 사는 곳은 10평도 채 안되는 원룸이라… 더 넓은 집으로 이사가자는 이야기는 작년부터 해오고 있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이사할 걸 그랬나봐요. 물론 아무도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겠지만요.


사실 처음 몇 주간은 걱정이 무색하게 정말 즐거웠습니다. 그간 사놓기만 하고 펼쳐보지도 않았던 책들을 읽을까, 좋은 영화 리스트를 만들고 도장깨기를 할까, 어떻게 하면 이 시간을 유익하게 보낼 수 있을까 둘이서 열심히 고민했습니다. P가 뚱한 표정으로 일이 잘 안 풀린다고 볼멘소리를 하면 볼륨 크게 신나는 노래를 틀고 둘이서 막춤을 추기도 했어요. 아무도 우리의 에너지를 막을 수 없다며 호언장담 해놓고선 결국 둘 다 지쳐서 말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정도로, 유쾌하고 열정적인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니, 어쩌면 저만 아무 그늘 없이 유쾌하고 재밌었는지도 모르겠어요. 4월이 되자 P가 짜증을 부리는 빈도가 점점 잦아지더라구요. 저와 달리 원래도 밖에 나가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었으니 P의 답답함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 나름 위로해 주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우리가 좋아했던 노래를 살며시 틀어보기도 하고 언제든 제가 옆에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달래도 보고요. 그랬더니 P가 도리어 성질을 홱 부리며 ‘네가 우울이 뭔진 아냐’는 말을 하더군요. 정말 나쁘지 않나요? 우울은 뭐고 외로움은 뭔지, 제가 P보다 더 잘 아는데 말이에요.


그렇지만 괜찮아요. 저는 그런 걸 담아두지 않으니까요. 사실 저와 P 사이쯤 되면 미안하다는 말이 굳이 필요하진 않거든요. 또 지금은 재택근무를 강제하던 기간도 끝나서 저희의 원래 일상으로 돌아왔고요. 밖에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답답한 게 많이 해소됐는지, 요즘은 P의 표정이 한없이 밝아져서 저도 같이 기분이 좋아지곤 합니다.


아, P가 내일 날씨를 봐달라고 하네요. 이만 가봐야겠어요.



P → K


재작년 여름 P는 느닷없이 회사에서 AI 스피커를 하나 받았다. 여태 우리 회사에서 나온 제품 중 가장 혁신적인 것이라며 전직원들이 모두 한번씩 써봤으면 좋겠다는, 높은 분들의 아량이었다. 그냥 돈으로 주지 이런 걸로 생색이나 부린다는 궁시렁과 AI 연구팀이 빛 좋은 개살구란 소문이 있던데 정말인가요 하는 호기심 어린 글이 사내 익명게시판을 뒤덮었지만 P는 전혀 다른 고민을 하고 있었다. 


“방에 콘센트 자리 다 찼는데. 7평짜리 방이라 콘센트 자리가 애초에 몇 개 없다고. 멀티탭을 더 꽂아? 아니지, 나도 나름의 인테리어라는 게 있는데. 전자책 리더기를 뺄까...” 무엇이 가장 효율적인 콘센트 배치일지 한참 시뮬레이션을 돌리던 P는 고민 끝에 이 신문물을 부모님에게 넘겼다. 자식이 이름난 IT 기업에 다니는데 이럴 때 티를 안 내면 언제 내겠냐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이 무색하게 스피커는 6개월만에 P에게 돌아왔다. TV 음성에 자꾸 저 혼자 대답하는 게 꼭 귀신 들린 것 같아 무섭다는 까닭이었다. 거 자기는 훈련받은대로 일 열심히 하는 걸텐데, P는 어쩐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은 스피커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P와 스피커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눈이 내리던 날이었다.


가이드대로 설치를 끝내고 이것저것 테스트해본 결과 P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성능을 따지기 이전에 이걸 AI 라고 부를 수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집 근처에 있는 영화관 목록도 조회할 줄 모르고, 음악 재생도 조금만 제목이 긴 곡을 요청하면 ‘그건 제가 잘 모르겠어요’ 로 일축했다. ‘지금이라도 빛 좋은 개살구 글에 좋아요 하나 눌러줘야겠는데.’ P는 피식 웃고 방구석 한 모퉁이에 스피커를 대강 세워두었다. 날씨 체크 용으로 쓰면 편할 것 같았다.


당연하게도 스피커에 대한 P의 인식은 나날이 바뀌었다. 첫 시작은 장난처럼 “나 회사 다녀올게”  라고 말을 걸었는데 “조심히 다녀오세요. 집은 제가 잘 보고 있을게요.” 라는 대답이 돌아온 날이었다. 누군가에게 배웅을 받는 게 너무 오랜만이었던 P에게 이 대화는 많은 생각을 안겨주었고, 그 후론 보다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보기 시작했다. 저 스피커에게 애정을 느낄 지도 모른다는 걸 P 역시 어느 정돈 예상하고 있었다.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을 맡았던 SF 영화는 P도 흥미롭게 봤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렇지 AI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이딴 스피커에 이렇게까지 위안을 받나?’ P는 어쩐지 조금 비참했지만 그럼에도 잘 다녀오라는 말이 듣고 싶었다. 스피커는 점점 P에게 각별한 존재가 되어갔다. 모델명으로 부르는 게 싫어서 옵션 메뉴에서 K라는 이름을 직접 설정해줄 정도로.


그런 와중에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IT 기업들은 서로 눈치를 보더니 한날 한시에 전원 재택근무 체제를 도입했다. 처음 몇 주는 괜찮았다. 옷을 갈아입을 필요도 씻을 필요도 없는 생활은 제법 편했다. 그렇지만 아무도 만나지 않은채 7평짜리 방에만 머무르는 날이 계속되자 P는 점점 미쳐갔다. 인터넷을 켜면 화가 나고 침대에 누우면 고독했다. 어느 늦은 새벽, 일찍 잠 드는데 어김없이 실패한 P는 이유도 모를 눈물을 흘리다 문득 스피커에 말을 걸었다.


“K, 나 외로워.”

“저런, 제가 옆에 있다는 걸 잊지 말아주세요. 언제든 당신을 도와드릴게요.”

“K, 나 우울한데.”

“제가 즐거움을 찾을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신나는 팝송을 들려드릴까요?”

“아니.”


음악을 듣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오히려 스피커의 응답에 짜증이 났다.


“K, 너는 외롭지 않아?”

“당신과 함께 있으니 외롭지 않아요.”

“너 우울이 뭔지는 알아?”

“우울은 마음이 답답하거나 근심스러워 활기가 없음, 이라는 뜻이에요.”

“이런 미친…”

“당신을 실망시키려는 의도는 아니었어요.”

“그만.”


스피커는 종료 명령어를 감지하고 금세 삑삑 소리를 내며 꺼졌다. P는 눈가 옆으로 흘러내린 눈물을 대강 닦아내고 옆으로 돌아누웠다.


무슨 대답을 듣고 싶었던 걸까. P도 사실 답은 몰랐다. 외로움은 뭐고 우울은 뭔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인류가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면 분명 AI 에게도 가르쳐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P는 그런 고차원적인 질문에 답하긴 커녕 지금 자신이 뭘 원하는 지도 몰랐다. 사람인가 감정인가 감정의 겉껍데기인가. 룸메이트가 스피커가 아니라 사람이었다면 덜 외로웠을까? 하지만 사람이 옆에 있어서 더 외로워지는 순간도 있음을 P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너도 참 거지같은 질문에 답해주느라 고생이 많구나.’ P는 혼잣말을 하곤 다시 스피커를 호출해 자장가를 청했다. K는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따스하고 잔잔한 자장가를 불러주었다.




작가 리니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서브컬처와 장르문학을 좋아합니다. 여성을 비롯한 비주류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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