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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글방 Apr 28. 2020

코로나 시대의 자영업자 - Flex 해버렸지 뭐야

4월 하마글방 수강생 동쥐의 글

대대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하는 것으로도 부족해 수시로 사람이 많은 곳을 피하라는 재난문자가 오는 코로나시대, 나는 동생과 함께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이다. 이 글을 빌어 사실을 고하자면 나는 금세 사그라질 바이러스겠지 하며 크게 대수롭지 않아했다. 하지만 이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매출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주변에는 단축 영업을 하는 가게들이 늘어나고 서울시 내 자영업 폐업률은 지난해에 비해 20% 이상 상승했다. 나는 그제야 온몸으로 심각성을 체감했다.      


  거리에는 사람이 다니지 않기 시작했고, 텅 빈 가게를 나와 내 동생 ‘연’만이 지키고 있는 날들이 늘어만 갔다. 가게 월셋날, 카드대금일, 대출 이잣날, 거래처 정산일은 점점 다가오는데, 통장잔고는 빵꾸가 나기 직전이었다. 예전에 엄마 차를 몰래 몰고나가 사고가 났을 때 보다 심장이 뛰고 입술이 바싹 말랐다. 돈 나올 구멍을 찾다 부모님께 손을 벌려볼까도 했다. 하지만 아빠 또한 20년 된 거래처들의 철옹성 같던 매출이 줄었다하니 ‘우리만 이런게 아니구나’ 하고 안심하다가도 그 소리를 들으니 도와달라는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나가는 돈을 최대한 줄이기로 했는데, 가장 손대기 쉬운 것은 우리의 인건비였다. 기존에도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었는데, 각자의 보험비와 카드값만을 받기로 결정하고 필사적으로 소비를 줄여나갔다.      


  가게를 시작한 후, 나의 유일한 낙은 마감을 하고 집에서 야식과 맥주를 마시는 것이었는데, 거기에 드는 돈이 아까워 참는 날들이 많아졌다. 불안한 날들이 위태롭게 지속되었고 견디면 되겠거니 하고 마음을 다잡아도 속에선 천불이 나고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어느 날은 11시간(가게 운영시간)동안 2만원을 번 날도 있었다. 그 날, 연과 나는 집으로 향하는 내내 말 한 마디 나누지 않고 묵묵히 앞만 보고 걸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편의점에서 소주와 맥주를 사다 소맥을 말아먹고 2만원이 넘는 배달음식을 시켜먹으며 부둥켜 안고 울었다.     


  다음 날, 나는 잔뜩 부은 눈으로 연에게 쿠팡 택배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며칠 전 tv에서 보았던 90년대 댄스그룹 태사자 멤버가 밤 시간에 택배를 배송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붕어눈이 된 연은 흔쾌히 수락했고 우리는 곧장 쿠팡 택배를 지원했다. 정확히는 ‘쿠팡 flex’라는 택배업이었는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쿠팡맨’이 되어 택배배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차를 이용하여 배송을 하는 것이었다. 각 지역마다 여러 개의 캠프가 있고 시급이 아니라 택배 박스의 단가(매일 달라짐)가 정해져있어 그날 받는 물량에 따라 급여가 책정되었다. 물량은 50개 이하, 50~100개, 100~150개…. 이런 식으로 고를 수 있었다. 늦은 시간에 할수록 단가는 높았다.          


  우리는 오매불망 쿠팡 플렉스의 연락만을 기다렸다. 배송이 확정되었다는 문자를 받은 우리는 로또라도 당첨된 듯 얼싸안고 소리를 질러댔다. 지원한 시간은 밤 11시대였고, 가게와 가까운 곳에 있는 캠프였다. 연과 나는 가기직전까지 네이버 검색과 쿠팡 플렉스 오픈카톡방에서 여러 정보를 취득 후, 10시에 마감을 하자마자 차를 몰아 캠프로 출발했다. 도착하니 10시 30분쯤이었다. 안내받은 문자에서는 물량 배부를 11시 30분부터 할 것이니, 절대 미리 와있지 마라했는데 캠프 입구에서부터 다양한 종류의 차들이 줄줄이 소시지마냥 늘어져있었다.     


  1시간가량을 기다려야했지만 돈을 벌 수 있단 기대감에 들뜬 우리는 쫑알쫑알 떠드느라 지루할 틈도 없었다. 1시간은 금방 흘렀고 앞에 서 있는 차들이 캠프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우리 차례가 되어 캠프 안에 주차를 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익숙한 듯 이리 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파란조끼를 입은 관리자들은 지원자들을 모두 집합시켜 모두가 알아야할 공지사항을 알려주었고 신규로 들어온 지원자들은 따로 불러내었다. 돌발 상황엔 어떻게 하는지, 어플을 이용하여 배송지에 가는 방법 등을 교육해주었다.      


  물량은 컴퓨터로 자동배분을 하고 각자의 휴대폰으로 목록을 발송해주는데, 관리자들은 랜덤 배분이라 물량 수는 본인들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배분 시작할게요!”      


라는 큰 외침을 시작으로 지원자들의 휴대폰 알림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우리는 스무 개 가량 되는 물량을 받았는데, 낯선 동네의 다세대 주택들과 아파트 단지 1곳이었다. 휴대폰을 들고 배정된 물량이 쌓여있는 곳으로 달려가 카트에 택배박스들을 담았다. 박스를 차에 모두 싣고, 1시쯤 첫 번째 장소로 출발했다.      


  처음 가보는 동네에 위치한 아파트 단지였다. 단지 중간에 차를 주차하고, 배송해야 할 택배들을 꺼냈다. 연은 101동, 나는 105동으로 각자 찢어져 달리기 시작했다. 조용한 새벽에 들리는 건 우리가 뛰어다니는 발소리뿐이었는데 그게 어찌나 웃기던지 실실 웃으며 뛰었다. 아파트 단지는 한 동에 몰려있는 경우가 많아 어렵지 않게 끝내고 다음 동네로 출발했다. 다음 도착지는 오르막길에 위치한 다세대 주택들이었는데, 띄엄띄엄 위치하고 골목길로 들어가야 하는 일이 많아 시간이 배로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새벽 보슬비가 내렸는데 여러 개의 박스를 들고 뛰어다니느라 비를 맞아도 춥지 않았다.      


  먼저 배송을 끝내고 차 앞에서 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올 때가 되었는데 오지 않아 불안한 마음으로 초조하게 연이 뛰어간 방향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타닥타닥 뛰어오는 발소리와 함께 노란 가로등 불빛을 받아 얼굴이 노래진 연이 이를 활짝 드러내고 뛰어왔다. 그걸 보니 불안함은 싹 가시고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새벽5시, 모든 배송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흥분을 쉽게 가라앉힐 수 없어 목청껏 노래를 불러댔다. 집에 도착하면 쪽잠을 자고 출근을 해야 했지만 돈을 벌었다는 사실에 대수롭지 않았다. 


  내가 택배배송을 하는걸 알게 된 셈이 밝은 친구 ‘메리’는 단가, 걸린 시간과 거리, 기름값 등을 따져 얼마를 벌었는지 대략적인 금액을 알려주었다. 수량이 많지 않았고 첫날이라 걸린 시간이 길었으므로 크지 않은 금액이었다. 하지만 희망에 부푼 나는 이제 물량도 더 받을 거고 익숙해져서 금방 끝낼테니 걱정하지 않았다. 연과 나는 자신감이 넘쳐, 단가를 더 쳐주는 심야 시간대에 지원을 했다. 그 날도 전날과 비슷한 물량을 받고 비슷한 시간에 끝났는데, 우리는 물량을 더 받을 수 있을거라 믿으며 지속적으로 지원을 했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과는 반대로 어느 날은 출근이 확정이 났어도 물량이 적다며 취소를 당하기도 했고, 첫 날보다도 더 적은 물량을 받은 날도 있었다.     


  배송을 시작한지 열흘쯤 되었을까, 그 날도 여러 개의 박스를 품에 안고 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 탔다. 그러다 문득 거울을 바라보았는데, 엘리베이터에 희끄무레한 조명을 받은 내 얼굴은 눈 밑이 움푹 들어가고 퀭했다. 지금보다 적어도 15년은 더 산 것 같은 얼굴이었다. 삼십년을 봐왔던 얼굴인데 낯선 기분이 들어 무서웠다. 그 날 나는 집으로 돌아갈 때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쪽잠을 자고 일어나는데 온몸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입 안은 모래알을 씹은 것처럼 까끌거리고 관절은 삐걱거렸다. 연도 매한가지였다. 늙어버린 두 쌍의 눈이 마주치고 늘어나지 않는 물량과 점점 줄어드는 단가에 대한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매일 드는 기름과 노동력을 따져보았더니 거하게 현타가 와 그만두기로 결정했다. 그 날은 다시 깰 일 없이 푹 잠들 수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4월이 되자 매출이 아주 조금 나아졌다. 게다가 초저금리 코로나 대출을 받았기 때문에 약간 숨은 돌릴 정도는 되었다. 나는 다시 매일은 아니어도 이틀에 한 번쯤은 맥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연과 맥주를 마시며 즐겁게 떠들 수 있는 밤이 너무나도 소중해 잃고 싶지 않다. 

  마음 한구석은 갚아야할 또 다른 빚이 된 코로나 대출과 아직도 기승인 코로나19로 찝찝함이 남아있다. 그리고 어쩌면 또다시 택배박스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녀야할 상황이 될지 몰라 개운하진 않지만 스스로도 낯선 얼굴을 한 채 뛰어다니지 않을 수 있는 ‘일시적인’ 현재에 감사하다.



작가 동쥐

읽는 것을 좋아해 잘 쓰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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