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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마글방 Jun 29. 2022

나의 첫 경험

하마글방 섹슈얼리티반 수강생 물고기의 글

그 아이를 눈 여겨 본 것은 고등학교 2학년 1학기 4월 가창시험 때였다. 부를 노래를 우리가 정하고 가요도 된다고 음악선생이 일렀는데 그 아이는 롤러코스터의 ‘습관’을 불렀다. 후렴구의 ‘안녕~이제 그만~너를 보내야지~’라는 부분이 약간 쥐어짜인 신음처럼 들렸는데 그게 좀 웃겼다. 그 때부터 쉬는 시간 마다 각자 좋아하는 음악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의 씨디를 돌려 들었다. 그 아이는 윤상, 윤종신, 토이의 씨디를 주었고 나는 류이치 사카모토와 아스트로 피아졸라의 씨디를 건네 주었다. 나는 토이와 윤종신의 구린 발라드 가사들이 싫었는데 그냥 좋아하는 척 했다. 


그 아이는 키는 보통보다 작은데 마르기까지 해서 평소에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가무잡잡한 피부가 쨍한 햇볕 아래서 더욱 빈티나 보이게 만들었지만 그 아이만의 스타일이 있었다. 길게 기른 머리를 양 갈래로 땋고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밀집 모자를 쓰고 수학여행에 나타났을 때 그 아이를 모두 주목했다. 나이 많은 늙다리 아저씨 선생들이 곁눈질로 그 애를 쳐다보는 것이 싫었다. 꼭 한마디라도 말을 붙여 보려고 ‘너 모자는 어디서 났냐?’같은 잡소리를 해대는 것도 싫었다. 그 날 만큼은 그 아이 옆에 있으려고 고개를 숙인 채 그 아이 옆에 붙어 다닌 것 같다. 나는 그 아이가 특별히 귀엽게 입고 온 날은 더욱 호위무사처럼 그 아이를 지켰다. 


엄마와 아빠가 싸운 날엔 공중전화로 그 아이 삐삐에 음성 메세지를 남겼다. ‘지긋지긋하게 연놈들이 싸워대노.’ 그 아이는 그걸 듣고 또 내 삐삐에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 집에 온나.’ 그 아이의 부모님은 동네에서 소문난 자유방임 주의자들이어서 그 애 집 다락방은 그 애 친구들과 그 애 언니 친구들과 그 애 동생 친구들이 모두 자고 가는 열린 사랑방이었다. 학원을 째고 그 애 다락방에서 저녁 밥을 해치우고 누워서 만화책을 봤다. ‘나나’, ‘멋지다 마사루’, ‘천재 유교수의 생활’ 등을 돌려 읽으면서 킥킥 댔고, 또 어떨 땐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 같은 것을 돌려 읽기도 했다. 우리는 조숙한 여고생들이니까 섹스에 관한 장면에 대해서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섹스 장면에 일부러 줄을 쳐놓으면 그 애는 여백에 ‘ㅂㅌ새끼 ㅋㅋ’ 같은 것을 써놓았다. 


여름 방학이었다. 열린 교육 체제 아래 보충도 야자도 없던 학교덕에 나는 방학 내내 그 아이의 다락방에서 살았다. 그 애의 부모님은 아침 일찍 나가시고 저녁 늦게 오셔서 냉장고를 채워주었다. 어떤 날엔 같은 반의 친구가 와서 셋이서 놀 때도 있고, 또 만화 창작부 동아리 아이들이 우르르 와서 만화책을 읽기도 했다. 그 아이의 집은 주택가 언덕 꼭대기에 있었는데 맑은 날에는 부두가 보였고, 새벽에는 배가 입항하는 경적소리가 멀리서 들리기도 했다. 그렇게 북적거리다가도 어떨 때는 우리 둘만 남아서 부모님방에 있는 비디오 플레이어로 프랑스 영화를 빌려보기도 하고 누워서 수박을 먹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밤에 잘 때는 언제나 거의 둘 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같은 반 친구와 셋이서 놀다가 보수적인 그 친구 부모님이 외출을 절대 허락하지 않아서 아쉬워하며 돌아가면서 ‘새벽에 다시 꼭 올게!’라고 하고 밤에 집에 돌아갔다. 여느 밤처럼 둘이서 다락방에 누웠다. 밤에는 신해철의 심야라디오를 듣다가 잠들곤 했는데 그 날 새벽에 잠이 깼다. 부둣가에서 ‘부~ 부~’ 하는 소리가 들렸고 라디오는 새벽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으로 바뀌어 있었다. 에릭 사티의 나른한 선율이 방안을 메우고 있었다. 내가 깨서 뒤척이자 그 아이도 잠에서 깨서 ‘안자나?’ 라고 물어봤다. ‘응. 잠이 안온다.’라고 대답하니 그 애는 손을 뻗어 헐렁한 내 여름 티셔츠안에 손을 집어 넣었다. 당황한 내가 ‘뭐…하노?’라고 물으니 킥킥 대는 웃음소리 뿐이었다. 그 아이의 작은 손이 내 배를 훑다가 점점 내 가슴을 향했다. 내가 어색해 하며 등을 새우같이 굽히자 그 아이는 더 본격적으로 내 가슴을 조물락 대다가 손가락으로 내 젖꼭지를 살짝 쥐었다가 당겼다. 심장이 빨리 뛰다 못해 터질 것 같았는데 어둠속에 내 상기된 볼과 땀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 와중에 다행이었다. 돌아가고 있던 구식 선풍기 소리가 탁탁탁탁 났다. 나는 그 아이의 손을 내 손으로 살짝 감싸 쥐었다. 그리고 내 몸에서 그 손을 빼내 내 입으로 가져갔다. 그 아이의 손등에 내 입술을 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났다. 그 아이의 작은 손가락을 하나 하나 빨아 보았다. 새끼손가락부터 엄지손가락 까지. 짭잘하고 달큰한 맛이 났다. 


새벽에 온다는 친구가 열려있던 대문을 열고 들어와 인기척도 없이 다락방에 들어왔다. 우리 둘이 손을 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친구가 놀라더니 갑자기 말도 없이 뒤돌아 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게 아니라는 것을 변명이라도 하듯, 그 친구를 따라갔는데 그 친구가 전속력을 향해 뛰어갔고 나도 그 친구를 쫓아갔다. 버스정류장에 마침 그 친구 집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하는 바람에 그 친구는 그것을 잽싸게 잡아타고 집으로 가버렸다. 나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 아이와 다른 대학교에 진학하고 그 이후 우리는 각자 남자 친구를 만나고 섹스를 했다. 쿨한 척 그 경험을 별 것 아닌 것 처럼 전화로 떠들어 댔다. 막걸리와 소주에 초절임이 되어서 싸구려 모텔에서 했던 그 첫 경험들이 그 날 새벽 다락방에 비할 수 있었을까. 내 첫 경험은 그 다락방이었는지도 모른다. 


작가 물고기

페미니스트. 결혼을 앞둔 레즈비언. 겪었고 겪어 나갈 일들에 대해 씁니다. 

nash.p0657@gmail.com 

https://brunch.co.kr/@nollercoaster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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