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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협 May 07. 2024

#홍세화 작가

결 : 거침에 대하여

홍세화 선생을 나는 잊고 있었다.


지난 4월 어느 날,

그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서야

그 이름이 떠올랐다.


30대 초반 무턱대고 책 읽기를 시작했을 무렵,

뭔가 뭉클한 감동을 준 책 중 하나가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였다.


20년이 훨씬 넘은 시간 동안

그와 나 사이에는 큰 공백이 있었다.


마침 <한겨레 21>에서 그동안의 행보를

짧지만 자세하게 풀어 주어서

그의 책 <결 : 거침에 대하여>(2022)을

읽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한겨레 기자가 왜 그를 '시대의 어른'으로

칭했는지 그 이유를 이 책은 담고 있다.


◆ 책 읽다가 날것 그대로 쓰다


'오늘 '멋진 신세계'의 노예들은 대부분 계속 노예로 편하게 살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p17)' -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가 스쳐 지나간다. 점점 자본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이 슬픈 현실. 구매력이 큰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 그런 힘이 약한 대부분은 생계의 불안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그것을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더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현실을 살아가는 후배들에게 마음으로 전하는 큰 선배의 유언 같은 글들. 기대된다.


'오늘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물신주의... 돈 앞에 자유를 내던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나를 짓는 행위를 내던진 행태라고.(32-3)' - 돈 앞에 자유를 내던진 자가 바로 나다. 돈이 내 마음의 중심에 떡하니 앉아서 이래라저래라 한다.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고 싶지만 이내 수긍하게 된다. 나는 나를 지은 적이 한 번이라도 있긴 한가? 나를 통째로 회의하게 한다.


'사람에게 배고픔의 현상은 있어도 생각고픔의 현상은 없다(p71)' - 그냥 입이 쩍 벌어진다. 생각 고픔?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생소하다. 내 생각이 기아(飢餓) 상태임을 깨우쳐 준 선생이 고맙다. 이제 생각 고픔을 느끼면서 그것을 채우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다 아는 양(완성된 존재) 내 편견과 고집 속에 빠지기 싶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꼰대로 늙어가며 주위를 불편하게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조차도 모르고 살아간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느리게 책 읽고 날것 그대로 노트에 써 내려가는 이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내 생각 고픔을 채우는 시간 중의 하나이기에.


경제적 존재로만 머물러 살면서 '오늘'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현실. 미래의 불안 때문이다. 나를 짓는 일은 엄두도 못 낸다.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홍세화 선생은 73세의 남다른 시선으로 후배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이 책은 다 필사하고 싶을 정도로 되새겨야 할 부분들이 많다. 가히 충격적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큰 위로도 되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는 데서. 원하기는 선생처럼은 될 수는 없겠지만 나도 그런 안목을 가지고 삶으로 살아내고 싶다. 나도 생각 좀 하고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회의(생각) 하는 것이다. 그 과정이 나를 짓는 것이기에. 그러면 내 기준이 생기면서 비교하지 않게 되고, 내 정체성으로 세상을 당당히 대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신우일신! 감히 외쳐본다.


- 헤리의 반려책 이야기  


"신은 모든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켜주지만, 단 한 사람의 탐욕도 만족시킬 수 없다"고 했던 간디의 또 다른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가진 자와 힘센 자의 탐욕은 가진 자와 힘센 자의 것이어서 통제되기 어려운데, 정의롭지 못한 세상이란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생존 조건도 충족하기 어려운 세상을 말할 것이다. 인간이 자유를 포기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이유보다 물질의 결핍 상태가 지속될 수 있으리라는 불안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의 자유나 사람됨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그의 소유물과 그가 속한 집단, 계층에 관심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인간이 아니라 그가 가진 구매력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의 1차적 관심사는 자신의 은행 잔고"라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 시사하듯, 구매력을 높이거나 유지하기 위한 긴장만 남은 것. 그래서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라는 물음에는 관심이 없는, 자기 형성의 자유를 일찍부터 내던진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한국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모습이라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p14-5)


- 홍세화의 <결 : 거침에 대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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