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책을 읽기 전에 작가의 프로필을 꼼꼼히 본다. 그것이 부족하다 싶으면 검색을 해서 더 자세히 본다. 그리고 작가의 말을 먼저 읽고 그 첫 페이지를 연다. 그래서 소설이나 시를 읽기 전에 작가의 산문이나 에세이를 먼저 읽기를 좋아한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읽을 때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옥중에 썼다는 정도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번에 그가 직접 쓴 자서전을 발견하고 이렇게 읽게 되다니 너무 감사하다. 그의 영성에 깊이 빠질 준비 완료!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영혼에 은혜의 역사가 시작되던 바로 그 때를 자주 마음에 새기는 것이 유익합니다.(p17) - 나의 그때는 언제였지? 고1. 어느 일요일. 자습 차 학교 가던 길목, 그 아침을 잊을 수 없다. 금박 성경 책을 손에 들고 교회로 가는 한 친구의 환한 미소! 그렇게 하나님은 나에게 다가오셨다. 나도 자주 그날 그 시각을 이렇게 되새겨야지. 이런 기억이 나를 지탱하게 해 준다는 그의 팁을 따라서.
그의 영성이 깊다. 어떤 의심이 생길 때마다 그는 말씀 속으로 들어간다. 그게 핵심이다. 그리고 기도하며 풀어간다. 직접 체험한 영적 전쟁사를 이야기꾼 재능을 가진 그가 쓴 이 책. 고전으로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360년이 지난 지금 읽고 있는 나에게 그대로 공감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 시절 수련회에 가서 밤새우며 신앙을 이야기해 주던 옛 선배들이 생각난다. 벌써 40년 전의 일이 되고 있다. 다들 신앙 안에서 잘 지내고 계시겠지? 그 후 일면식도 못한 분들이 꽤 있다. 그때 감사했습니다. 선배님들!
존 번연이 유혹자의 유혹에 자주 힘들어한다. 멸망과 심판의 말씀이 자기를 두고 말하는 것 같다고, 영원한 멸망만이 남아 있다고, 그리고 더 이상의 소망이 없음을 깨닫고 두려워 떤다. 그러다가 사랑과 생명의 말씀으로 다시 회복되고, 영적 평안을 누린다. 이것이 계속 무한 반복되는 듯한 일상의 영적 기록이 펼쳐진다. 신앙은 이렇게 치열한 영적 전쟁임을 그의 경험을 통해 리얼하게 보여준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가 무겁다고 요령을 피우다가 넘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닌 나를 보게 된다. 영적 거인도 이런 과정을 겪으며 성장했다는 위로와 동시에 이런 문제를 너무나 경시하며 살아온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내 영성이 가벼운 이유, 별로 고민하지 않는 데에 있다는 것을 깊게 뉘우치는 시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하나 깨우치게 되었다. 내가 장차 임할 복된 세상인 '천국 소망'을 거의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것을. 어제보다 오늘이 더 천국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을 더 기쁘게 감사하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음을.
- 헤리의 반려책 이야기
오, 제가 범한 큰 죄악들에 대한 기억, 제가 겪은 큰 시험에 대한 기억, 제가 경험한 영원히 멸망할 것만 같은 큰 두려움에 대한 기억! 이 기억들이 제 마음에 생생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좋지 않았던 기억들로 인해 제가 받았던 큰 도움에 대한 기억, 제가 하늘로부터 받은 큰 후원에 대한 기억, 저처럼 곤고한 사람에게도 부어주신 그 큰 은혜에 대한 기억들이 제 마음에는 더욱더 새롭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 젖과 꿀은 이 광야 저편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여러분이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게으르지 말고 계속해서 나아가게 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