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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렙백수 윤준혁 May 21. 2019

왜 인문학이 필요하지?

#인문학 #토론수업 #논증

  오늘날 인문학은 하나의 대중적인 문화콘텐츠가 되었다. 그 덕에 다양한 형태의 인문학이 생겨났고, 그에 따라 인문학에 대한 사람들의 취향도 일관적이지 않다. 2010년 10월 모두에게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선택받는가 싶더니, 그해 겨울 베스트셀러 선두자리를 탈환한 책은 청년의 삶을 공감하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넨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였다. 그리고 우리는 이 둘 모두를 똑같이 인문학이라 부른다.


  문화와 인문학은 인간의 결핍이 소비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닮아있다. 특정 국가에서 특정 소재의 콘텐츠가 많이 소비되는 이유는 그 소재가 내포하고 있는 가치의 결핍을 나타낸다. 미국 드라마에서 패밀리 드라마가 자주 나오는 이유는 가족애가 부족해서이고, 한국에서 연인들의 달달한 로맨스 드라마가 잘 나가는 이유는 실제로 그런 판타지 같은 사랑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인문학에 열광하는 현상은 과거를 성찰하고, 원리를 꿰뚫어 보고 그것을 잘 표현하는 인문학적 능력의 결핍이 소비성향으로 나타난 것이다.


  여전히 한국사회에서는 '인문학적 소양'과 '인문학적 감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는 강연 산업에 확실히 드러나게 된다. '인문학 취업특강', '인문학 토크콘서트', '인문학 체험활동'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인문학'이라는 단어가 붙은 강연 상품이 잘 팔리고 있다.

  남들이 배우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불안한 우리는 무엇인가에 홀린 듯 서점의 인문학 서가를 두리번거리지만, 도대체 왜 사회가 인문학적 능력을 원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는다.


  내가 강연을 시작하면 그 수업에 대한 동기유발을 20~30분 정도 먼저 하는 편이다. 스스로가 왜 이 자리에 앉아 소중한 시간을 내서 이 강의를 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납득이 되지 않으면 학생들은 수업이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인문학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사회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필요로 하니 우리는 닥치고 배워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힘들어도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듣기야 하겠지만 인문학적 지식을 학습자가 스스로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그리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라면 학생들에게 그런 식의 당위성을 부여해서도 안된다.



  사회가 원하는 인문학적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인문학적 소양을 평가해 채용하겠다고 발표한 기업들의 질문을 모아 보았다.


①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을 소개하고, 그 책을 선택한 이유와 느낀 점을 기술하시오

                                                                                   - 신한은행 2014년 상반기 자기소개서 문항


② 여행한 곳 중 가장 감명 깊었던 한국사 유적지가 있다면 그 이유와 함께 소개하시오

                                                                                             -GS리테일 2014년 하반기 2차 면접


③ 신사임당은 살아생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사후에 아들 율곡 이이 등 사림이 정권을 잡고 신사임당을 존중하면서 부각되었다. 본인의 관점에서 역사상 저평가되었다고 생각하는 인물에 대해 쓰시오

                                                                                       - 현대자동차 2014년 하반기 인적성검사



  위 예시 속 질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답이 정해진 질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답은 질문을 받는 면접자의 수만큼 다양할 것이다. 좀 더 정확히 해석하자면 기업은 개인의 생각과 가치관이 담긴 우리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싶어 한다. 도대체 우리들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행위가 기업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첫째  조기퇴사를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2018년 사람인이 기업 인사담당자 657명을 대상으로 '퇴사자 현황과 변화'에 대해 조사한 결과 1년간 직원 퇴사율은 평균 17%이며, 1년 차 이하의 신입사원 퇴사율은 49%로 가장 높았다. 이중 가장 높은 원인은 이직(41.7%)이었으며 그 이유로는 '조직 및 직무적응 실패'(49.1%)를 원인으로 꼽았다. 조사 결과처럼 기업의 채용담당자들은 비상이다. 신입사원을 뽑는 면접 비용, 그들일 길러내기 위한 교육비용이나 업무지원비용 등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했지만 조기퇴사로 인한 투자손실은 물론 인재 유출까지 걱정해야 한다. 그러나 위와 같은 질문은 면접자의 직무적합도나 개인적인 특성을 알아내는데 기업에게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현대자동차의 '본인의 관점에서 가장 저평가되었다고 생각하는 인물에 대해 쓰시오'와 같은 질문은 저평가된 인물에 대한 면접자의 설명 속에서 특정 상황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개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과 어려운 문제를 직면했을 때의 문제 해결 능력을 들여다볼 수 있다. 토익점수나, 한국사 점수와 같은 스펙으로는 알아낼 수 없는 개인의 선호가치 등을 물어 기업과의 궁합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기업이 추구하는 인재상과 일치하는 가치관 들을 면접자가 답변했다면 채용 후 기업문화에서도 잘 적응하리라는 기업의 판단이 담겨있을 것이다.


둘째 수동적인 인재를 걸러내기 위해서이다. 개인의 가치관이야 꾸며 말할 수 있는데 질문 몇 개로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니 도무지 감이 오지 않을 거다.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 예시를 보자.




<예시 1>

Q. 조선시대 인물 중 귀하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


  <예시 1>의 질문을 본인이 받았다고 가정해보자. 어떤 인물들이 생각나는가? 익히 알만한 조선 시대 위인도 많겠지만 면접을 철저히 준비한 사람이라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위인들을 찾아내 대답할 수도 있다.




<예시 2>

Q. 조선시대 인물 중 귀하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

① 세종대왕   ② 이순신   ③ 김덕령   ④ 허난설헌   ⑤ 김만중


  <예시 2>는 어떤가? 확실히 보기가 없었던 <예시 1> 보다는 대답하기가 쉬워 보인다. 어쩌면 구운몽의 김만중이나, 조선 중기 여류시인으로 유명한 허난설헌보다는 익숙한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을 선택해 대답할 수도 있다. 5지선다의 문제는 선택지 이외의 것을 사고하는 것을 방해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받아왔던 공교육은 어쩌면 수동적인 문제 해결과 획일화된 답을 강제했다. 인문학적 질문은 정답이 없을 뿐 아니라 선택지가 존재하지 않아 능동적인 사고를 가능하게 해 준다. 하나의 문제에 대해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기업에서는 위와 같은 질문을 통해 수동적인 사람을 검열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디어맨을 뽑으려 한다.


셋째 정보를 잘 활용할 인재를 뽑기 위함이다. 현대를 '정보의 시대'라고 부른지는 한참이나 오래 됐다. 정보가 워낙 없던 아주 오랜 옛날이야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정보의 비대칭'이 발생해 우위를 가질 수 있었지만 정보가 너무나 많아진 요즘 단순한 정보가 아닌 다양한 정보를 찾고 그중에 '유의미한 자료'를 찾아내야 의미가 있다. 마찬가지로 기업이 원하는 인재란 정보를 검색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것을 분석해 유의미한 자료로 구성하고, 구성된 자료를 잘 표현하는 것 까지를 원한다. 인문학적 질문들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배경지식을 물어보는 질문이 아니다. 검색한 정보를 문제의 의도에 맞게 구성한 후 그것을 멋들어진 글이나 말이라는 도구로 창작하거나 표현해야 한다. 이런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때때로 프레젠테이션(PT)의 형태로 면접이 치러지기도 한다.


PT 하면 생각나는 이제는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


  꼭 기업이 아니더라도 생활 속에서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많다. 인문학적 능력이 잘 연마하려면 논리가 기본적인 받침이 되어야 한다. 글을 쓰거나 발표를 준비할 때도 자신의 생각이 담긴 주장과 그 주장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정보를 논리적으로 구성한 뒤 마지막으로 그것을 훌륭하게 표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문학적 능력을 3가지로 요약해보면 첫째 유의미한 정보를 찾아내는 '정보검색 능력', 둘째 찾아낸 정보를 바탕으로 논리적인 주장으로 만들어내는 '구성 능력' 셋째 마지막으로 이 주장을 훌륭하게 표현해 내는 '연출 능력'이다.



토론1인분 5화 - https://brunch.co.kr/@herman-heo-se/51



토론1인분 4화 - https://brunch.co.kr/@herman-heo-se/49



토론1인분 3화 - https://brunch.co.kr/@herman-heo-se/48


토론1인분 2화 - https://brunch.co.kr/@herman-heo-se/46


토론1인분 1화 - https://brunch.co.kr/@herman-heo-se/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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