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내가 보는 건 '진실'인가 '왜곡'인가
나는 인간이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눈, 귀, 손, 발 같은 감각기관을 통해 세상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 감각은 종종 착각한다.
착시현상만 떠올려도 충분하다.
그리고 감각을 해석하는 뇌는 훨씬 더 복잡하게 왜곡한다.
해석에는 기질, 성장 환경, 상처, 욕망, 믿음 같은 요소들이 녹아든다.
그래서 같은 장면을 봐도
사람마다 눈여겨 보는 포인트가 다르고,
서로 다른 감정을 느끼면서,
전혀 다른 기억을 갖게 된다.
산에서 눈이 내리는 풍경을 보고,
로맨스 영화를 봤던 사람은
전체적인 숲의 조경에 '집중'하면서 아름답고 설레는 장면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군대를 막 제대한 사람은
산길에 쌓인 눈에 '집중'하며, 이가 갈리고 짜증나는 장면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나중에 무엇을 봤냐고 물어보면,
한 사람은 산에 울창한 나무들이 많고, 아늑한 구름들이 가득찼으며,
새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눈으로 산길이 막혀 있고, 하늘이 구멍이 난 듯이 수 많은 눈들이 어지럽게 쌓였다고 기억한다.
이렇듯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전적으로 개인의 시선에 달려 있다.
그래서 나는 각자의 시선과 감정을 나누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본 것, 느낀 것이 곧 진실이라고 믿는다.
나도 그렇다.
특히 나이를 먹고, 익숙한 패턴을 반복해서 겪을수록,
내 판단이 진실에 더 가까워졌다고 믿게 되기 쉽다.
여러 사람의 공감과 반복된 경험은 '지혜'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하나의 개인적 경험만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일반화한다면,
그것은 지혜가 아니라 '아집'이다.
그리고 다수의 동의가 항상 진실이라는 보장도 없다.
과거의 신분제나 노예제도처럼,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이
지금은 부당하고 잔혹한 일로 평가받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나는 믿는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비슷한 감정과 해석에 공감한다면,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데 유용한 지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이 일기를 시작해본다.
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만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나의 경험과 가치관으로 해석해보려 한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현실감각을 유지하고 있는지,
혹시 빠진 아집은 없는지를 확인하고 싶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더 나은 관점을 배워보고 싶다.
언젠가, 내 글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그 글이 누군가에게 작은 울림이나 위로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충분하다.
나에겐 그것이 가장 큰 보람이자 기쁨일 것이다.
이것이 내가 ‘세상 관찰일기’를 쓰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