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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상예술가 정해인 Jan 26. 2024

#26 할머니의 숙제

먼저 간 아들

  [지나간 직장의 이야기를 풀어봅니다.]

  상속세 조사가 배정되었습니다. 전산으로 출력된 자료를 보니 돌아가신 분은 40대였습니다. 배우자도 자녀도 없었습니다. 보험금만 수십 개로 총액이 몇 억원이 있었죠. 그런데 상속세로 신고된 자료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상속세 조사 통지서를 받아 들고 할머니 한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사실 상속세 조사를 하면서 처음 대면하는 자리가 가장 어렵습니다. 돌아가신 분에 대해서 조사팀 입장에서는 무미건조하게 이야기해야 하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때로는 배우자이자, 부모이자, 자녀의 상실을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이죠. 보통 상속세 조사는 돌아가시고 1년이나 2년이 지난 뒤에 이뤄집니다. 그러다 보니 가족으로써 누군가를 잃어 괴롭거나 슬픈 기억인데, 상속세 조사로 인해서 잠시 잊고 있던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할머니는 본인보다 먼저 건강하게 지내다 갑자기 심장마비로 사망한 아들 때문에 눈물을 계속 흘리셨습니다. 본인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아들을 먼저 보내셨다고 한참이나 슬퍼하셨습니다. 감정이 조금 진정되고 나서야 말씀을 드렸습니다.

  "자녀 분이 집이 한 채 있으시고 생전에 사업을 하셔서 보험금으로 받을 금액이 있으시네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으로 상속세가 1억 원 정도는 나올 거 같습니다. 상속세는 신고를 하지 않으시면 20%의 벌금 성격의 가산세가 붙고 세금 납부가 안 돼서 이자도 붙게 되거든요."

  그렇게 상속세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할머니는 이렇게 답하시더군요.

  "선생님 세금은 얼마가 나와도 낼게요. 아들이 죽어 받는 보험금으로 호의호식을 할 수 있겠어요? 다만 아들이 죽기 전에 카드랑 빚이 조금 있었는데 그런 건 확인을 해주시면 안 될까요?"

  할머니를 보내드리고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자식까지 잃어서 상심이 큰데 세금까지 많이 나간다면 얼마나 가혹할까요? 거동도 불편하신 할머니를 대신해 제가 빚을 찾아보기로 하였습니다.


  돌아가신 자녀분은 사업을 하셔서 신고된 순자산(재산-빚)이 1억 원정도 있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차량을 빌렸다고 한 기억이 나서 확인해 보니 신고되지 않은 차량 리스대금으로 몇천만 원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돌아가신 분의 빚을 확인하게 되어 상속재산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죠.

  아들이 사업을 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출 이력을 조회해 보고 돌아가시기 전에 개설한 마이너스 통장을 확인하게 되어 그 역시 채무로 넣을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가 이야기하신 신용카드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 신용카드사가 한 두 곳도 아닌데 전체 카드사에 공문으로 돌아가신 날 현재의 카드 미결제 대금을 조회했습니다. 금융거래내역에 매월 결제 대금이 나가는 카드사는 정확하게 한 번 더 체크를 하고 나서 혹시 누락된 카드사가 없는지 꼼꼼히 살펴보았습니다. 역시나 신용카드 대금만 해도 몇천만 원이 남아 있더군요. 그렇게 카드 대금도 채무로 넣어주었습니다.

  혹시나 자료에서 상속재산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는지 체크해 보았습니다. 보험금 중 1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은 아들이 아닌 할머니가 보험료를 납입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할머니께 확인해 보니 아들을 위해서 할머니가 넣으신 금액이었습니다. 그래서 상속재산에서 보험금 1억 원은 제외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3개월간의 긴 세무조사가 끝났습니다. 누락된 재산을 포함시키고, 돌아가신 분의 빚을 찾아서 다시 상속세로 계산해 보니 최종적으로 3천만 원 정도 계산이 되었습니다.

  조사 결과 통지서를 보내드리고 하루라도 빨리 결정해 달라고 신청하시면 이자가 조금 줄어든다고 말씀드렸더니 그날로 신청서를 제출하였습니다. 그렇게 30만 원 정도의 세금을 줄일 수 있었고 할머니는 3천만 원의 상속세를 납부해 주셨습니다.

  할머니는 가시면서 연신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오히려 "3천만 원이나 되는 세금이 나왔는데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아닙니다, 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궁금한 게 다 풀렸고, 저 대신에 자료를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라고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다리가 불편하신 할머니를 현관문 앞까지 배웅해 드렸습니다.


  여러 가지 불효가 있겠지만 가장 큰 불효는 부모님보다 먼저 사망하는 것이 가장 큰 불효가 아닐까요? 돌아가신 자녀분이 의도해서 사망하신 건 아니었지만 한 가족을 이루고 자녀들과 함께 한 즐거운 기억을 만드셨다면 어떠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할머니에게 있어 아들은 그저 늘 고생만 하고 돈만 벌다 떠난 아들로 기억되어 있으셨습니다. 사람의 일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님이 옆에 계실 때 잘해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내일이란 우리의 예상과 달리 오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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