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확률에 진심을 담는 법
지난밤 꿈을 꾸었습니다. 집에 말이 들어오길래 '우리 집 말이 아닌데, 누구 말일까? 주인에게 돌려줘야 하지 않나' 하면서 꿈이 깨었죠. 아침에 일어나 무심코 꿈해몽을 검색해 보니 말이 들어오는 꿈은 재물운을 의미한다는군요. 그런데 꿈속에서 제가 그 말을 돌려주려 했다는 게 재미있습니다. 운이 찾아왔는데 확신하지 못하고 주인을 찾으려 했다는 건, 어쩌면 평소 제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꿈해몽 사이트에서는 이렇게 조언하더군요. "누구에게 돌려줄지 고민했다는 건 그 운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다는 뜻이니, 그냥 밀어붙이라"고요. 합리적이지 않은 조언이지만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 커피 대신 로또를 샀습니다.
복권을 사면서 문득 며칠 전에 아내에게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을 선택하겠다"는 말에 대해 아내는 이렇게 말했죠. "실현 불가능하니까 그런 말을 하는 거다." 냉소적이지만 어딘가 진실을 찌르는 말이었습니다. 로또 당첨도 마찬가지입니다. 확률이 지극히 낮으니까, 거의 불가능하니까 이렇게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것이겠죠.
그래서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습니다.
"어제 말꿈 꿨는데 로또 샀어. 당첨되면 당신 다 가져."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당첨되면 마음 바뀔까 봐~"
농담 같은 진담이었습니다. 실제로 당첨된다면 제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당첨 확률이 워낙 낮으니까 이런 쿨한 제안을 할 수 있는 거겠죠.
로또가 실제로 당첨되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습니다. 세금쟁이로 살아오면서 숫자의 의미를 너무 많이 봤습니다. 복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선택이라는 걸 압니다. 기댓값을 계산해 보면 손해를 보도록 설계된 구조죠. 로또를 사는 순간 절반이 날아가니까요. 하지만 가끔은 그런 비효율도 나쁘지 않습니다. 특히 그것이 누군가에게 잠깐이나마 즐거운 상상을 선물한다면요.
아내가 답장을 보냈습니다.
"ㅋㅋㅋ 고마워. 기대해 볼게."
웃음을 가득 담은 짧은 답장이었지만, 그 뒤에 숨은 의미를 압니다. 당첨될 거라고 기대하는 게 아니라, 이 마음이 고맙다는 뜻이겠죠. 불가능한 일을 빌미로 마음을 전하는 것. 어쩌면 "다시 태어나도 당신을 선택하겠다"는 말도 같은 맥락일지 모릅니다. 실현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히려 진심을 담기 쉬운 말.
이번 주 토요일, 로또 추첨일입니다. 과연 당첨될까요? 아마 안 될 겁니다. 통계가 그렇게 말하니까요. 하지만 토요일 저녁, 번호를 확인하는 그 순간만큼은 아내에게 즐거움을 줄 수는 있겠죠. 당첨되면 뭘 할까? 어디로 여행 갈까? 부모님께 뭘 해드릴까?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서로가 바라는 것들을 알게 되겠죠.
결국 이 로또는 당첨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값어치를 했습니다. 커피 한 잔 값으로 아내의 웃음과 주말의 소소한 기대를 샀으니까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제가 꾼 말꿈에서 저는 그 말의 주인을 찾으려 했지만, 현실에서는 그 재물운(?)을 아내에게 주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꿈보다 현실에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된 셈입니다.
말이 집으로 들어오는 꿈, 로또, 불가능한 확률. 이 모든 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일상에서 우리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가끔은 이런 비합리적인 선택이 주는 작은 행복도 필요합니다. 당첨되지 않을 로또 한 장에 담긴 상상의 여유, 실현 불가능한 약속에 담긴 진심. 그런 것들이 삶을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요.
※ 본 글은 로또 구매를 조장하는 글이 아닙니다. 로또 당첨 확률은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으며, 지나친 기대는 심신을 미약하게 만들고 가계 살림을 위태롭게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말꿈 꿨으니까"라는 근거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바 없으며, 꿈해몽 사이트의 조언을 맹신하는 것은 합리적 판단력을 흐리게 할 수 있습니다. 복권은 커피 한 잔 값 정도로 즐기되, 인생 역전의 수단은 될 수 없답니다. 진짜 재물운은 복권이 아니라 매달 꾸준히 투자하는 데서 옵니다. 하지만 그건 재미없잖아요. (그래도 투자하시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