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세무조사관이 홈페이지를 만든다구요?

AI로 세무법인 홈페이지를 만들며 겪은 좌충우돌 기록

by 일상예술가 정해인

바이브 코딩으로 홈페이지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부실한 것 투성이지만, 그래도 경험으로는 괜찮네요. 제가 며칠 동안 사투를 벌였던 홈페이지 작업과정을 공유합니다.

https://hangiltax.com/

23년. 내가 국세청이라는 조직 안에서 '조사관'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시간이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믿음 하나로, 서류 너머의 진실을 쫓는 것이 내 일의 전부였다. 퇴직 후 세무법인의 전무이사로 새 출발을 하면서 나는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우리 세무법인에도 제대로 된 '디지털 영토'가 필요하다는 것. 남이 짜준 틀이 아닌, 우리의 철학과 전문성이 온전히 담긴 집. 홈페이지 말이다.


대표 세무사님께 조심스럽게 내가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드렸다. 다행히 세무사님은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 그 한마디에 나는 의욕이 넘쳤다.

아마 너무 넘쳤던 것 같다.


시작은 창대했다.


'커서(Cursor)'라는 AI 기반 코딩 도구를 처음 열었을 때, 나는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말 한마디면 코드가 짜이고, 화면이 바뀌었다. "세무조사관의 비밀 노트를 보여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줘." 이 한 문장에 화면이 채워지는 것을 보며 '기술의 민주화'를 실감했다.


그런데 만들다 보니, 어느 순간 홈페이지가 법인 소개보다 내 소개에 가까워져 있었다. 내가 23년간 해온 일, 내가 그린 그림, 내 에세이. 나도 모르게 '세무법인 한길택스'의 홈페이지가 아닌 '정해인의 홈페이지'가 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전문가란에 대표 세무사님보다 내가 앞서 소개되어 있고 다른 세무사님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뒤죽박죽이었다.


머릿속에서 대표 세무사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전무님, 이거 법인 홈페이지예요, 아니면 본인 자랑 홈페이지예요?"

아직 그 말을 직접 듣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세무사님과 다른 직원분들의 눈을 거치면 지금과는 꽤 다른 모양이 될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없는 것을 새로 만드는 것보다, 있는 것을 다듬는 일이 훨씬 쉬운 법이니까. 초안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온 셈이다.


문제는 내가 '터미널'이라는 검은 창과 마주했을 때 시작되었다.

숫자로 된 법조문은 익숙해도, 영어로 된 에러 메시지는 낯설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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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법령과 씨름해 온 나였지만, 컴퓨터가 내뱉는 짧고 차가운 명령어들은 외계어처럼 느껴졌다.


가장 큰 고비는 깃허브(GitHub)라는 온라인 저장소에 내 코드를 올리는 과정이었다. 분명 AI가 알려준 대로 따라 했는데, 화면은 온통 빨간 경고창으로 뒤덮였다. "너는 누구냐"라고 묻는 신원 확인 에러부터, "보낼 물건이 없다"는 황당한 메시지까지.


그 순간의 당혹감은 20년 전, 처음 세무조사 현장에 나가서 예상치 못한 장부를 마주했을 때의 그 긴장감과 묘하게 닮아 있었다.


'그냥 업체에 맡길걸 그랬나.'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엉킨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내며 진실을 찾아냈던 그 끈기가 어디 가겠는가.


AI와 밤낮으로 대화하며 에러의 원인을 추적했다.


알고 보니 보안 설정 하나가 어긋나 있었고, 내 컴퓨터와 온라인 저장소의 이름이 서로 달랐을 뿐이었다. 세무조사로 치면 계좌 명의자와 실소유자가 달라서 생긴 불일치 같은 것. 원인을 알고 나면 허탈할 만큼 단순한 문제.


하나씩 바로잡고, 드디어 터미널에 흰색 글자들이 줄줄이 올라가는 것을 보았을 때— 나는 23년 만에 처음 느껴보는 기이한 쾌감을 맛봤다. 숫자가 아닌 코드로 무언가를 증명해 낸 기분이었다.


마지막 관문은 hangiltax.com이라는 진짜 주소를 연결하는 일이었다. Vercel이라는 서비스에 홈페이지를 배포하고, 폭죽이 터지는 화면을 보았을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하기 어렵다. 모니터 속의 환상이 아니라, 전 세계 누구나 접속할 수 있는 실재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홈페이지를 완성하고 나니 깨닫게 된다.


코딩도, 세무도, 예술도 결국 본질은 같다. 무질서한 것들에 질서를 부여하고, 보이지 않는 가치를 눈에 보이게 만드는 일이다.


물론 이 홈페이지는 아직 미완성이다. 대표 세무사님의 눈을 거치고, 직원분들의 의견이 더해지면 지금과는 꽤 달라질 것이다. 어쩌면 내 흔적이 많이 지워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억울하지 않다. 처음부터 이건 나라는 개인의 집이 아니라 내가 속한 세무법인의 집이었으니까.


다만 한 가지는 남는다. 세무 전문가로 살아온 내 이력에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어본 사람'이라는 항목이 하나 추가되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 우여곡절은 충분히 값진 경험이었다.


이제 네이버와 구글이라는 거대한 바다에 '한길택스'라는 닻을 내렸다. 누군가는 세무 전문가를 찾아 이곳에 올 것이고, 누군가는 그냥 스쳐 지나갈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고, 남이 만든 것보다는 내가 만든 것이 낫다. 이제는 어떻게 고쳐야 할지도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커서를 켜고, 우리 법인의 영토를 가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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