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며칠 전, 오랜만에 모인 지인들과의 식사 자리였습니다. 즐겁게 담소를 나누던 중 한 세무사 친구가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이제 세무조사도 AI 로봇이 나와서 하는 시대가 오는 거 아니야?” 농담 섞인 말투였지만, 그 눈빛엔 막연한 불안함이 서려 있었습니다. 저는 웃으며 답했습니다.
“반쯤은 맞고, 반쯤은 틀린 말이야.”
사실 세무 행정을 자동화하려는 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과거에도 ‘데이터 마이닝’이라는 분석 기법을 통해 허위 세금계산서를 잡아내려는 시도가 있었죠. 결과는 어땠을까요? 기대와 달리 실무에서는 거의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세무조사의 핵심은 단순한 데이터 추출이 아니라 **‘맥락의 이해’**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매년 실시하는 세무조사는 약 1만 건 정도입니다. 법인 사업자 수가 100만 개를 넘어선 점을 감안하면 전체의 채 1%도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 99%의 사업자는 조사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죠.
조사관이 현장에 나가보면, 같은 업종에 비슷한 매출이라도 회사의 운영 형태와 구조에 따라 비용 항목이 천천히 만별입니다. AI가 장부를 완벽히 분석하려면 '비슷한 상황'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이는 기업의 경영 활동을 표준화하기란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는 두 가지 측면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입니다.
초임 조사관의 '길잡이': 어떤 항목을 먼저 들여다봐야 할지 막막할 때, AI가 제시하는 분석 리포트는 훌륭한 나침반이 됩니다. 조사의 결정적인 '스모킹 건'을 찾아줄 수 있죠.
인간의 '실수'를 잡아내는 감시자: 20년 동안 세무 현장에서 열심히 일했다고 자부하는 저조차, 복잡하게 꼬인 '특정법인 증여의제' 규정 앞에서는 펜을 멈추게 됩니다. 실제로 예전에 이 복잡한 계산을 놓쳐 감사 지적을 받고 밤잠을 설치던 날, 저 또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누가 이 복잡한 것 좀 대신 체크해 줄 순 없을까?' 하고 말이죠. AI는 지치지 않습니다. 인간이 놓치기 쉬운 일관된 오류를 찾아내는 데 이보다 유능한 조수는 없을 것입니다.
AI는 확률과 비율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숫자가 가진 이면의 사정을 듣고, '이것이 정당한 비용인가, 아니면 편법인가'라는 애매모호한 경계에서 최종 판단을 내리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으로 남을 것입니다.
AI가 촘촘한 그물망을 짜고 세상을 분석할지라도, 그 그물 사이를 흐르는 우리네 삶의 구구절절한 사정까지는 다 읽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결국 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정교한 영수증보다, 누군가에게 내 삶을 떳떳하게 설명할 수 있는 '진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술이 세상을 바꿔도, 결정의 무게를 견디는 건 결국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