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범람 속에서 문해력이라는 단단한 근육을 기르는 법
어제 친구와 이야기했던 못다한 이야기를 추가하다.
AI가 모든 지식을 검색해주고 정답까지 알려주는 시대가 왔다. 예전 같으면 공부의 목적이 분명했다. 모르면 외워야 했고, 이해가 안 되면 반복해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르다. 모르는 건 검색하면 되고, 이해가 안 되면 AI에게 물어보면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공부가 훨씬 쉬워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는 수학이 중요하다, 과학이 중요하다, 코딩이 중요하다. 미래를 준비하려면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그런데 나는 반대로 생각한다. 역설적으로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과목은 ‘국어’다.
수학이든 과학이든 경제든, 결국 공부의 시작은 글을 읽는 데서 출발한다. 문제를 푸는 능력보다 먼저 필요한 게 있다. 문제가 무엇을 묻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 문장 안에 담긴 의도와 조건을 파악해야 한다. 문장을 읽고 맥락을 잡고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힘. 결국 그게 문해력이다. 그리고 문해력이 없으면 아무리 똑똑해도 틀린 답을 맞히려고 애쓰게 된다.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중요한 건,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내는 일이다.
AI 시대의 공부는 더 그렇다. AI가 보여주는 정보는 많다. 너무 많아서 문제다. 결과는 화려하고 답은 단정적이다. 하지만 그 답을 그대로 믿는 순간부터 우리는 생각을 멈춘다. AI가 준 결과를 ‘이해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없다면 우리는 기술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기술에 종속된 사람이 된다. 도구를 다루는 인간이 아니라 도구에 끌려다니는 인간. 결국 문해력은 AI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생존 기술이 된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을 때 세상은 열광했다. 그 순간부터 모두가 코딩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코딩을 못 하면 뒤처진다고 했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때는 정말 그랬다. 하지만 불과 몇 년 만에 판이 바뀌었다. AI는 인간보다 더 완벽하게 코딩을 해낸다. 사람이 며칠 걸릴 일을 몇 분 안에 해버린다. 그러면 질문이 다시 생긴다. 코딩이 이렇게 빨리 대체된다면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답은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의 바탕이다. 결국 학문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수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정답을 맞히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을 하기 위해서다. 한 문제를 더 맞히는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현상의 구조를 읽고 이면을 꿰뚫어 보는 힘이다. 기술은 바뀌어도 사고방식은 남는다. AI가 코드를 짜는 시대일수록 인간에게 필요한 건 코딩 그 자체보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의하고 어떤 방향으로 풀어야 하는지 판단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이 모든 능력의 바닥에는 결국 문해력이 깔려 있다. 문해력은 쓰지 않으면 퇴화한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영어 논문을 편하게 읽던 사람이 한글 번역기에 의존하고 짧은 영상 콘텐츠만 보다가 어느 순간 영어로 된 긴 글을 읽는 게 고역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렇게 기술에 의존하다 보면 문장을 따라가는 체력이 사라지고, 맥락을 잡는 힘이 약해진다. 사유는 얕아지고 생각은 쉽게 끊긴다. 결국 배우는 사람이 아니라 소비하는 사람이 된다.
공부에 왕도는 없다. 하지만 길은 있다. 긴 글을 읽고 끝까지 따라가는 힘을 길러야 한다. 흐름과 맥락이 있는 독서를 통해 사고를 확장해야 한다. 파편화된 문장만 주워 먹는 독서는 머리를 단단하게 만들지 못한다. 깊이 있는 책을 읽고 한 권을 끝까지 가져가는 경험이 ‘공부 머리’를 만든다. 그건 단순히 책을 많이 읽는다는 뜻이 아니다. 읽고 이해하고 연결하는 힘을 반복해서 키운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학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은 가야 할까? 현실적으로 학벌의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대학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선택지다. 정말 자신이 원하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면 1년 정도 쉬면서 공부 머리를 키워 다시 도전하는 것도 방법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의 가장 큰 가치는 학벌이 아니라 시간이다. 대학 시절은 내가 무엇을 할지 선택하고 고민할 수 있는 완충지대다. 그 시간을 통째로 건너뛰고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나에 대한 고민’의 시간을 잃게 된다. 그리고 그 시간은 한 번 잃으면 다시 찾기가 어렵다.
사람들이 흔히 성공의 핵심이 지능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나는 대학 시절 내향적인 사람이었다. 지금의 외향적인 나를 보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바뀌었다. 무엇이 나를 바꿨을까? 특별한 재능이 아니었다. 나는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이상하게 재미있어했다. 재미가 있으니 반복하게 되고, 반복하니 더 잘하게 되었다. 결국 더 많이 하게 되고 더 깊어졌다. 월요일 출근길에 월요병이 없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경쟁력이었다. 일요일에도 즐겁게 일을 떠올릴 수 있다는 건 더 큰 힘이었다. 좋아하는 것은 오래가고, 오래가는 것은 결국 실력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봇의 시대가 온다. 로봇은 조만간 청소를 하고 집안의 잡다한 일들을 처리할 것이다. 그건 거의 확실한 미래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로봇이 청소하는 동안 우리는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인간이 할 일은 더 고급스러운 노동이 아니라 더 인간적인 판단이다. 미래를 완벽히 예측하려 애쓰기보다, 오늘 하루에 몰입하고 읽고 이해하고 판단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산업혁명 시절 사람들은 미래가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지 못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몰랐다. 과거의 사람들은 예측하지 못했지만 결국 적응하며 살아냈다. 우리도 똑같다. 우리는 미래를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미래 속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준비의 중심에는 탄탄한 문해력과 꺾이지 않는 태도가 있다.
AI라는 거대한 파도는 분명 두렵다.
하지만 준비된 사람에게 그 파도는 위협이 아니라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