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d 100d project
시간이 나면 가끔 설거지를 한다.
성격이 급해서인지 나도 모르게 자꾸 속도를 내게 된다.
지난번에는 밥그릇에 눌어붙은 밥풀을 강제로 떼려고 했다.
하지만 잘 떼어지지 않았다.
설거지 초보인 나에게 고수인 아내가 한 마디 건넨다.
“그럴 때는 조금 있다 해요.
물에 담가 놓으면 굳이 그렇게 힘들게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떨어져요”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 밥풀들은 제대로 힘도 쓰지 못한 채 떨어져 버린다.
스케치를 하는 펜의 속도가 빠르다.
선생님이 그렇게 천천히를 강조하셨지만
마음의 속도는 이미 저만치 가 있다.
미쳐 생각도 하기 전에 선이 내려가 있다.
뒤에 있는 배경을 생각하면 선이 그어지면 안 될 공간인데 벌써 그려져 버렸다.
종이를 다시 되돌릴 수도 없고 그럴 때는 후회 막급이다.
그림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선이 마르기를 기다리는 시간
물감이 종이에 배어 나오는 시간
선이 마르기 전에 손이 움직이면 선이 번진다.
물감이 종이에 배어 나오기 전에 강제로 움직이면
물감 고유의 자연스러운 느낌이 나지 않는다.
시간이 만들어주는 실력에는 마음의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림을 그리며 오늘도 하나를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