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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순이 Oct 11. 2023

온전하지 못한 마음과 온전한 바람

20대 초중반 한 언니를 알게 되었다. 스카이 학생이고 태권도 유단자이며 신춘문예를 준비 중이고 직접 작성한 시를 스페인어로 발표하며 좌중을 압도했던 언니는 어찌 보면 내게 이루고 싶은 바람과 같았다. 그리고 언니는 이런 말을 내게 건넸다. "우울하지 않고 매사 행복하다면 좋은 글을 쓸 수 없어. 우울과 예술은 늘 공존하는 것이란다."


언니에게도 힘듦이 존재한다는 놀라움의 이면에서 예술가의 고충을 실감했지만 그것보다 더 새로웠던 것은 동경하던 언니의 말에서 온전하지 못한 마음을 가지고는 글쓰기가 지난할 것이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한 마디가 십몇 년이 지난 현시점까지 나를 지배한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뒤척이는 새벽녘, 초라해진 마음을 안은 채 스마트폰을 들고 작성한 줄글이 이튿날에도 꽤나 멋들어져 보일 때가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아직 온전한 마음으로 글을 쓰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사실은 글쓰기가 고되다는 명제를 증명한다. 동경하던 언니의 영향이었을까, 아니면 응당 이 나이에 가져야 할 온전함의 부재와 그에 따른 숨길 수 없는 서투름일까. 여전히 나는 고달플 때 더 쉽게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이것은 아픔에 대처하는 나의 방식이며 하릴없이 얕고 적은 나에 대한 방증일 것이다.


태생이 밝은 내가 우울함을 견디는 것은 꽤나 녹록지 않다. 어찌 보면 현시점에서 글을 작성하는 것 자체는 스스로의 얕고 적음의 발현이다. 하지만 내 마음이 온전하지 못하다고 나의 바람까지 폄훼되는 것은 서글프다.


온전하지 않은 마음으로도 온전함을 그릴 수 있길, 울과 예술이 공존할 수 있지만 필수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이 좋았으면 한다. 그 시절의 언니도 현재의 나도 옳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울과 예술이 공존할지라도, 결국 이 모든 것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의 그 이면에서 어떻게든 온전하고자 하는 속절 없는 아우성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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