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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목 Oct 09. 2024

아무것도 없어요,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카페 베란다, 스태픽스, 에무시네마, 광화문 교보문고

 

 

 지하철 요금이 너무 비싼 관계로, 요즘엔 동네에서만 논다. 단골 카페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글을 쓰고, 뚝섬 한강공원에서 따릉이를 타고, 교보문고나 알라딘에 가서 책을 사고, 좋아하는 빵집에서 소금빵을 포장해 집에 와서 먹고. 이런 일련의 행복들이 나를 살게 한다. 그러나 어제는 오랜만에 내가 사는 곳을 조금 벗어나 보았다. 오전에 혜화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린 백일장에 참석하고, 샌드위치 두 개를 먹은 다음, 버스를 타고 경복궁역으로 갔다. 가을날 평일 오후의 빛은 우울감으로 푹 적셔진 나를 꼼꼼하고 세밀하게 건조해 주었다. 잘 말린 빨래가 된 기분이었다.     


 어제 내가 찾은 카페는 베란다다. 그곳에는 마침 요즘 자주 듣고 있는 카더가든의 ‘명동콜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책 위에 크레파스로 적힌 메뉴, 빼곡한 책들, 향 냄새. 전부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뿐이었다. 일인용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책을 읽었다. 시집이나 소설책이 이 카페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겠지만, 이날 내가 가져간 책은 롤란드 파울센의 ‘걱정 중독’이었다. 이 책을 끝까지 다 읽은 다음에는 다이어리에 일기를 적었고, 영화 시작 시간까지 한 시간 정도가 남아 근처 스태픽스로 향했다. 이날 읽은 책이 사회학 서적이라 혈중 문학 농도가 조금 모자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스태픽스를 몇 바퀴 돌아도 내 마음에 쏙 드는 책을 찾을 수 없었고, 대신 인덱스를 하나 구입한 후 에무시네마로 향했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수유천’을 보기 위해서였다. 홍상수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그러다 보니 그의 신작을 찾아보는 편도 아니다. 다만 나는 영화관의 암전 속에 갇히고 싶었다. 영화관에 홀로 앉아 있으면 비로소 자유를 얻는 기분이다. 핸드폰을 만질 수도 없고, 가만히 앉아서 영화를 봐야 하며, 화장실이 가고 싶으면 몸을 최대한 구기고 나가야 하는, 자유라고는 하나도 없는 곳임에도 그렇다.     


 별 기대를 안 하고 봐서 그런지 ‘수유천’은 정말로 좋았다. 극 중 추시언(권해효 분)은 자신이 연출한 촌극을 함께한 대학생들과 술을 마시면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시로 말하기’를 제안한다. 처음엔 정말 꼰대라고 생각했지만, 한 학생이 “완전히 안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것을 보고 마음에 어떤 덩어리가 생기는 것 같았다. 사랑이 무엇인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감정이 맺히는 게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영화가 끝난 후에는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천천히 걸었다. 어제는 한로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공기가 제법 선선했고 붉게 노을 진 하늘이 아름다웠다. 높은 건물 사이를 지나가며 종로에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종로에 살게 된다면 정말 정말 좋겠다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면 늘 길을 잃는다. 어제도 어김없이 그랬다. 시 코너에서 신간들을 둘러보다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시 보다 2024’를 샀다. 이 책을 손에 들고 교보문고를 두어 바퀴 돌다가 집으로 왔다. 혼자 카페 가고, 영화 보고, 책 사고. 우리 동네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을 다른 동네에서 하니까… 조금 외로웠다. 홀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가을을 탔다. 가을의 날씨와 나의 기분은 반비례한다. 날씨가 좋을수록 실의에 빠진다. 몇 년째 이어지는 나의 유구한 습성이다. 집 안에만 머물면 부정적인 감정이 커지므로, 혼자서라도 바쁘게 돌아다녀야 구렁텅이로 조금 덜 깊게 빠질 수 있다. 나는 언제쯤 가을을 잘 견딜 수 있을까. 아니, 견디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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