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보다 문장이 먼저 꽂힌다
화장실에서 태어난 아이
그러나 천부적인 싸움꾼
화장실에서 미혼모에게 태어나 버려진 아이는 보육원에서 자라고 학교에서는 늘 왕따였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그는 곧 자신이 천부적인 싸움 실력을 타고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들을 혼내주며 지역에서 이른바 ‘짱’이 된 장태주.
하지만 불량서클인 선도연합회의 눈 밖에 나 억울하게 소년원까지 가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주고 성장의 길을 열어준 인생의 은인, 담임을 만난다. 이후 그는 복싱 선수로 성장해 한국, 동양, 세계 챔피언을 거쳐 5 체급을 석권하는 만화 같은 성공을 이룬다.
그러나 이 소설은 한 불우한 소년의 성공담에서 멈추지 않는다. 엄청난 성공의 대가로 그는 피붙이는 아니지만 가족보다 더 가까웠던 담임, 누나, 할아버지와 점점 멀어지고, 다시 한번의 지독한 불운으로 그들과 생이별하며 삶의 동력을 잃고 허우적대게 된다.
소설은 누군가 그에게 “당신은 사랑이 필요해!”라고 외치는 장면에서 마무리된다.
장태주의 삶에 아직 사랑의 작은 실마리가 남아 있다는 암시는 다행스럽다.
빠르고 정직한데 위트까지!
인파이터 같은 소설
줄거리는 솔직히 말해 새롭지 않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소년이 재능을 발견하고, 부조리를 깨부수며, 마침내 정상에 오르는 이야기. 우리는 이런 서사를 이미 수없이 봐왔다. 그런데도 이 소설을 단숨에 읽어버린 이유는, 이 익숙한 이야기가 너무나도 정직한 문장으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소설은 무엇을 쓰는가도 중요하지만 결국 어떻게 쓰는가의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도선우 작가의 문장은 주인공이 내지르는 스트레이트 펀치처럼 빠르고 군더더기가 없으며 솔직하다. 마치 장태수 같은 인파이터 복서 같다. 감정을 과하게 꾸미지도 않고, 비극을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지도 않는다. 여기에 종종 위트 넘치는 유머까지 더해져 소설의 재미를 한층 끌어올린다. 주먹보다 문장이 먼저 꽂힌다.
"이기고 지는 건 중요한 게 아니야. 질 때 지더라도 진짜로 하는 게 중요한 거지."
p. 220
"모른다는 건 기본적으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든 피해를 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p. 301
책을 펼치고 순식간에 달려 나갔다.
장태주가 마치 무협지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재능을 깨닫는 장면은 살짝 판타지성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리얼감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복싱을 배우고 승리해 나가는 장면에서는 나도 같이 흥분하게 되고, 한술 더 떠 나도 복싱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또 하나 인상적인 점은 이 소설이 주인공의 회상 형식, 1인칭 시점으로 쓰였다는 점. 그래서 더더욱 후반이 궁금해진다. ‘도대체 이 친구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라는 질문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만든다.
하지만 이 소설이 진짜 깊숙이 파고드는 지점은 링 위가 아니라 링 밖이다.
대단한 성공을 이뤘지만 그 대가로 가족과 함께하는 식사 시간이 사라졌다는 고백에서, 나는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우리가 그토록 열심히 벌고, 버티고, 올라가려는 이유가 결국 무엇이었는지를 그 한 문장이 조용히 되묻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가장 슬픈 장면은 가족의 죽음이 아니라, 성공과 동시에 일상이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이 소설은 끝까지 장태주를 구원하지 않는다.
대신 “당신에게는 사랑이 필요해!!”라고 누군가 장태주에게 외치면서 끝맺음한다. 그 외침은 독자들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말은 우리가 사는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 불우한 청년의 복싱 성공담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어려운 진리, 바로 ‘사랑이 삶의 동력’이라는 사실에 다다르게 된다.
재미있다.
한 한 청년의 드라마틱한 성장 이야기를 무척이나 흥미롭게 담았다. 아울러 삶의 최우선 가치는 사랑이라는 고불변의 진리까지 함께 전한다. 왜 이 소설이 상을 받았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다시 읽어봐야지..
작가의 말
개인적으로 소설의 마지막에 담긴 작가의 글에서 큰 울림을 받았다.
작가는 바쁜 사업가였고, 마흔에 가까운 나이가 되도록 책 한 권 읽지 않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머리가 깨였다고. 그날 이후 독서의 세계에 빠져 연간 250권의 책을 읽었고, 소설도 꾸준히 써 내려갔단다.
매년 장편소설 한 권씩을 썼다니, 밥 먹고 자는 시간을 빼면 오로지 읽고 쓰기만 한 셈이다. 그것도 생업을 병행하면서 말이다. 그 과정 끝에 이 소설이 상을 받기까지 이르렀다.
나 역시 뒤늦게 독서에 빠져 책을 읽고, 글을 써보려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이야기가 더 크게 다가왔다. 나의 롤모델로 삼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진심.
우연히도 얼마 전 같이 일하는 후배가 [호밀밭의 파수꾼]이 자신의 인생책이라고 했다. 그때는 “야, 그게 어떻게 인생책이 될 수 있냐?"라며 농담처럼 타박했던 기억이 난다. 왠지 민망해진다. “내가 책을 잘못 읽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호밀밭의 파수꾼, 다시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