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를 왜 사랑하는가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것들에 의심의 눈길을 던지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그리고 그 당연함이 왜 당연하지 않은가를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은 더더욱 깊이 사유하게 만드는 유쾌한 경험이다.
인간의 성(性)에 대해서도 우리는 몇 가지를 너무 쉽게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왔다.
성관계는 언제든 가능하고, 일부일처제가 일반적이며, 여성은 일정한 시점에 폐경에 이른다. 등.
하지만 거대한 자연의 스펙트럼 속에서 보면, 이 모든 것은 수많은 선택지 중 하나에 불과하다.
진화에는 우열이 없다. 오직 선택과 방향만 있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왜 이러한 방향을 선택했는지를 추론하는 일이다. 그 과정은 인간이라는 종을 이해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이 책이 말하는 바는 분명하다.
인간의 성은 단순히 종족 번식을 위한 것도, 쾌락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 진화는 생존과 협력을 위한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다.
대부분의 동물들이 특정 번식기에만 교미하는 것과 달리, 인간은 언제든 성관계가 가능하다. 그리고 그 동기에는 쾌락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쾌락 추구 때문이 아니라, 관계를 유지하고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진화적 장치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가장 흥미로운 주제는 여성의 배란에 관한 내용이었다.
여성이 배란을 드러낼 것인가, 숨길 것인가.
이 역시 선택과 방향의 문제다.
여성이 배란을 드러내는 전략은 더 강한 유전자를 선택하는 데 유리하다. 반면, 배란을 숨기는 전략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다. 배란을 감춘다는 것은, 비록 가장 강한 유전자를 선택하는 기회를 일부 포기하더라도 관계를 지속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의미다.
남성은 언제가 기회인지 알 수 없기에 여성의 곁에 머무르게 되고, 그 불확실성은 결국 관계를 유지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결국 두 전략은 서로 다른 질문에 대한 답이다.
하나는 ‘더 우수한 개체를 남길 것인가’에 대한 답이고, 다른 하나는 ‘함께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그리고 다 알다시피 우리 인간은 후자를 선택했다.
그 선택은 우리가 얼마나 관계와 결속에 의존하는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배란을 숨기는 진화는 단순한 생물학적 변화 중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실을 가장 은밀하게 증명하는 장치다.
이 지점은 꽤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만약 인간이 다수의 교배를 통해 번식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면 어땠을까.
그것이 오히려 인간 사회의 결속력을 더 강화시키는 방향은 아니었을까?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구조였다면, 공동육아는 훨씬 더 활성화되고 사회적 유대 또한 지금보다 강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 대신, 개별 가족의 결속은 지금보다 훨씬 약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비교적(?) 명확한 구조로 진화한 덕분에 우리는 ‘가족’이라는 강한 결속 단위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선택은 단순한 생존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더 잘 자라고, 더 오래 성장하는 방향으로의 진화였다.
그러니까 인류는 생존율보다 성장률을 선택했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끈끈한 결속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지만 종족 개개인의 성장도 포기할 수 없었던 복잡한 배경이 엿보인다.
이 책은 인간의 성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행동양식들을 순전히 진화론적 관점에서 관찰하고 해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종종 진화생물학은 사후적 해석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미 드러난 결과를 바탕으로 설명하다 보니, 끼워 맞추기처럼 느껴질 때가 적지 않다.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이런 진화를 촉발한 것인지, 아니면 반대로 무작위적인 진화가 인간의 본성을 만들어낸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이 모든 것이 뒤섞여 함께 진행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흐름은 분명하다.
인간의 성과 번식 전략이 결국 사회적 유대와 결속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다시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인간은 왜 ‘많이 낳고 살아남게’ 하는 대신, ‘적게 낳고 제대로 키우는’ 전략을 선택했는가.
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꽤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한다.
인간의 성에 대한 비밀 아닌 비밀.
그 이야기는 생각보다 훨씬 흥미롭다.
진정한 성(性)에 눈뜨고 싶은 이라면 읽어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