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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ur Oct 24. 2020

잠잠 우물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 비행을 다녀와서 그 짧은 근무시간 동안 참 기억할만한 이야깃거리가 생겼다. 제다 비행을 가면, 비행기가 도착해서 잠시 멈춰있는 동안 현지 지상 직원들이 들어와 청소도 하고 기내 물품을 체크한다. 일이 마무리될 무렵 시간이 적절히 있다면, 현지 지상 직원에게 조용히 홀리 워터(Holy water) 한 통을 부탁할 수 있다. 잠잠우물(Zamzam well)라고도 불리는 이 물은 메카의 신성한 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비행 전 검색을 해봤기에 호기심도 생겼고 메카에 가기 어려운 무슬림 친구에게 전해주고자 부탁을 해 보았다. 곧이어 비행기의 마지막 문이 닫히기 전, 나도 운 좋게 물 한 통을 건네받았다. 왠지 기분이 좋아서 물통을 이리저리 보며 들떠 있는데 유럽 출신 동료들이 총총걸음으로 얼른 내게 다가와 묻는다.


“그런 물이 왜 궁금해? 이 세상에 맛있는 와인이랑 칵테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녀들은 확실히 내가 한심해 보였던 것 같다. 종교적인 의미가 담긴 물이고 뭐고 하루하루 젊음을 즐기는 요즘 정서에 맞지 않는 모습이었을 테다. 그 대화를 한걸음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무슬림 동료는 옅게 웃으며 내게 고개를 저었다. 대화를 이어가지 말라는 제스처였다.


승무원으로 일한다는 건, 가볍게 다른 문화를 바라보고 참관하는 것에 그칠 수 있지만, 더 나아가 몸소 경험할 수 있는 직접적인 통로가 될 수 있다. 이 실감 나는 체험은 내가 그 문화를 더욱더 깊숙이 이해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


종교에 대한 편견은 어디서 오는지,

그 편견으로 인해 다양성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얼마나 좁아질 수 있는지,

편협한 사고는 우리를 아주 쉽게 깊은 우물 안에 가둘 수도 있음을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하다.


*잠잠 워터: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대사원에 있는 샘. 이슬람 전승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두 번째 아내 하갈(Hagar)과 아들 이스마일이 사막에서 헤멜 때, 신의 은총으로 생긴 샘물이라 한다. 이 샘물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솟아오르고 있다.


*메카: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출생지로서 이슬람권에서는 성지로 추앙받는 곳이며 매년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으로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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