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내 혐한 작가로 유명한 A는 자칭 한국인이다. A는 평소 본명을 숨기고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70년대생 토박이 한국인, 치과 의사 출신이라 스스로를 소개한다. 한국을 비난하는 A의 개인 블로그는 우익 성향의 일본 네티즌들에게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제주도 출신인 B는 분명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었으나 일본 유학 이후 일본에 귀화했다. B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저술, 언론활동으로 일본에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B 씨에 대하여 입국 거부 조치를 취한 바 있다.
C는 조선족 출신 학자로 이주 후 일본 국적을 취득한 일본인이다. C는 일본에서도 여전히 조선식 이름을 유지해 왔으며 한반도 출신의 한일 관계 전문가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최근 한일 관계 악화 이후 매스컴 출연 빈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우익 성향의 신문에 그의 칼럼 연재가 다시 시작되기도 했다.
D는 한국에서 고교, 대학을 졸업하고 군 복무까지 마친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 D 역시 한국에 대한 비판적인 저서로 이름을 알렸으며 특히 우익 성향의 일본 언론과 공조, 한국의 반일운동, 불매운동 등에 비난과 조소를 보내고 있다.
어딘가 있을 법한 '친일(親日)'의 사례들을 스토리텔링 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실제다.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모두 실존 인물이며 그 활동 이력 또한 현재 진행형이다. 한국인 같아 보이지만 '한국인이었던', '한국인인 것 같은' 복잡한 정체를 가진 '가짜 한국인' 또는 '반(反) 한국인'들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이들은 한일관계가 악화되는 틈바구니 속에서 끊임 없이 한국에 대한 비난을 부채질하며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왔다. 특히 최악의 한일관계 국면을 맞이하고 있는 오늘, 이들은 한국인과 밀접하다는 특이한 이력 덕분에 다양한 언론과 매체의 부름을 받고 있으며, 그 존재 가치를 높이고 있다.
활용 가치가 높은 스피커들
혐한 작가 A는 신시아 리(シンシアリー, Sincere Lee)를 지칭한다. 신시아 리는 위 4명 중에서도 가장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 정체가 베일에 싸여 있는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신시아 리의 저서인 <한국인에 의한 치한론>은 가장 대표적인 혐한 서적의 하나로 손꼽힌다. 2014년 발매 후 베스트셀러 7위에 올랐는데, 한국을 부끄러워 한다는(치한(恥韓)) 표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악의적인 비난이 가득한 책이다. 신시아 리는 이 책을 출발점으로 무려 17권에 달하는 혐한 시리즈(후쇼사 출판)를 출간하고 있다.(신시아 리 블로그 https://sincereleeblog.com)
특히 최근 신시아 리는 <반일 종족주의>를 기점으로 한 뉴라이트계 한국 학자들의 주장에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논란 관련 기사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영훈 전 교수를 비롯한 <반일 종족주의> 저자들의 주장에 긍정적 코멘트를 보태고 있다.
▲역시, 그(김구 선생을 지칭, 기자 주)는 민족이라는 것을, 부족이나, 부락 같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를 국부로 뒷사람들이 "반일 종족주의"에서 "영혼의 평화"를 구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 신시아 리 블로그 ('19.4.6. )
▲(류석춘 교수 논란에 대해) 내일쯤에는, 또 교수를 그만두라는 데모가 시작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 신시아 리 블로그('19.9.21.)
실제로 위안부를 매춘으로 몰아가는 그의 주장은 <반일 종족주의> 이영훈 전 교수의 논리와 상당히 닮아 있다. 또 그는 일제시대가 아닌 조선시대부터 기생제에 의한 매춘*이 있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이영훈 전 교수가 <반일 종족주의>에서 펼친 논리와도 일치한다.
(*해당 내용은 오수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의 기고 <기생이 위안부 원류? 이영훈 전 교수는 춘향전을 거꾸로 읽었다>를 통해 반박됐다. 오 교수는 조선시대 기생을 대상으로 성을 요구하는 행위는 법에 의해 엄격히 금지(속대전, 대명률)되어 있었으며, 관리가 기생과 동침한 사례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엄연한 불법사례로 처벌의 대상이었다는 등의 내용을 근거로 들어 이영훈 전 교수의 주장을 비판했다.)
충격적인 망언 또한 끝이 없다. 신시아 리는 지난 2017년 위안부 피해자 고 곽예남 할머니에 대한 기사를 자신의 블로그에 옮겨와 이를 '위안부 비즈니스'라며 매도했다.
한국이 주장하는 위안부 문제라고 하는 것은 완전히 터무니없는 설정이니까 논외이지만, 일반적으로 전시 매춘을 논할 때, 비즈니스로서의 측면도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위안부는 '다른 의미'로 큰 사업이 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 신시아 리 블로그('19.2.24.)
B는 고젠카(한국명 오선화)를 말한다. 4명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라면 단연 고젠카다. 제주도 출신인 고젠카는 1983년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이주, 1988년에 일본으로 귀화했다.
특히 1990년 한국 여성들을 비하한 <치맛바람>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표했는데, 일본에 온 한국 여성 대부분이 술집 출신으로 '돈 많은 일본 남자를 잡는 게 목표'라는 문제적 내용을 담았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부정, 한글 비하, 세월호 침몰 관련 망언 등 악의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발언을 쏟아낸 바 있다. 최근에는 "한국에는 전과 40~50범도 흔하게 있"다거나 "한국은 민주국가가 아니"(<News-postseven>, '19.8.10.)라는 말도 서슴없이 내뱉었다.
경제보복 국면에서 아베 정권을 비호한 발언도 눈에 띈다.
일본 정부는 현재의 자세를 풀지 말라. 한국 국민은, 아베 정권의 강경한 태도를 멋지게 보고 있는 면도 있다. - <석간 후지> ('19.8.27.)
이러한 반한(反韓) 활동에도 불구하고 고젠카는 지난 2013년 친척 결혼식에 참석한다며 인천공항에 들어왔다가, 한국 정부 당국으로부터 입국 거부를 당하기도 했다(출입국관리법 11조 등에 의하면 법무부 장관은 대한민국의 안전, 질서, 풍속 등을 해칠 염려가 있는 외국인에 대해 입국을 금지할 수 있다. 2013년 당시 고젠카는 일본인이었다. - 기자 주).
C는 리소테쓰(한국 발음 이상철)라는 학자다. 앞서 사례를 통해 언급한 바와 같이 리소테쓰는 본래 중국 흑룡강성 출신의 중국동포 학자로 1998년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 현재 일본 류코쿠대 교수로 재직 중에 있으며 한반도 문제, 북한과 관련된 연구를 수행하고 관련 논문이나 저서를 발행해 왔다. 때문에 올해 한일관계 악화 국면에서는 전문가 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리소테쓰는 민감한 시기마다 우익 언론에 평론을 싣거나 연재하는데, 한국 정치에 대한 견해를 종종 피력해 왔다. 그는 북한 관련 연구에 집중한 관계로 한국 정부를 일종의 '좌파 프레임'으로 비판하는 데 능하다. 이번 수출규제 국면에서는 "깨져 가는 국가"(한국을 뜻함 - 기자 주)라는 제목의 칼럼을 <산케이 신문>에 연재하기도 했다.
리소테쓰가 사용하는 한국식 이름 '이상철'이 가져오는 혼동도 있는데, 국내 한 언론은 "이상철이란 한국인 교수가 일본의 수출규제를 정당하다고 주장? 알고 보니"라는 기사를 통해 이 인물이 한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환기하는 보도를 내기도 했다.
D는 최석영(崔碩栄)이라는 한국인 작가다. 이 인물 또한 신시아 리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저서, 블로그를 통한 반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은 실명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과, 각종 언론에 자신의 이름을 통한 평론, 해석을 종종 싣는다는 점이다.
최석영의 최근 활동은 한국의 불매운동을 비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얄궂게도, 그 애국적인 행동(한국의 불매운동 - 기자 주)은, 한국에서 일본 제품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국민에게 강하게 인식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영상과 사진, 그리고 SNS를 통해 국민의 눈에 비친 이 장면들은 너무 해학적이었다. 반일 시위를 취재하는 기자들의 카메라는 99% 일제였고, 반일 이벤트 공연에 등장한 어느 밴드는 YAMAHA, KORG, Roland 등 일제 악기를 가지고, 민족의식을 고양시키는 노래를 부른다. - <지지통신>('19.9.23.)
그러면서 한국의 불매운동을 '소란(騒ぎ)'으로 정의, "평소에는 의식 없이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었지만 상당수가 일본 제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라며 비판했다. 이밖에도 최석영은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들과 관련한 발언을 하거나(징용노동자들이 '지원해서' 일본이 간 것)(https://www.iza.ne.jp/kiji/world/news/190603/wor19060310070005-n2.html), <반일 종족주의>의 출간과 그 취지를 지지하는 해설을 싣기도 했다.(https://wedge.ismedia.jp/articles/-/17878)
혐한이라는 그들만의 리그
일본 우익세력에게 이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일단 '한국인이 말하는 한국 비판'이라는 타이틀을 달게 되면 관심이 집중되고, 신빙성이 높아지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일본인 학자의 발언이 주목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결이 다르다. 이들을 한국인으로 볼 수 있을까? 그 정체가 매우 불분명한 사람뿐만 아니라, 국적이 한국이 아닌 사람도 있다. 물론 최석영과 같이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작가도 있지만, 그도 결국 일본의 입장만을 변호하는 활동가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시아 리 같은 경우는 문제가 심각하다. 앞서 언급한 내용 외에도 신시아 리는 또 다른 혐한 서적 <침한론>(침몰하는 한국)에서 세월호 침몰 사고와 한국의 반일 사상의 유사성을 검증하고, 양자가 비슷하다는 식의 문제적 내용을 다룬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근에는 일제 강제징용노동자 문제를 다루면서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막대한 돈을 쥐어뜯고 노동자 거의 모두를 강제징용 피해자로 만들었다고 왜곡하는 <징용공의 악심(惡心)>을 출간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신시아 리는 한국인임을 자처하고 있다. 그가 귀화한 일본인인지, 재일 한국인인지, 한국인의 가면을 쓴 일본인인지 등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말이다.
문제는 정체가 분명하지 않은 이들이 분명 실재하며, 일본 우익들이 이들의 왜곡된 망언을 활용해 '역사 수정주의'에 상당한 용기와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의 행보를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