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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현 Dec 26. 2019

욱일기와 하켄크로이츠

과거 일본제국은 아시아 국가들을 점차적으로 식민지화하는 과정에서 '히노마루(일장기, 日章旗)'와 '욱일기(旭日旗)'를 앞세운 다양한 폭거를 단행했다. 아시아 인민들은 이 허상과 같은 제국의 상징 앞에 희생을 강요당했고 학생과 군인은 일제에 대한 '애국'을 외쳐야만 했다. 2차 대전 당시 이 깃발의 강요 아래 스러져간 아시아 사람들만 해도 2000만 명에 달한다.


그럼에도 이 깃발들(히노마루와 욱일기)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자취를 감춘 나치 독일의 국기 '하켄크로이츠'(1935년 독일의 국기로 지정된 깃발, 나치즘의 상징)나 이탈리아 파시스트기 '파스케스'와는 달리 여전히 국가적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다. '제국 일본'의 잔재라고도 볼 수 있겠다. 실제 이로 인한 갈등 또한 종종 발생하곤 하는데 특히 근래에는 2020년 도쿄올림픽 내 욱일기 반입 및 사용 등에 관한 이슈가 새롭게 떠오른 상황이다.


공교롭게도 한국은 욱일기 사용을 원하는 일본의 가장 큰 논쟁 상대다. 한국은 일제 식민지 피해국의 입장에서 도쿄올림픽과 같은 국제행사에서 욱일기 반입, 사용 등을 엄격히 금지해야 한다는 한다는 의견을 꾸준히 제시해 왔으며, 최근에 문화체육관광부는 공식 소셜미디어 채널을 통해 "욱일기는 증오의 깃발입니다"라는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입장은 요지부동이다. 외려 한국 측의 지적에 대해 "극히 유감"이라며 반발하는 상황이다. "욱일기가 정치적 주장이나 군국주의의 상징이라는 지적이 전혀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대한 일본의 논리는 아래 3가지 정도로 정리될 수 있다.

▲욱일기 디자인은 일장기와 마찬가지로 태양을 상징한다. 이 디자인은 일본 국내에서 오랫동안 폭넓게 사용되어 왔다. 오늘날에도 욱일기 디자인은 풍어기나 출산, 명절 등 일상생활 속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자위대 공식 깃발로서의 해상자위대 자위함기와 육상자위대 자위대기 사용

▲햇살이 뻗어 나가는 욱일 디자인은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북마케도니아 공화국 국기, 애리조나주(미국) 깃발, 라라주(베네수엘라) 깃발, 벨라루스 공군기 등 유사한 디자인이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출처: 일본 외무성


특히 일본 정부는 이 같은 주장들을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여러 국가의 언어로도 번역, 욱일기 사용의 정당성을 세계에 알리고 있다. 쉬이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일본 외무성은 세계를 향한 여론전에 매우 강한 면모를 보여왔다.


한국도 국제 여론전에 나서야 한다. 단 분명한 논리는 필요하다. "욱일기는 증오의 깃발"이라는 슬로건은 충격 요법으로는 적절할 수 있으나 논리적인 측면에서는 취약하다. 세계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선 일본 정부의 주장들을 하나하나 논파하고 그 주장이 가진 약점들을 들춰내야 한다.


[전통론 반박] 오랫동안 폭넓게 사용됐으면 괜찮다?


일본 정부가 욱일기의 사용이 정당하다고 내세우는 제1의 논리는 전통이다. 즉 일본이라는 나라가 역사적으로 오랜 기간 폭넓게 사용한 문양이므로 전범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욱일기 디자인이 출산이나 명절 등 일상 속에서도 사용되었다며 평화적인 문양임을 내세우고 있다. 이 논리는 어떻게 반박하면 될까? 답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오랫동안 폭넓게 사용됐으니 괜찮다고? 유감이지만 '하켄크로이츠'도 그렇다"


욱일기의 전통성을 이야기하는 일본 정부의 논리는 하켄크로이츠의 연원을 비교 분석함으로써 간단히 논파할 수 있다. 나치 독일 국기의 '하켄크로이츠' 문양 또한 욱일 문양과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비교적 '평화로운 용도로 폭넓게' 사용되어 왔다. 본디 하켄크로이츠는 게르만인이 청동시대부터 써왔던 행운의 상징이었다. 나치즘만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문양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러한 점은 히틀러 자신의 저서 <나의 투쟁>에서도 드러난다. 히틀러는 나치스의 깃발을 고안할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하켄크로이츠를 그려 넣은" 도안들을 제시했었다고 술회한다. 그 말인 즉, 당시 독일 사람들이 하켄크로이츠를 폭넓게 사용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켄크로이츠의 이른바 '전통성'은 나치 독일 국기에 대한 다음 히틀러의 설명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우리 모든 사람에 의해 열정적으로 사랑받는 이 독특한 색깔은 일찍이 독일 민족을 위해 수많은 영예를 얻었던 것으로서, 오로지 과거에 대한 우리의 찬미를 입증할 뿐 아니라, 그것은 또 운동 의도를 가장 잘 구체화한 것이었다. (중략) 하켄크로이츠 속에서 아리아 인종의 승리를 위한 투쟁의 사명을, 그리고 동시에 그 자체가 영원히 반 유대주의였고 또 반유대주의적일 창조적 활동의 사상의 승리를 보는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1926), <나의 투쟁 Ⅰ>, 황성모 옮김, 동서문화사


나아가 독일의 학자 '요하임 페스트'는 자신이 저술한 <히틀러 평전>에서 하켄크로이츠가 본래 고대 힌두교에서 해를 가리키는 문양이었는데 '리스트'라는 독일인이 이를 게르만 영웅의 상징으로 널리 퍼뜨렸다는 주장도 제시한다. 즉, 나치 깃발로 사용되기 이전에는 일상적인 문양에 속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취합해 봤을 때 하켄크로이츠 또한 '욱일기와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폭넓게 사용되어 왔고 일상적으로 사용되어온 상징이다. 때문에 욱일기가 그 전통성을 이유로 정당성을 부여받는다면 하켄크로이츠도 그 사용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무서운 논리가 탄생해 버린다.


[국제승인론 반박] 자위대의 공식 깃발입니다만?

욱일기를 자위대가 공식 깃발로도 사용하고 있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의 이면에는 이런 의미가 내포돼 있다.


'과거 욱일기를 자위대 깃발로 채택(1954)한 이후 반세기 이상에 걸쳐 아무 이상 없이 기능해왔고 세계적으로도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볼 때 욱일기의 공식성에 아무런 하자가 없다'는 것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2018년 10월 14일 일본 육상자위대 사열 행사에서 예를 표하고 있다.(총리 관저 홈페이지)


이 같은 주장은 욱일기가 일본 국내, 일본 정부 차원에서 공인, 채택됐으니 국제관계에서도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논리로 확장된다. 나아가 일본 측은 '욱일기를 꽂은 자위대 함정이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고 별다른 제재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만하면 국제적으로도 승인받은 것이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일본 정부는 한 가지 오류를 범하고 있다. 국내 문제와 국제 문제를 혼동해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가 욱일기를 가져다 육해군 자위대기(旗)로 채택한 일련의 절차는 근본적으로 '일본 국내 문제'에 속한다. 매우 불편한 일이지만, 자위대가 욱일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한국 정부가 간섭하거나 강제할 권리는 없다. 일단은 일본 정부의 권한 내에 속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세계에 입항하는 자위대 군함의 욱일기를 내려라 말라 강제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군함은 국제법적으로 자국의 영토로 인정된다. 지난 2018년 10월 제주에서 열린 국제관함식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 군함의 욱일기 사용을 '강제'하지 못하고 '요구'만 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하지만 그것이 '국제무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얼마든지 이의를 제기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올림픽 등 국제적 행사는 국경과 영토를 초월한 인식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설령 올림픽이 도쿄에서 열린다고 해도, 그 올림픽이라는 '대회 자체'가 일본의 소유물은 아니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모든 국가는 그 무대를 공유할 권리가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자위대의 욱일기 사용은 일본 국내, 즉 내정의 문제이므로 한국이 간섭할 여지가 없다지만, 국제적인 무대, 올림픽 등 스포츠 행사, 범세계적 문화제전 등에서는 얼마든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그것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떳떳한 권리이기도 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일본 정부가 내세우는 논리, '욱일기는 자위대기(旗)로도 공식 활용되고 있으므로 국제적으로도 문제가 없다'는 주장은 자기네 국내법을 가지고 세계의 질서를 이해하는 '아전인수', '견강부회'식 '오독(誤讀)'이라 볼 수 있다.


[디자인론 반박] 세계적인 욱일 디자인?

욱일기 사용을 주장하는 또 하나의 논리는 욱일 디자인의 활용성이다. 햇살이 뻗어 나가는 욱일 디자인은 일본에만 있는 것이 아니며 일본 군국주의 상징이라고만 특정하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전 세계를 두고 봤을 때 동일하거나 유사한 디자인은 상당히 많다. 거기에는 일본의 전쟁범죄 자체를 모르고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디자인이 가리키는 '범죄적 의미'가 있다면, 나중에라도 시정을 요구하고 사용하지 말 것을 권장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에 따른 피해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악질적인 범죄조직이나 테러조직을 상징하는 문양이나 문구를 기피하는 이유도 결국에는 피해자에 대한 위로와 재발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하켄크로이츠가 왜 격리되고 배척될까? 그 깃발 아래 얽힌 수많은 피해자들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욱일기의 디자인을 운운한다는 것은 본질을 한참 벗어난 이야기다. 이런 말을 내뱉는 사람들을 향해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교수는 다음과 같이 타일렀다.


디자인으로서는 괜찮다 라고 한다면, 나치 독일의 국기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할 사람은 있겠지요.

*다카하시 데쓰야, 서경식(2019), 『책임에 대하여』


혐한단체는 왜 욱일기를 사용하는가?

앞의 논의들을 모두 차치하고라도, 일본이 욱일기를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대체로 어떤 사람들이 욱일기를 사용하고 있느냐에 대한 논의가 바로 그것이다.


사실 '기(旗)'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단지 순백의 바탕 위에 색을 입히고 글자나 그림, 부호 따위를 그려놓았을 뿐이다. 특별함을 부여한 것은 그 사용자들인 것이다. 계속해서 인용하지만 하켄크로이츠를 히틀러와 나치스가 사용하지 않았다면 일반적인 행운의 상징으로 남았을 수도 있다.


일한국교단절선언대행진('19.2.17.)それぞれの主張


그렇다면 현재 일본에서 욱일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공교롭게도 지금 일본에서 욱일기를 소비하고 있는 집단은 일본의 극우, 그 중에서도 헤이트 스피치와 반한 시위를 주도하는 단체들이다. 이에 대해 일본 고베 대학의 기무라 칸 교수는 욱일기 문제를 다룬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중요한 것은, 당초 지금의 일본에서 어떤 때 대대적으로 욱일기가 사용되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는것이겠죠.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욱일기는 과거 헤이트 스피치나 반한 시위 장소에서 흔들던 경우가 많던 깃발이었습니다. (중략) 되풀이하지만, 깃발은 상징이며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중략) "욱일기에 정치적 의도는 없다"라고 말한다면, 스스로의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해지겠지요.

*<아사히 신문> 보도('19.9.24.)


기무라 교수는 사용자가 누구냐에 따라 정치적 의미나 의도가 담길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 말대로다. 일본 정부가 아무리 욱일기에 정치적 의도가 없고 군국주의적 면모가 없다고 주장한들, 현재 일본에서 사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다분히 정치적이고 배외주의적인 언설들을 내뱉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욱일기가 정치적이고 군국주의적인 증거이자 현실이다.


과거 히틀러는 나치 독일 국기의 도안 구성에 대단한 심혈을 기울였다. 깃발이 주는 힘과 자극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힘은 폴란드, 프랑스 등 이웃국가에 대한 침략으로, 홀로코스트 학살에 이용됐다. 시간과 공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을 뿐 욱일기라고 해서 그 본질이 다르지 않다.


평화의 제전인 올림픽에서 전쟁범죄와 관련이 있는 욱일기가 사용된다는 것은 전쟁 피해국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심대한 도발 행위다. 욱일기 반대 입장을 표명한 한국과 중국뿐만이 아니다. 일제 침략전쟁의 피해를 받았던 여타 동남아 국가들도 올림픽에 참여한다.


물론 직접적인 욱일기 반대를 표명하고 있진 않지만 욱일기의 상징성을 모를리 없는 나라들이다. 폭력적이라고 느낄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런 측면까지 엄밀히 판단되어져야 한다. 괜찮은 것은 가해자 일본 자기네들의 감정일 뿐, 상대방은 전혀 괜찮지 않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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