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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현 Oct 22. 2022

멧돼지 씨의 부고가 도착했다

멧돼지 씨를 처음 만난 것은 올해 초여름 -아마도 6월 첫째 주 정도 되지 않았을까- 의 일이다. 정확히 어디에 적(籍)을 두신 지는 알 수 없으나 마주친 지점이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산 101-1번지, 그러니까 불암산 서울 쪽 들머리 어느 께였으니 터전 또한 거기서 멀진 않았을 것이라 유추해본다. 물론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는 멋대로의 판단이지만 나는 그를 '불암산 멧돼지 씨'라고 부르고 싶다. 불암산이 멧돼지 씨의 주거가 맞다면 불암산에서 걸어 5분 남짓 떨어진 곳에 사는 나는 그와 동네 주민으로 묶이는 셈이다.


말이 나온 김에 조금 더 상상을 연장시켜볼까. 이곳 불암산은 서울에선 그런대로 명산으로 취급받는, '금강산에서 떨어져 나온 산'이라는 전설이 따라다닐 만큼 신묘한 기암괴석들이 총총한 산이다. 그런 불암산을 터전으로 삼은 멧돼지 씨의 안목은 보통이 아님에 분명하다. 거대한 바위들 틈새에 드리워진 그늘의 고요함을 이해하고 바위에 맺힌 이슬의 청량감과 나무뿌리의 촉촉한 연질을 즐길 줄 아는 분이셨을 거란 말이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그날 그의 모습도 그러했다. 오전 8시, 안개가 살짝 내려앉은 산비탈을 주유하고 있는 멧돼지 씨가 보였다. 나는 먼발치에서 목례했다. 주위는 약간 어두웠지만 음습하진 않았는데 내 존재가 잠시나마 허락된 걸 보면 당시의 그런 환경 자체가 주효했던 듯싶다. 며칠 전 내린 비로 흐물 해진 낙엽과 나뭇가지가 강보처럼 그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고 두터운 몸체와 단단한 네 다리는 가는 걸음마다 뿌리를 내리 듯 안정감 있게 전개되었다. 곁에자식으로 보이는 어린 '멧돼지 군'이 씩씩하게 보조를 맞추며 달라붙어 있었다.


다만 몇 초뿐인 만남이었다. 이윽고 멧돼지 씨와 멧돼지 군은 반대편 계곡을 향해 달려 나갔다. 뭔가가 그들을 거슬리게 한 모양이었지만 나로선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날 이후로도 네댓 번 이상 불암산을 찾았지만 멧돼지 씨는 볼 수 없었다.


부고(告)


2022년 8월 6일 한가한 토요일 아침, 늘 보는 뉴스 채널에는 어딘가 낯익은 거리의 풍경이 비치고 있었다. 인근에서는 '은행사거리'라는 명칭으로 더 유명한, 우리 동네(중계동) 학원가였다. 어떤 사고가 일어났음을 시사하는, 자못 심각한 톤의 보도였다. '거대한 무언가'를 들것으로 실어 나르고 있는 소방대원들의 모습도 보였다. 아, 멧돼지 씨였다. 혹시 내가 2개월여 전에 만난 '불암산 멧돼지 씨'인 걸까? 걱정이 앞섰지만 도저히 얼굴을 알아볼 재간이 없었다.



뒤 따르는 보도를 살펴봤다. 내용을 볼수록 '양 멧돼지 씨'가 동일한 분일 거라는 확신이 강하게 들었다. 더욱이 불암산에서 내려오셨다지 않는가. 실제로 내가 '불암산 멧돼지 씨'를 만났던 등산로는 사고가 난 지점과 가장 가까운 등산로이면서 거의 직선상에 위치하고 있었다. 시간도 신경이 쓰였다. 이날 사고가 난 시간대는 토요일 오전 8시경, 2개월 전 그와 만난 시간 또한 토요일 오전 8시였다. 물론 이런 내 추측은 망상에 가까운 것이었다. 멧돼지 씨의 자유로운 일상을 1주일 단위의 루틴으로 규정할 수 있을 리가.


하지만 사건을 곱씹을수록 마음이 공허해졌다. 설령, 저 돌아가신 멧돼지 씨가 내가 아는 '불암산 멧돼지 씨'가 아니라 할지라도 어쨌든 참담한 '부고'임에는 틀림없었다. 영상 속의 멧돼지 씨는 왕복 6차선이나 되는 사거리를 앞뒤 없이 질주하고 있었다. 극심한 공황에 빠져있었다고 해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멧돼지 씨는 결국 사거리에 위치한 은행 ATM 부스 속으로 숨어 들어갔고 끝내 거기서 나오지 못했다. 안에서 '당겨야만' 나올 수 있었던 유리문은 멧돼지 씨가 조작하기엔 너무 정교했다. 몇 평 안 되는 ATM 부스가 그의 '관짝'이 되어버린 셈이다. 멧돼지 씨는 사냥꾼들이 발사한 엽총에 쓰러졌다.


'수제' 도토리묵의 비극


사실 나는 이전에도 여러 번, 전국 곳곳의 멧돼지 씨들과 조우한 적이 있다. 그건 내가 직업 군인, 국립공원공단 직원이라는, 남들에 비해 다소 특이한 직장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가끔 상황에 따라 꽤 위협적인 멧돼지 씨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일부러 멧돼지 씨가 싫어하는 냄새를 피우거나 소리를 내며 다녔던 덕분이기도 했겠지만 어쨌든 그분들은 늘 일정한 거리를 지켜주었다.


물론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다. 멧돼지 씨에 대한 나의 좋은 기억은 다른 사람들, 특히 멧돼지 씨의 이름만 들어도 아연실색할 농민들에겐 결코 설명될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도 멧돼지 씨의 악명은  우리나라 법이 '유해 야생동물'로 규정할 만큼 자자하다. 300kg에 가까운 몸무게로 부닥쳐오는 파괴적 '돌진', 농작물을 초토화시키는 무자비한 '보급투쟁'은 두려움과 혐오의 대명사로 문학적 비유를 통해서도 자주 거론된다. 하여 멧돼지 씨의 돌진은 '공격(attack)'이며 존재는 '출몰(出沒)'로 기록한다.


물론 멧돼지 씨 입장에서도 억울한 점이 있을 것이다. 예컨대 가을이 오면 멧돼지 씨의 주식인 도토리는 금세 씨가 말라버린다. 감칠맛 나는 '수제' 도토리묵을 만든다며, 혹은 재미로, 혹은 아이들 교육을 목적으로 산 구석구석을 뒤져 멧돼지 씨의 곳간을 털어간다. 이즈음 산마루 인근 주택가를 가보면 텐트 천막이 가득 찰 만큼 도토리를 쌓아두고 햇볕에 말리는 풍경들을 흔히 접할 수 있다. 비양심적인 일부는 도토리 알맹이를 뽑아내고 남은 껍질들을 다시 산에 갖다 버린다. 이러고도 멧돼지 씨의 먹성을 탓할 수 있을까. 한 언론은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가을산이 털리고 있다."



인간들의 먹성은 '가을산', '도토리'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산나물, 약초, 버섯, 열매, 수액, 뿌리, 약용식물 등 산에서 나는 모든 것이 '소화'의 대상이다. 잔뜩 즐긴 뒤엔 '역시 자연이 좋다'며 추임새를 넣어야 한다. '자연이 미래'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인간들의 재미와 건강을 보필한다는 측면에서 자연은 '미래' 그 자체다. 그날 돌아가신 멧돼지 씨의 실수가 하나 있었다면 불암산이라는 '곳간'이 인간과 너무 가까웠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오늘도 그 부스 앞을 지나쳐 집으로 돌아온다. 가을 하늘이 높아가니 비명에 간 멧돼지 씨에 대한 생각이 더욱 아련해진다. 사실 꽃이라도 하나 올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실행할 용기는 없다. 인간으로선 '비상식적' 행동이란 점도 이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나 한 명 정도는 그의 죽음을 추모해도 되지 않을까. 그래 봤자 나도 인간이지만. 그가 다음 생엔 좋은 곳에 '출몰(出沒)'하길 빈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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