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사운드캣 이준동 국장
디그낙(D.GNAK)은 패션 디자이너 강동준의 영문 이름인 ‘Kang.D’를 거꾸로 배열해 탄생한 패션 브랜드다. 디그낙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다크 웨어 브랜드’다. 음양, 망령 그리고 윤회 등 각각의 철학적인 주제를 선정해 계절에 맞춘 컬렉션을 선보이는 것이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우리 고유의 전통 의상인 한복이 가진 ‘면’을 드러내는 디자인, 그리고 검은색이라는 다소 묵직할 수 있는 콘셉트를 강동준만의 테일러링 기법으로 자연스럽게 풀어내 ‘디그낙’만의 스타일을 완성한다.
지난 2016년 개봉한 영화 ‘미라’의 홍보 프로젝트 디자이너로 뽑혀 2017년 ‘런던 패션위크’에서 그의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당시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뽑은 세계적인 디자이너 6인 중 유일한 아시아 디자이너였던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강동준을 만나 ‘디그낙’에 담긴 그의 패션 철학과 그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패션 디자이너, 강동준]
안녕하세요. 제가 감히 이렇게 인터뷰를 할 위치에 있는지 많은 고심 끝에 여러분께 인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패션 브랜드 ‘디그낙’과 ‘디바이디그낙’ 등을 이끌어가고 있는 디자이너 강동준입니다. 이렇게 여러분께 디그낙과 저의 소개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제가 이렇게 패션 디자이너라는 분야를 대표해 인터뷰를 한다는 것이 가능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패션 산업을 더 많은 분들에게 소개하고 알린다는 사명감으로 이번 인터뷰를 하고자 다짐했습니다.
먼저 인간 강동준이 왜 ‘패션’이라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저와 패션의 인연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개인 사업을 하셨던 저희 아버지는 한마디로 굉장히 멋있는 분이셨습니다. 지금 제가 패션 일을 하면서도 그 당시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셨던 그 분만의 중후한 ‘멋’은 아직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모습이 저의 뇌리에 항상 박혀있고 저는 아직도 그때의 느낌으로 ‘디그낙’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당시 어린 저는 아버지의 멋진 모습이 아버지가 입고 계신 양복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 양복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장인정신이 담긴 ‘테일러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무작정 의상을 만드는 일을 동경하게 되었고 그때 이미 ‘나는 커서 옷을 만들 것이다’라고 결심했습니다.
아버님께서 패션에 대한 영감을 주셨다면 제가 패션 디자이너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가장 큰 도움을 주신 분은 바로 저희 어머니십니다. 저희 어머니께서도 화가로 평생을 살아오셔서 미적 감각과 색채의 어울림 등을 어머니로부터 자연스럽게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본인도 미대를 나오셔서 문화예술계가 얼마나 힘든 곳인지 누구보다 잘 아셨기에 제가 패션 일을 한다는 것을 많이 반대하셨습니다.
더군다나 당시에 패션 디자이너들에 대한 인식 역시 많이 왜곡되어 남자가 패션 디자이너를 한다면 여성스러운 모습을 갖춰야 한다는 오해와 편견이 난무했습니다. 이제는 저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시는 가장 큰 힘이 되어주시는 어머님께 항상 감사드리며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부모님께서 많이 반대를 하셨기에 저는 저의 꿈을 부모님께 숨긴 채 동국대 독어독문과에 입학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꿈은 이미 패션 디자이너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학교 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죠. 저의 꿈을 부모님께 말씀드렸으나 제가 예상했던 대로 큰 반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저는 제가 패션 디자이너를 얼마나 원하는지 보여드리기 위해 동국대학교를 자퇴하고 다시 수능에 응시해 한성대 패션학과(현 패션디자인학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 후 패션의 본고장인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더욱 깊이 있는 패션 공부를 하고 싶어 미국 ‘파슨스 스쿨’을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 후 전문 경영의 지식을 쌓기 위해 ‘MBA’(KDI 국제정책대학원)에 입학해 경영학을 공부했습니다.
모든 공부를 마친 저는 청담동 반지하 매장에서 ‘디그낙’을 론칭하고 정식으로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됩니다. 처음 디그낙의 시작은 기성복이 아닌 맞춤복이었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꿈꾸었던 ‘테일러링’을 기반으로 소량 맞춤 고급 양복점이라는 콘셉트로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발전하면서 디그낙 만의, 그리고 저만의 스타일을 찾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지금까지고 디그낙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남들과 다른 ‘테일러링’이었습니다. 기존의 브랜드들이 ‘옷에 맞춘 테일러링’이었다면 디그낙은 ‘디자인에 맞춘 테일러링’ 기법을 활용했습니다. 디그낙의 테일러링 기법은 기존의 테일러링과는 분명한 차이가 느껴지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냈습니다.
이렇게 국내에서 성장한 디그낙은 해외로 눈을 돌려 본격적으로 글로벌 브랜드 전략을 수립해 추진하게 됩니다. 주요 타깃은 북미와 유럽이었습니다.
해외 시장을 공략 후 한국과 가장 차별화된다고 느낀 것은 바로 구매층이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젊은 층이 주요 고객이었다면 해외에서는 50부터 60대 중장년들도 디그낙의 스타일을 상당히 선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해외에서 많은 매장을 운영하며 느낀 것은 국내에서는 내가 원하는 스타일을 만들기보다는 못하고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을 만들었다면, 해외는 우리 ‘디그낙’에서 만든 스타일 그 자체에 대해 높이 평가를 해준 다는 점이 느껴졌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은 유통사가 유행에 따라 원하는 스타일을 디자이너 측에 요구하는 일이 많았는데,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고자 하는 디자이너들에게는 큰 방해 요소로 작용하는 일들이었습니다. 이에 나의 디자인과 디그낙의 디자인을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은 국내가 아니라 해외라는 것에 더욱 큰 매력을 느꼈고 일일이 직접 바이어를 만나 옷을 보여주고 판매를 하며 점차 해외 시장에서의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국은 의류 유통사가 시장 경제를 주도하려 하지만 정작 옷과 브랜드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책임감도 가지려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해외는 디그낙 브랜드 자체를 높이 평가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충분한 검증을 거쳐 우리의 옷을 구입하기 때문에 자긍심과 더불어 우리 옷에 대한 책임을 질 각오로 우리와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이러한 유통사의 책임감은 고스란히 고객에게 좋은 이미지를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게 됩니다.
최근 ‘상하이 패션위크’와 ‘K-컬렉션’등 아시아 시장을 공략하는 대대적인 행사를 펼치며 아시아 시장 진출에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류가 가져다준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가 있기에 아시아 시장은 더 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아시아의 패션산업을 오랫동안 이끌어온 패션 선진국 일본에게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일본의 가장 큰 장점은 선배가 후배를 이끌어주는 관습적인 시스템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선배와 후배가 알게 모르게 경쟁자의 위치에서 공존하고 있지만 일본은 자신이 후배를 이끌어줄 수 있는 위치가 되었을 때는 과감히 그 후배가 성공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는 사실에 놀라우면서도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물론 일본이 패션 선진국이다 보니 한국의 의류 브랜드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도 있습니다. 아직 일본에서 디그낙은 마니아층을 대상으로 판매되며 대중적인 위치에 서지 못했지만 차츰 그들이 우리 디그낙을 인정하고 한국의 패션 브랜드를 인정해 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외 각지의 시장을 연결해주는 새로운 통로가 바로 ‘온라인’입니다. 온라인은 패션뿐만 아니라 모든 산업의 유통과 판매를 주도하는 시스템이 되었고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온라인 시스템의 수혜를 받으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온라인 시스템으로 인한 검증되지 않은 기업과 제품이 시장을 흩트리게 된다는 것도 많은 분들께서 공감하실 것입니다. 패션의 경우는 우선 온라인으로 인해 디자이너가 되어 브랜드를 론칭하는 일련의 과정이 너무나 쉬워졌습니다.
예전처럼 옷에 대한 많은 지식과 경력을 쌓지 않고도 의상 브랜드 론칭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돈’만을 목적으로 론칭되는 브랜드들로 인해 많은 브랜드가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 역시 온라인 시장의 물결을 따라갈 것인지 아니면 저만의 스타일로 지금까지의 전략을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온라인으로 쉽게 판매하고 유명해질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자칫 지금까지 쌓아왔던 디그낙의 이미지가 큰 타격을 입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전 세계 모든 산업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가진 장단점을 적극 활용해 중점을 찾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편하게 해주는 만큼 분명히 병폐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아마 종이 매거진을 창간하는 ‘레전드 매거진’ 입장에서도 이런 부분에 많이 공감하시리라 생각됩니다. 솔직히 ‘요즘 누가 종이 신문이나 잡지를 보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들 역시 손가락 끝으로 수없는 정보를 밀고 밀어내며 정작 자신의 머릿속에는 담지 못합니다.
인터넷으로 보는 뉴스와 종이 매체로 읽는 뉴스는 입력도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인터넷은 정보의 범람이 통제가 되지 않을 지경이라 사람들은 제목에서 두 글자, 기사에서 서너 글자 눈에 담고 바로 다음 뉴스를 찾아 헤맵니다.
이러한 온라인의 단점을 파악하고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아마 저는 당장 내일이라도 온라인 시장에 전력투구 할지도 모릅니다.
정말 다사다난했던 올해는 특히 슬럼프 때문에 심적으로 많이 힘든 시기였습니다. 다행히 슬럼프를 대부분 극복해내고 새로운 도약을 하기 위해 다시 일어서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저의 인생과 패션에 담긴 모든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전해드릴 수 있어 홀가분함과 동시에 더 큰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레전드 매거진 역시 온라인 뉴스가 범람하는 현시대에 역행을 추구하는 의미 있는 매체로 자리 잡고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는 더 많은 인물들이 함께하고 응원하는 매거진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019년 새해에는 항상 행복한 일들만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