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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roes And Winners Oct 18. 2018

[사운드캣 인터뷰] Miho Nobuzane

취재 / 사운드캣 이준동 국장 <사진제공: Miho Nobuzane>


Miho Nobuzane(이하 Miho)는 미국에서 활동 중인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편곡가다.


일본 오사카 출신으로 대학에서는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했다. 졸업 후 더 넓은 세상에서 자신의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고자 미국 뉴욕으로 건너간다.


브라질 재즈에 기반을 둔 Miho의 첫 앨범 ‘Make you Happy’는 뉴욕의 최대 재즈 라디오 방송국 ‘WBGO 88.3’에서 전파를 타며 그녀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어 2014 년에 발표된 두 번째 앨범 “Simple Words – Jazz loves Brazil ‘ 발표 후 뉴욕과 일본, 그리고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콘서트를 열며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뮤지션들 역시 그녀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세계적인 드러머 Bernard Purdie는 “Miho의 다이내믹한 연주 기법은 분명히 다른 연주자와 차별화되어 있다”며 “Miho는 상쾌하고 훌륭한 크로스 오버 스타일로 이 세상 모든 음악을 연주한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또 유명한 브라질의 기타리스트 ‘Filó Machado’는 “Miho는 훌륭한 작곡가이자 재능 있는 피아니스트다”라며 “아름다운 선율의 즉흥 연주와 브라질 특유의 향기가 Miho의 음악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이다”라며 찬사를 보냈다.


2016년, Miho는 Nord의 공식 아티스트가 되었으며 지금까지도 Nord와 함께 그녀가 가진 모든 음악적 재능을 쏟아내고 있다.


사운드캣은 현재 미국에서 활동 중인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Nord 아티스트 Miho와의 서면 인터뷰로 그녀의 음악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운드캣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인사 부탁드립니다.


사운드캣을 항상 아끼고 사랑해주시는 여러분,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는 Miho Nobuzane(信実美穂)입니다.


저는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고 현재 미국에서 생활한지는 20여 년 정도 됐습니다. 재즈를 기반으로 하는 피아노 연주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여러 뮤지션들과 함께 하고 있으며 현재 브라질 리듬을 가미한 재즈 밴드 ‘Miho Nobuzane  Samba Jazz Trio’의 리더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음악의 길을 걷게 되었나?


저희 어머니께서 음악에 조예가 깊으셨고 또 음악을 많이 좋아하셨어요. 저는 언니가 있는데 어머니는 언니를 야마하 음악 학원에 다니게 했죠. 당시 언니의 나이는 4살, 제 나이가 2살 정도였는데 언니가 피아노를 배우는 동안 저와 어머니는 뒤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곤 했습니다.


저는 전혀 기억이 안 나지만 어느 날인가 제가 어머니 무릎 위에 앉아서 언니의 피아노 연주 소리에 따라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언니의 연주를 들으며 흥얼거렸던 멜로디가 저에게 지금의 절대음감을 가질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죠.


이렇게 음악에 대한 관심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속으로 들어와 버렸어요. 그래서 저도 4살 되던 해 자연스럽게 어머니 손에 이끌려 클래식 피아노를 시작하게 되었죠.


그 후 청소년기에도 클래식 피아노는 저의 삶의 일부이자 전부가 되었고 대학도 ‘클래식 피아노’ 학과에 진학을 하게 됩니다.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정작 저는 재즈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졸업 후에는 일본에서 재즈 피아니스트로 활동했습니다.



미국으로 가게 된 계기는?


일본에서 재즈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하면서 어느 순간 재즈에 대한 한계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제가 재즈 피아니스트로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재즈에 대한 본질부터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는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죠.


그래서 ‘재즈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정식으로 재즈를 배워보자’라는 마음 하나로 무작정 미국행을 택했습니다.


원래 처음에는 ‘딱 6개월만 지내면서 제가 배우고 싶은 것을 마음껏 배우고 돌아오자’라는 계획이었어요. 하지만 뉴욕에서 재즈에 대한 공부를 하며 많은 뮤지션들과 교류하기 시작했고 제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재즈라는 것을 6개월 안에 배워 다시 일본으로 귀국한다는 것은 애초에 실현될 수 없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만큼 제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고 알아야 할 것이 그보다 더 많았습니다.


그렇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뉴욕에서 재즈를 공부하면서 틈틈이 친구들과 함께 라이브 공연을 하며 지식과 실력을 동시에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뉴욕에 있는 수많은 라이브 클럽 사이에서 저의 인지도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고 공연 요청도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라이브 공연 일이 점점 늘어나면서 ‘아마 내가 꼭 일본에 돌아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처럼 라이브 클럽에서 나를 알아주고 조금씩 내가 자리를 잡게 되면 뉴욕에서 ‘내가 원하는 공부도 하면서 재즈 피아니스트로 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고 지금까지 그 계획을 실현시키며 살고 있습니다.

아시아인으로 미국 생활이 힘들지 않았나?


아시아인이기 때문에 힘든 건 없었지만 처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바로 ‘영어’였죠. 뉴욕에는 워낙 많은 전 세계 이민자가 공존하기 때문에 우리가 우려하는 인종 차별적인 어려움은 전혀 없었습니다. 재즈를 배우기 위해서는 먼저 영어를 정복해야만 했죠.


영어가 어느 정도 완성이 되니 제 마음에도 조금씩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재즈 공부와 재즈 피아니스트로서의 라이브 클럽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언어보다 더 힘든 일이 하나 있었어요. 사실 제가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싱글맘으로 두 아이를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와 두 아이 모두를 키워낸 것이 바로 음악이 아닌가 싶어요. 제가 미국에서 싱글맘으로 버틸 수 있었던 힘도 음악이었고, 또 두 아이가 미국에서 문제없이 잘 자랄 수 있었던 힘도 음악이라 생각해요.


지금은 모든 것이 음악의 덕이라며 웃으며 말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있었기에 제가 더 적극적으로 움직였고, 저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그들에게는 음악의 열정으로 보였을 거라 믿고 있어요.


그리고 제가 아시아인으로 미국에서 음악 활동을 해본 결과, 제가 하고자 하는 확신과 열정만 있으면 그들은 저를 좋아하고 사랑해 줍니다. 위에 말씀드렸듯이 너무나 많은 인종과 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다 보니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기회를 놓친 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저를 평가하는 것은 오직 하나, 음악입니다. 다른 그 무엇도 저에게나 그들에게나 문제 될 게 없었어요.

Miho에게 음악이란


저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살아 숨 쉬는 음악, 클래식 피아노와 재즈와 같은 음악을 항상 마음속에 그리며 살아왔죠. 음악 외에도 테니스 같은 운동을 하며 음악 외적인 시야를 항상 넓게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음악이 아닌 다른 스포츠나 여가 활종을 통해 음악과 관련된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거기에서 또 다른 음악적 영향이나 영감을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제가 음악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라는 욕심 때문입니다.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들의 마음이 음직일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길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저 역시 청중의 입장으로 수많은 음악을 듣습니다. 물론 최신 유행하는 디지털 음악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죠. 시대를 구분하지 않고 음악이라는 것은 항상 똑같습니다. 한 음악에는 그 음악가의 혼과 열정이 담겨있죠.


만약 그 음악가의 혼과 열정을 청중이 느낄 수 없다면 그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미술과 음악 같은 예술 작품들은 반드시 그 작품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공감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을 때 비로소 함께 형성될 수 있는 것이고요.


한 음악가의 음악이 그런 기회를 놓친다면 정말 유감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가끔 TV나 인터넷을 통해 보면 그런 유감스러운 음악들이 가끔 발견됩니다. 음악적으로는 너무나 완벽하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 충분한 음악이 뮤직비디오나 스타의 비주얼적인 측면에 왜곡되어 청중에게 잘못 전달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음악가는 이 세상을 떠나도 그 음악은 영원히 사랑받아야 마땅한데, 스타가 사라져 버리면 그 음악도 사라져 버리는 일들이 가끔 존재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스타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지,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음악과 청중이 함께 공감하고 함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음악들이 청중의 곁에 오래 머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음악입니다.


Miho와 Nord


저와 Nord의 첫 만남은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사우스캐롤라이나 뮤직 페스티벌’에서 처음으로 Nord를 연주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연주하며 Nord만이 가지고 있는 깊은 소리에 매료되었습니다. 연주하는 내내 손끝을 통해 마음속으로 울려 퍼지는 감동의 전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NAMM show’에서 Paul Simon의 베이시스트 Bakithi Kumalo와 함께 NS design booth에서 Nord 연주를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NAMM show 기간 중 열리는 ‘Bass Bash concert’에 참가해 ‘Bakithi 밴드’와 함께 모든 곡을 Nord keyboard로 연주하기도 했습니다. 그 인연으로 현재 Nord U.S.A 공식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모델은 ‘Electro 5D SW73’입니다. Nord만의 깊이 있고 세련된 사운드, 그리고 오르간 섹션의 드로우바(DrawBars) 모두 매력적입니다. 라이브 중심의 프로그램 섹션을 갖춘 클래식 음악에 최적화된 고전적인 에뮬레이션을 필요로 하는 저에게는 최고의 모델이죠.


특히 오르간과 피아노 섹션은 실제 악기와 거의 동일한 사운드를 구현합니다. 제가 재즈 피아노 연주를 많이 하다 보니 제품이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함께 향상되는 피아노 소리에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Nord의 또 하나의 장점은 바로 다른 브랜드에 비해 무게가 가볍다는 것입니다. Nord를 알기 전까지는 좋은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너무나 무거운 키보드를 들고 다녀야 했죠. 특히 저 같은 경우는 공연할 때 2개 이상의 키보드를 함께 연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동시 많은 제약이 따랐죠. 이럴 때 Nord의 가벼운 무게가 진가를 발휘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눈에 확 들어오는 화려한 빨간색 몸체도 강렬한 매력을 발산하며 시선을 압도하기 충분합니다.

한국 음악에 대해


한국음악의 첫인상은 가수의 발성이 무척 아름답고 상냥함이 가득 느껴집니다. 가수로서의 발성과 가창력을 갖추고 그 음악을 표현하는 안무까지 겸비한 다재다능함이 한국 가수들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연히 그런 이유로 한국 가수들이 전 세계에서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한 가지 감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자신의 개성에 자부심을 가져라’입니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개성이 훌륭하다는 믿음을 잃지 않고 자부심을 갖는다면 남들과 뚜렷이 차별화된 더 멋진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메시지


제가 미국에 있다 보니 아직 한국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 꼭 연주를 하고 싶습니다. 제 첫 앨범 제목이 바로 ‘Make you Happy’입니다.


저의 음악이 전 세계 모든 분들을 행복하게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청중들과 호흡하고 함께 공감하는 음악으로 모든 분들이 절실히 원하는 각자의 삶의 목표에 다다를 수 있도록 응원하겠습니다.


제가 그런 일을 잘 해 낼 수 있도록 여러분께서도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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