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

아동학대 사건의 처리

by 히어로N

어느 날, 두 아이의 이름이 적힌 사건 기록을 받았다. 사실 그날은 특별한 일이 없었다. 평소처럼 문을 열고 들어와 컴퓨터를 켜고, 어제와 비슷한 사건 목록을 훑어보던 그런 하루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기록을 처음 꺼내 었을 때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몇 장을 채 넘기기도 전에 마음속에서 작은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기록을 받았을 때 아이들은 이미 아버지로부터 분리되어 보호시설에 있었다. 그러나 그 상황이 주는 안정감은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 곧 무너졌다. 사진 속 아이들이 살던 집은 말 그대로 삶의 흔적이 아니라 고통의 잔해였다. 퀴퀴한 냄새가 기록 너머로 스며 나오는 듯한 부엌, 개 배설물이 단단히 굳어 바닥의 일부처럼 되어버린 거실, 냉장고 안에 오래 방치된 음식들에서 피어오르는 회색빛 곰팡이, 밥솥에서 기어 나오는 바퀴벌레. 그런 곳에서 두 아이가 자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한동안 사진을 봤다가 눈을 돌리고, 다시 펼쳐보는 일을 반복했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이혼하면서 재산 나눔을 빌미로 친권 양육권을 어머니로부터 강제로 빼앗고 아이들을 홀로 키우던 것이었는데 그와 같이 양육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진술서 속 아이들의 말은 사진보다 더 조용하게 마음을 쳤다. 영희(가명)는 “냄새 때문에 누구도 집에 온 적 없어요. 샤워를 하고 학교에 가도 친구들이 냄새가 난다고 놀려요”라고 적었다. 아주 짧은 문장인데, 그 짧음 속에 얼마나 많은 일들이 묻혀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철수(가명)는 어느 날 아버지가 술에 취해 헤드락을 걸어 숨이 안 쉬어졌다고 했다. 진술서의 글씨는 아이가 쓴 것이었고, 그 글씨를 따라 읽다 보니 아이가 말하고 있을 때의 목소리가 울리는 듯했다. 여러 사건을 겪어왔지만, 이번 사건은 기록 자체가 작은 울음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이 이미 시설에 있다는 사실은 크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기록을 깊게 들여다보니 피의자가 그 이후 어떤 행동을 해왔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는 보호시설에 전화를 걸어 아이들을 내놓으라고 소리쳤고, 군청 직원에게 “아이들을 유기했다”며 항의했으며, 아동보호전문기관에는 “내가 당신들을 고소하겠다”라고 협박했다. 심지어 피의자는 아이들의 학교에도 연락을 시도했다. 아이들이 더 이상 그 집에 살지 않아도, 그는 여전히 아이들의 일상을 흔드는 그림자처럼 따라붙었다.


그런 상황에서 관계 공무원들과 통화를 하면 다들 비슷한 톤으로 말했다. “이 분은… 좀 위험해요.” “말이 잘 안 통해요.” “통제하려는 느낌이 강해요.” 그 말들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있었다. 아이들이 시설에서 안정감을 느끼기에는, 아버지의 계속된 행동이 너무 크게 흔들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아버지에게 돌아갈 수 없도록 하기 위한 임시조치를 연장해야겠다는 생각을 바로 했다. 그뿐 아니라, 아예 연락 제한 및 친권 정지까지 포함한 피해아동보호명령까지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보호명령은 말 그대로 아이들을 향해 접근하는 모든 길을 막는 조치였다. 나는 청구서를 쓰며 수차례 문장을 고쳐 썼다. ‘위험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했고, 그가 어떤 방식으로 아이들과 관계기관을 위협해 왔는지를 하나하나 기록해야 했다.


보호명령은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 이후의 상황은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피의자가 그 보호명령의 송달을 회피한 것이다. 그는 경찰이 보호명령서 전달을 위해 찾아가면 멀리 도망가며 피했고, 현관문을 열었다가 닫아버리거나 “나 지금 바쁘다”라고 말하며 송달을 피했다. 보호명령을 고지받지 않으면, 지킬 필요도 없다고 여기는 듯한 태도였다. 나는 이 단계에서 이미 느꼈다. 이제는 더 강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그래서 첫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아이들과 관계기관에 대한 지속적인 위협, 명령 회피, 접근 시도, 공격적 성향. 여러 요건이 충족되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기각이었다. 법원은 “이미 보호명령이 있고, 구속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라고 판단했다. 합리적인 설명이었지만, 마음 한편이 비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감정은 감정이고, 법은 법이다. 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기각 결정이 내려진 바로 그날 밤, 피의자는 아이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우리 문자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라.” 아이는 두려움을 호소하며 그 문자를 바로 보호시설 선생님에게 보여주었고 즉시 나에게 전달되었다.

그 문장은 짧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길고 어두웠다. 아이들에게 침묵을 요구하는 목소리, 다시 통제하려는 손길, 다시 시작되는 그늘. 보호명령이 지켜질 리가 없었다. 나는 한동안 모니터를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 사람은 멈추지 않을 것이고, 멈출 마음도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 무렵 나는 아이들을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만나기 전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상상하지 못했는데, 막상 면담실에 들어선 순간 두 아이는 생각보다 더 조용하고 더 작아 보였다. 영희는 내 옆에 앉아 “아빠가 학교에 왔다는 얘기 듣고 너무 무서웠어요”라고 말했다. 철수는 “또 찾아오면 어떡해요?”라고 물었다. 그 말투는 흔들리지 않았지만, 깊은 곳에서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어른들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불안 속에서 보냈는지 새삼 깨달았다. 아이들은 어떤 선택권도, 힘도 없었으면서도 모든 결과를 자기 잘못이라 여기고 있었다.


나는 그날 아이들과 밥을 함께 먹었다. 메뉴는 특별할 것 없는 식사였지만, 아이들이 오랜만에 마음 편하게 먹는 듯한 모습이 잠시나마 위로가 되었다. 며칠 뒤 마주한 날에는 겨울옷을 사줬다. 기능성 좋고 따뜻한 옷이었다. 겨울을 견디는 데 최소한의 방어막이라도 되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영희는 옷을 받아 들고 “예뻐요”라고 했고, 철수는 “따뜻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짧은 말이었지만, 그 말들이 오래 남았다.


이제는 두 번째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기각 후 상황이 개선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보호시설, 군청, 학교 등 그는 더 적극적으로 여러 곳을 뒤흔들었다. 그래서 재청구를 위해 기록을 다시 정리했다. 나는 모든 정황을 다시 읽으며 한 문장, 한 단어씩 신중하게 적어나갔다. 이번에는 단순히 법률요건이 아니라, 아이들의 시간과 감정을 보호하기 위한 글을 쓰는 마음으로 임했다. 나는 문서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피의자가 구속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앞으로도 안전한 일상을 되찾기 어렵습니다.”

문장 하나지만 그 안에 여러 날 동안의 고민과 감정이 함께 들어 있었다.


재청구한 영장은 결국 발부되었다. 보호시설에 그 소식을 전하자 모두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마침 동시에 진행 중이던 친권 양육권 변경 소송에서 아이들의 친권자 양육권자가 어머니에게로 변경되었고 아이들은 보호시설에서 나와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며칠 뒤 아이들을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의 표정은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조심스럽게 기대를 품은 표정이었다. 철수는 작은 목소리로 “이제 엄마랑 계속 같이 살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그 질문은 부서질 듯 여렸고, 동시에 너무나 절실했다.


그러나 피의자를 구속한 이후에도 마음이 완전히 편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서 아버지를 강제로 떼어낸 것이 정말 옳은 선택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떠올랐다. 그가 지금까지 보인 행동을 보면 필요한 조치였음이 분명했지만, 사람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단순히 흑백으로만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과거의 상처와 동시에 어른에 대한 희미한 기대도 함께 품고 살아간다. 그 기대를 내가 단칼에 끊어냈다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이 문득 들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품고 있던 어느 날, 나는 구속된 피의자를 조사하기 위해 검사실로 불렀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가 강하게 반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동안의 행동을 보면 책임을 부정하고, 억울하다며 소리치고, 조사를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조차 모를 것이라고 거의 확신했다. 혹시라도 그가 계속 공격적으로 나오면 어떻게 설명하고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머릿속에서 여러 경우의 수가 오갔다. 그가 조금이라도 책임을 느끼게 한다면 그것으로 다행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피의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던 순간, 나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았고, 숨을 고르기도 전에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먼저 꺼냈다. 그 목소리는 작았지만, 억지로 감정을 만들어낸 목소리 같지는 않았다. 나는 순간 잠시 말을 잊었다.


그는 한참 동안 자신의 행동에 관해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아이들을 힘들게 했는지, 왜 관계기관에 소리를 지르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는지,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아이들에게 어떤 짐이 되었는지를 스스로 돌아보는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는 구속영장이 왜 발부되었는지 이해한다며 깨닫게 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제가 너무 큰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합니다. 저를 이렇게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이 완전히 진심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누구든 법적 처벌을 앞두면 순간적으로 반성하는 척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런 거짓과 진심을 구분하는 일은 항상 어렵다. 그러나 그날만큼은, 그의 말투와 표정, 몸짓에서 묘하게 꾸며지지 않은 진심이 느껴졌다. 마치 오랫동안 자신이 저지른 모든 행동이 한꺼번에 자신을 덮쳐 온 것처럼 보였다.


나는 놀랍기도 하고, 어딘가 복잡한 감정이 밀려오기도 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 반성은 결코 그동안의 고통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누군가가 진심으로 잘못을 깨닫고 바뀌려는 모습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변화의 순간이 생겼다면, 그 또한 누군가의 삶에서는 분명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구속이란 단순히 ‘떼어놓는 조치’가 아니라, 누군가가 자신의 잘못과 마주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는 안전을 되찾는 시간이 되었고, 그에게는 자신의 파괴적 행동을 멈추고 돌아보는 시간이 된 것 같았다. 비록 그 시간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내가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날 마음속에서 아주 작은 돌 하나가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사건을 마무리하고 기록을 덮을 때, 이상하게도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단순히 일이 끝났다는 느낌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긴 겨울 속에 잠시 손을 내민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한 일은 사실 대단한 것이 아니다. 사건을 검토하고, 관계기관과 소통하고, 필요한 조치를 청구하고, 아이들과 몇 번 만나 밥을 사주고, 옷을 챙겨준 정도. 하지만 그런 작은 행동들이 모여 누군가의 삶에 한 줄기 빛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이번 사건을 통해 새삼 느꼈다.


아이들이 바란 건 크지 않았다. “아빠가 또 오면 어떡해요.” “엄마랑 살고 싶어요.” 이 두 문장 안에 그들이 지나온 모든 시간이 담겨 있었다. 아이들의 두려움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적어도 그 두려움을 조금은 멈추게 해주고 싶었다. 나는 그 마음으로 사건을 처리했고, 그 마음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언젠가 두 아이가 걱정 없이 웃으며 살아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와도 다시 가까워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여기까지였지만, 그날이 오기를 기도하듯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이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아마 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그들이 웃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느꼈던 떨림과 불안, 고민과 바람이 아이들의 하루를 조금이라도 밝게 만들었다면, 나는 그걸로 족하다. 나는 이 사건을 통해 누군가의 삶에 작은 빛을 건넬 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래 살아갈 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