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는 기억을 왜곡하는 게 일상
최근에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은 사건이 하나 있었다. 사실 큰 사건은 아니었다. 술집에서 나와 화장실로 가는 길에 벽타일을 발로 차서 깨뜨린 단순 재물손괴. 흔히 말하는 술 먹고 사고 친 사건이었다. CCTV도 있고, 영상 속 얼굴도 선명하게 나오고, 함께 있던 친구들도 모두 “피의자가 맞다”고 지목하는 사건. 그래서 처음엔 금방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피의자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예상과는 전혀 다른 태도가 들려왔다. 자기 아니라고, 영상 속 인물이 자기 일 리가 없다고, 오히려 내가 이상한 소리를 한다는 듯한 말투였다. 말 끝에 묻어 있는 건 억울함도 회피도 아니었다. 그냥 이유 없는 부정, 그리고 태도 자체가 별로 좋지 않았다. 잠깐의 전화 통화였는데도 속이 꽉 막힌 느낌을 받았다. 사람의 태도 하나가 사건의 어려움보다 더 피곤하게 만드는 경우가 이런 때다.
솔직히 그 순간 조금 열도 받았다. 잘못한 것도 인정하지 않고, 태도도 좋지 않고, 반성도 안 보였다. 그렇다고 이런 사건에서 구속을 할 수도 없고, 재판에 넘겨도 유죄 확정까지는 한참 걸린다는 사실 때문에 답답했다. 그러다 문득 ‘이래서 판사가 좋은 건가’ 싶기도 했다. 단호하게 결론을 내리고 즉시 엄한 처벌을 내리면 되는 자리가 너무 부러웠다.
그래도 사건은 사건이니까,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 확인했다.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들에게 전화를 걸어 당시 상황을 물어봤고, 그들이 들려준 말은 너무 명확했다. '그날 피의자는 본인이 깨뜨린 게 맞다고 직접 인정했고 변상하겠다고까지 이야기했다'고 했다. 전화기 너머의 경찰관은 “그때는 자기가 맞다고 인정했어요. 명백하게 기억합니다”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깊은 숨을 한 번 쉬었다. 사람은 어제의 자기 말도 아무렇지 않게 뒤집을 수 있다. 기억은 쉽게 지울 수 없고 거짓말 역시 양심을 버리는 일인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냥 손쉽게 고르는 선택지 같았다.
기록을 살펴보니 피의자는 예전에도 사고를 여러 번 친 전력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기록보관소에 요청해 과거 사건 자료 중 일부를 꺼내왔다. 오래된 파일을 열어보니 당시 사건 영상도 남아 있었는데, 그 영상 속 모습과 이번 사건 CCTV 속 인물이 똑같았다. 동일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예전 사건의 관련자들도 불러서 영상을 보여줬더니 모두 “같은 사람 맞다”고 말했다.
피의자의 학교생활기록부도 회신받았다. 어렸을 적부터 태권도부 생활을 오래 했더라. CCTV에서 벽타일을 부실 때의 발차기가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태권도 발차기였던 것이다.
이러한 증거들을 모아보니 피의자임을 더욱 확신했다. 그래서 나는 피의자를 불렀다. 그런데 여전히 똑같았다. 영상 속 인물이 본인이 맞는데도 시치미를 떼며 “아니라니까요”라고 말했다. 반성이나 머뭇거림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입장만 끝까지 밀어붙이려는 태도였다. 나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기보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사실 앞에서 얼마나 쉽게 스스로를 속일 수 있는지를 다시 실감했다.
그래도 결국 나는 해야 할 말을 하고, 해야 할 질문을 하고, 해야 할 절차대로 조사를 마쳤다. 그리고 그 과정 내내 마음속에 ‘왜 이렇게까지 부정하는 걸까’, ‘진실을 외면하는 데 왜 이렇게 익숙할까’, ‘이런 사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하는 질문들을 스스로 했다.
사건을 정리하고 기소를 했다. 크지 않은 사건인데도, 사람의 태도 하나가 이렇게 기분을 나쁘게 한다는 것이 조금 아이러니했다. 가끔 이런 사건들을 겪고 나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진실을 밝히는 일보다 더 어려운 건, 진실 앞에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일지도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