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힘들게 하는 것은 일이 아닌 사람
요즘 들어 유난히 마음을 어지럽히는 사람이 있다. 같은 청의 선배다. 나와 겨우 1년 차이. 나이도, 기수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말투는 늘 고압적이고 태도는 언제나 삐딱하다. 문제는 나와 직접적인 갈등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본래 윗선배들이나 동기들과 불편한 일이 있었던 것 같지만, 그 감정은 어김없이 나에게로 흘러와 꽂혔다. 이유 없이 날이 서 있는 말, 이유 없이 기분 나쁜 반응이 늘 뿜어져 나왔다.
청에 처음 왔을 때부터 그 사람은 점심시간마다 침묵으로 분위기를 망쳤다. 말없이 얼굴을 굳히고, 숟가락만 움직이며 주변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점심도 같이 안 먹겠다고 했고, 우리가 함께하려는 모든 모임에 “안 갑니다”라는 짧고 퉁명스러운 답을 던졌다. 단체 메신저를 만들면 늘 바로 나갔고, 그러면서도 정작 소식이 늦으면 불만부터 터뜨렸다. 스스로는 관계를 끊어놓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늘 피해자처럼 굴었다.
그래도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가보려고 했다. 먼저 말도 걸고, 별일 아닌 안부 인사도 보내고, 가끔은 응원 메시지도 보냈다. 그런데 돌아오는 것은 대부분 무응답이었다. 읽었는지조차 모를 정도의 정적.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애써 참고 있다는 사실이 점점 서러움이 아니라 분노로 바뀌기 시작한 게.
부장님 주재 회의에서 일이 한 번 크게 터졌다. 우리가 다 같이 힘들게 수사했던 대규모 보이스피싱 구속 사건의 재판을 앞두고, 누가 직접 재판에 들어갈지(직관 = 수사검사 직접 재판 관여)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부장님이 “누가 들어갈까”라고 말을 꺼낸 순간, 그 선배는 대놓고 크게 한숨을 쉬더니 “우리 중 한 명이 들어가기로 언제부터 정해진 거예요? 저는 왜 모르죠?”라고 쏘아붙였다.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고, 바로 그걸 논의하려던 자리였는데도, 마치 우리가 몰래 다 짜고 자기만 빼놓은 사람처럼 굴었다. 부장님이 “오늘 이야기하면 된다”고 차분히 정리했지만, 그의 말투는 끝까지 무례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처음으로 분명하게 느꼈다. 이 사람은 단순히 예민한 게 아니라, 타인을 향한 기본적인 예의를 내려놓고 있다는 것을.
며칠 뒤, 그는 나에게 직접 전화를 해 “우리 청은 왜 공지가 제대로 안 되냐. 네가 기획이니까 제대로 좀 해라”라고 말했다. 그 직관(수사검사가 직접 재판에 관여) 건은 애초에 확정된 사실도 아니었고, 공지 자체가 나갈 수 없는 단계였다. 그걸 그대로 설명하자, 이번엔 “그것 말고도 다른 것도 많은데 말 안 한 거다”라고 다시 쏘아붙였다. 순간 많은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나는 끝내 삼켰다. 그리고 “죄송하다, 앞으로 잘 전달하겠다.”라고 답을 했다. 그 말은 사과라기보다, 그냥 싸움을 끝내기 위한 신호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자금추적팀 수사관이 점심시간에 자금 추적 강의를 해주기로 한 날이 있었다. 그 일정은 다른 선배가 준비했고, 이미 전체 공지와 참석자 확인도 끝난 상황이었다. 나는 참석한다고 답을 했었고, 그 선배는 이번에도 아무 말이 없었던 것 같았다. 강의 당일, 혹시나 싶어 내가 단체 메신저에 다시 한번 확인 글을 올렸고, 주관하신 선배가 답하면서 점심 주문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그 선배는 끝까지 아무 반응이 없었다. 우리는 예정대로 강의를 듣고 돌아왔다.
그런데 강의가 끝나자마자, 그 선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뭐야, 오늘 점심에 강의했어? 언제 어디서 했어?”라는 말이었다. 나는 이전 공지와 그날 단체 메신저까지 모두 캡처해 보냈다. 그러자 그는 “나도 다 알아. 근데 넌 어디서 하는지는 어떻게 알았냐”고 했다. 참석 의사를 밝히지도 않은 사람이, 참석자에게만 전달된 장소 정보를 문제 삼는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참석자들에게만 보냈다”고 했더니, “그래도 공지는 모두에게 제대로 되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 순간, 정말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이미 언제 어떤 내용으로 강의가 진행될 거라는 내용은 수차례 전달이 되었고, 참석을 원했으면 미리 연락을 하던가, 그게 아니라면 지금 이렇게 추가 공지를 바라지 말던가 정말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하는 순간, 내가 더 망가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저녁, 지청장님 주재 저녁 식사 자리에서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우리는 6시 10분에 1층에서 모여 같이 출발하기로 되어 있었고, 나는 따로 6시에 부장님을 모시고 내려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결재가 길어지면서 시간이 조금씩 밀렸고, 다른 검사들도 부장님 방으로 모여들며 함께 기다리게 되었다. 6시 10분을 조금 넘긴 시점, 그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왜 아무도 안 내려와? 왜 나만 내려와 있어? 나 빼고 다 공지된 거야?”
이 상황은 내가 즉시 전달하지 못한 부분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 말투에는 설명을 들을 여지조차 없어 보였고 오로지 탓하려는 말투였다. 다른 검사들은 1층에 내려갔다가 사람이 없자 다시 올라왔을 뿐이었다. 그 선배도 조금만 기다리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언제나 ‘이해’라는 선택지가 없다. 대신 늘 ‘공격’이 먼저 나온다.
그날 이후, 나는 마음속에서 이 사람과는 더 이상 인간적인 기대를 섞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 나는 그 선배를 위해 주말 당직도 여러 번 대신 서 주었고, 가능하면 최대한 배려하려 애써왔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고마움도, 존중도 아니었다. 언제든지 쏘아붙일 준비가 된 말뿐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잘 지내려고 애쓰지 않기로 했다. 나 혼자 애써서 유지되는 관계는, 그 자체로 이미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참는 것도 결국은 한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