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된 마약 피의자 조사

부인하는 많은 사건들

by 히어로N

요즘은 재판, 기획 업무, 배당 사건들이 한꺼번에 밀려들어 어느 하나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머릿속에서는 우선순위를 정리해보려 하지만, 정리하는 동안에도 새로운 사건이 또 책상 위에 놓인다. 처리하려고 계획했던 사건들을 끝내지 못한 채 다음 날로 넘기다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고, 문득 모든 걸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쯤이면 검사를 늘려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하지만 검사 인력을 늘리자는 논의는 좀처럼 공론화되지 않는다. 마치 ‘검사는 힘들어도 되는 존재’처럼 취급되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오늘은 마약 구속 피의자 조사가 있었다. 피의자는 투약 사실은 인정했지만, 친구 A에게 마약을 무상으로 건넸다는 부분만큼은 완강히 부인했다. 사건의 흐름은 비교적 명확했다. '친구 A가 마약을 투약했다'는 제보가 들어왔고, 경찰이 친구 A를 긴급체포한 뒤 추궁하자 A는 즉시 마약을 제공해 준 사람으로 피의자를 지목했다. 통화내역, 둘이 함께 있는 장면이 찍힌 CCTV 등 객관적 증거들이 그 진술을 뒷받침했다. 경찰은 이를 근거로 피의자를 추적해 체포했고, 피의자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했을 때 실제로 마약이 들어있는 봉투도 발견되었다. 간이시약검사 결과 피의자의 마약 투약 사실도 확인되었다. 전체 흐름을 보면 친구 A의 진술은 거짓말이라고 보기 어려운 구조였다.
그리고 경찰이 압수수색할 당시 피의자는 가족에게 “그 친구에게 준 마약 때문에 내가 또 구속되게 생겼다”라고 말한 사실도 있었다. 피의자의 통화내역에는 마약 판매 전과가 있는 사람들과의 연락이 많았고, 주기적으로 만남을 가지는 것으로 보였다. 게다가 피의자는 처음에 투약 사실조차 강하게 부인했는데 간이시약검사 결과 양성이 나오자 이를 번복해서 인정한 사실도 있었다.

하지만 피의자는 끝까지 “마약을 내가 준 것이 아니다”라고 고집했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정황들을 종합하면 피의자의 말은 신빙성이 없다. 친구 A의 진술을 다시 들어본다 해도, 사건의 핵심이 변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의자의 말대로 다시 기록을 면밀히 검토해 보더라도 이 사건은 혐의가 없다고 보기 어려웠고, 피의자의 주장과 설명 중에 납득 가는 부분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피의자가 부인하는 사건은 매우 많고, 그럴 때마다 매번 '피의자의 말을 어디까지 고려해야 하는지', '실체적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사가 더 필요한지' 등을 끊임없이 고민하게 된다. 거짓말에도 종류가 많고, 어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속일 정도로 능숙하게 부인하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남는 건 정황과 증거다. 사람의 말보다 기록에서 나타나는 증거와 정황을 믿어야 한다.

위 구속 피의자 조사를 마친 후, 다른 사건들 재판도 있는 날이었기에 정신없이 오늘 할 재판 준비를 마치고 법정으로 향했다. 재판은 늘 쉽지 않다. 무죄를 다투는 사람들은 기어이 검사를 향해 원망을 쏟아붓는다. “억울하게 기소당했다”는 말은 법정에서 가장 자주 들리는 말 중 하나다.

하지만 검사의 공소제기(기소)는 감정으로 하는 일이 아니고, 법과 원칙에 따라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다. 증거가 말하는 방향에 따른 판단일 뿐이다. 그래도 욕을 듣고 있으면 마음 한편이 시리다. 고생 끝에 정리한 증거와 논리 뒤에서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나’ 하는 자괴감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오늘 재판 중에는 불법체류자를 고용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도 있었다. 피고인은 “고용한 직원이 불법체류자인 줄 몰랐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그 불법체류자가 중국인이었고, 채용 절차도 정상적이지 않았으며, 취업 자격 증명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싼 임금으로 고용했다는 점이었다.

처벌이 되려면 피고인이 ‘직원이 불법체류자인 사실을 알면서도’ 고용했다는 점이 입증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직원이 불법체류자일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있음에도 그 구체적인 확인을 피하고 만연히 채용해도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

이 사건도 아마 피고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보고 기소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오늘 재판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그 인정이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사님도 혐의가 인정되는 게 맞는지 고민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피고인에게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려면 '직원이 불법체류자일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고 볼만한 증거, 직원이 불법체류자라고 볼 수밖에 없는 정황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이 사건에서는 그런 조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이런 경우에는 공판검사인 내가 혐의를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보완을 해야 한다. 검사실로 돌아와서 기록을 다시 면밀히 검토하고 주요 참고인에게 전화를 다시 해보고 필요한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

재판을 마치고 돌아오니 하루가 거의 끝나 있었다. 그 사이 단체 쪽지로 온 공지와 지시들을 확인하고, 내일까지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니 어느새 퇴근 시간이었다. 퇴근 시간이 의미가 있는 직업은 아니지만, 그래도 집에 아내가 있고 저녁을 준비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일단 나를 집으로 향하게 했다.

오늘 아내가 정성껏 만든 LA갈비를 먹었다. 살면서 먹어본 LA갈비 중 가장 맛있었다. 너무 맛있어서 준비한 양을 다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고, 집안을 조금 정리한 뒤 씻고 나오니 어느새 밤 9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출근을 다시 해야 하나, 아니면 이대로 집에서 조금 쉬고 내일 아침 일찍 움직일까 고민했지만, 결국 내일을 위해 쉬기로 하고 아침에 일찍 출근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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