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청장님이 취임한 월초의 하루

사건을 단 한 개도 보지 못하다

by 히어로N

지청장님이 새로 부임하시는 날이었다. 특검 파견으로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고 계시다가 특검 종료와 함께 이곳으로 내려오신 것이다. 몇 달간 고된 업무를 견뎌오신 분일 텐데, 취임식 자리에서 마주한 지청장님의 얼굴은 의외로 편안해 보였다. 특검의 긴장된 공기를 벗어나 조금은 숨을 돌리신 듯했고, 말투나 표정에는 오랜만에 제자리로 돌아온 사람의 여유가 묻어났다.

우리도 새로운 지청장을 모신다는 생각에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상태였다. 사건 결재 라인이 하나 늘어남에 따라 업무 부담은 어떻게 달라질지, 어떤 스타일의 결재를 하시는 분일지, 혹시 불필요한 업무가 생기지는 않을지, 부장님의 결재가 깐깐해지지는 않을지 하는, 그런 작은 걱정들이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취임식과 티타임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니 월초라는 사실이 바로 현실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복무평가’를 작성해야 했고, 다른 검사들에게도 이를 전파해야 했다.

공지 쪽지를 전송한 뒤 곧바로 작성에 들어갔는데, 그 과정에서 선배님의 지적이 들어왔다. 복무평가 공지가 늦었다는 것이었다. 평소에도 단체메신저를 만들면 금세 나가버리고 다른 검사들과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이던 선배였는데, 이번에도 그 불편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기획검사면 기획검사답게 공지를 놓치지 말고 제대로 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었지만, 하루에도 수십 개의 보고와 지시가 오가는 상황에서, 기획과 공판과 수사 업무를 수행하는 내가 모든 알림을 일일이 짚고 챙기는 것이 쉽지 않다. 그것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것에 짜증이 확 밀려왔다. 심지어 저 공지는 내가 늦게 한 것도 아니었고, 선배님이 지적하는 부분은 평소에 선배님이 단체메신저를 나가지 않고 잘 어울렸으면 되는 문제였다. 오전에 발생한 이런 단순한 에피소드 하나가 불필요하게 마음을 흔드는 날이었다.

오후에는 기획 업무들이 연달아 몰려왔다. 지청장님께 드릴 업무보고 자료, 주간업무보고를 작성해야 했다. 그리고 평검사 인사 시즌을 앞두고 ‘추가 인원 필요성’을 보고하라는 지시까지 내려왔다. 검사 다섯 명으로 40만이 넘는 4개 지역을 커버해야 하는 현실과, 특검 파견·이직·공백으로 인한 전반적인 인력난을 설명해야 하는 보고서였다. 그 외에도 청소년범죄예방위원회, 범죄피해자지원센터, 형사조정위원, 구치감, 교도소, 구치소 등 각종 법무행정 기관과의 활동과 협의 내용을 정리하는 법무행정협의회 자료까지 더해졌다.

월초라 사건 배당도 이미 밀려 있는데, 기획 업무만으로도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이번 주 재판 준비도 해야 하고, 오래된 장기 사건들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압박했지만, 그 가운데 어느 것도 손댈 여유가 없었다. 내일은 마약 구속 사건 조사까지 예정되어 있었기에 마음은 더 복잡해졌다. 모든 것을 포기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문득 찾아왔다.

그 와중에 지청장님께서 이번 주 수요일에 검사들과 저녁 만찬을 잡아 달라는 부탁을 하셨다. 식당 후보지를 찾고 하나하나 전화를 돌려 7명 예약이 가능한지 확인하고, 부장님께 보고 드리고, 다시 지청장님께 승인받는 과정이 이어졌다.

여기에 차량 문제까지 겹쳤다. 검사들끼리 각자 차량 두 대로 이동해도 되지만, 부장님은 첫 만찬인 만큼 청에서 차량을 배차해 가자고 하셨다. 담당 직원에게 연락해 배차 가능 여부를 확인하고, 운전기사님까지 포함해 식당 인원을 다시 조정하고, 이를 다시 모든 검사와 부장님, 지청장님께 전달했다. 보고 하나, 전파 하나에 예상보다 많은 절차가 필요했다.

기획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던 손이 계속 중단되는 상황 속에서,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건가’ 하는 공허함이 잠깐 들기도 했다.

그렇게 월초 하루가 모두 기획과 잡무로 지나갔다. 그런데 다 하지도 못했다. 사건 하나 보지 못했다. 재판 준비는 언제 할지, 쌓여 있는 장기 사건은 언제 끝낼지, 배당사건은 언제 다시 손댈지, 작성해야 하는 기획 보고서들은 또 언제 다 만들지, 이 모든 생각이 겹치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드라마 속 김 부장의 공황장애가 이럴 때 찾아오는 걸까.


결국 밤늦게까지 남아 검사 인력 충원을 요청하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오늘도 사건은 보지 못한 채 하루가 끝났다. 하지만 월초의 이런 구조는 사실 이제 익숙할 만큼 반복되는 풍경이었다. 내일은 또 다른 보고와 또 다른 일정이 쌓일 것이다. 내 앞의 책상 위 기록들은 여전했고, 나는 다시 그 앞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며 밤늦게 사무실 불을 끄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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