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말에도 사건 처리를 꼼꼼히

바쁘지만 따스함이 있는 하루

by 히어로N

요즘 유난히 몸이 무겁다. 특별히 아픈 것도 아닌데, 깨어 있는 시간 내내 피로가 어딘가에 눌어붙은 듯 따라붙는다. 아침 다섯 시에 눈을 뜨고 기계적으로 움직여 씻고 아직 식지 않은 새벽 공기를 가르며 청사로 향한다. 컴퓨터를 켜기도 전에 기록철을 먼저 펼친다. 이러한 일상이 반복되니 어느 순간부터는 피곤함의 원인을 따질 마음도 사라졌다.

낮잠을 잘까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월말이라는 두 글자가 곧바로 그 생각을 밀어냈다. 시간을 조금 비우면, 그만큼 사건이 처리되지 않고 남아버린다. 남겨둔 사건은 또 다음 날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결국 오늘도 쉬는 시간 없이 기록을 읽고 정리하고 결론을 정하고 처분했다.

오늘 처리한 사건 중에는 유독 골때리고 뭔가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학생들끼리 운동을 하다가 실수로 우연히 부딪혀 한 학생이 다친 일이 발단이었는데, 그 다친 학생의 학부모가 다른 학생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하면서 분쟁이 번졌다. 학생들은 괜찮은데 정작 그 학부모들끼리 서로 다툼이 계속되었고, 실제로 몸싸움까지 벌어져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양쪽 모두 쌍방폭행으로 처벌까지 받았다. 그런데 분노의 감정은 그래도 멈추지 않는가보다. 그 학부모들이 이번에는 그 다툰 날에 서로에게 한 욕설에 대해 서로를 모욕으로 고소하기 시작했다.
내게 배당된 기록에서 보이는 표현들은 꽤 거칠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소 의견도 생각했지만, 반대쪽 당사자의 사건을 맡았던 검사는 비슷한 표현들을 감정적 언사로 보아 불기소하였다. 그래서 그 검사와 부장님과 함께 상의하며 사건을 다시 바라보았다. 이미 같은 날에 벌어진 폭행 사건으로 처벌까지 받았고, 그 뒤로 이어지는 고소는 감정보다 관성이 더 커 보였다. 형사처벌이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데 의견이 모였고, 결국 내 사건도 감정적 표현으로 볼 여지가 있어 불기소가 타당하다는 결론을 냈다. 기록을 덮으며 분쟁이 더 길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뿐이었다.

기억에 남았던 또 다른 사건은 대포통장 제공 혐의 사건이었다. 피의자가 넘긴 계좌로 다수 피해자의 사기 피해금이 입금되고 전달되었다. 피의자는 통장을 건넨 것이 대출 절차의 일부라고만 생각했지 범죄조직이 사용할 거라고는 전혀 몰랐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대부분의 사건에서는 이런 주장을 믿기 어렵다. 대출마저도 정상적인 금융권을 통한 대출이 아닌 불법 대출이고, 그 대출 업자를 사칭하는 사기 조직원은 계좌를 넘기려는 사람에게 "대출을 받기 위한 과정에서는 통장 거래 실적을 쌓아 신용도를 높여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면서 계좌를 받아내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그리고 실제로 대출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보통은 의자가 그렇게 자신의 계좌를 넘기는 그 과정 자체가 사실상 성명불상의 대출 업자(를 사칭하는 사기 조직원)로 하여금 자신의 계좌 사용을 용인한 것으로 인정된다.
이 사건도 처음에는 비슷한 흐름이라고 예상했다. 그런데 피의자는 그 성명불상의 불법 업자 상대방과 나눈 대화 전체를 제출했고, 나는 혹시 모를 단서를 찾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읽어보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거래 실적이나 계좌 이용을 암시하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 상대방은 그저 “대출심사에 필요하다”고만 반복했다. 피의자가 계좌 사용을 허용했다고 볼 근거는 부족했고, 고의 역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결국 불기소장을 작성할 수 밖에 없었다. 스물한 살 청년의 이름을 적으며, 이런 사건을 겪은 것도 아마 처음이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고, 다음에는 이런 범행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랐다.


또 다른 사건은 가정폭력 범죄를 저질러 배우자에 대한 접근금지 등 임시조치 명령을 받은 피의자가 그 임시조치 기간 중 배우자와 살던 집 근처로 접근했다며 임시조치 위반으로 송치된 사건이 있었다. 겉으로 보자면 조치를 위반한 전형적인 사례처럼 보였지만, 피의자가 하는 변소는 단순한 발뺌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는 “그날 갑자기 비가 많이 쏟아져 지하수가 넘칠 것 같아, 수도밸브를 잠그러 간 것일 뿐 배우자에게 접근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흔히 보아온 변명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그 말 자체가 비현실적이라거나 거짓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만약 피의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당한 사유'로 접근했다고 볼 여지가 있어 임시조치 위반이 성립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결국 피의자의 말이 사실인지 여부가 수사되었어야 하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기록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 변소를 확인하기 위한 수사가 하나도 진행된 것이 없었다. 사건 당일 실제로 폭우가 내렸는지, 그 지역이 지하수 범람 위험이 있는 구조인지, 문제의 수도밸브가 실제로 지하수를 제어하는 기능을 하는지, 피의자가 현장에서 밸브를 잠그는 조치를 취한 흔적이 있었는지 등을 확인하는 수사가 진행된 것이 없이 경찰은 만연히 혐의가 있다고 송치한 것이었다. '정당한 사유'의 유무 판단에 필수적인 이 모든 질문이 기록에서는 공백으로 남아 있었다. 의도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사실을 먼저 확인해야 하는데, 정작 사실관계 파악이 되지 않은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기소도, 불기소도 어느 쪽도 판단할 수 없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확인이 이루어진 뒤에야 이 사건의 본질적인 질문인 “피의자는 정말로 배우자에게 접근할 의도가 있었는가?”에 답할 수 있다.
결국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내가 직접 수사를 하며 알아봐도 되긴 했지만, 현장에도 나가보고 관련 지자체 공무원도 조사해야하는 등 지금의 내 미제 상황으로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판단 하에 경찰로 하여금 보완을 하도록 하였다.

단순한 변명인지, 실제로 정당한 사유가 있었던 것인지, 그 사실관계를 다시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록이 말하지 않는 부분을 조금 더 확인해야만 이 사건은 비로소 판단의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런 사건들을 비롯하여 다수의 여러 건을 열심히 처리하니 미제가 줄기는 줄었다. 산처럼 쌓여 있던 기록이 조금은 낮아진 느낌이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처음에 비하면 버틸 만한 정도의 높이가 되어 있었다.

저녁 무렵에는 다음 날 재판 준비를 위해, 내일 증인으로 출석할 경찰관과 통화를 했다. 그 재판은, 피고인이 지인에게 보냈던 메시지, 즉 '대마를 키우고 판매했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놓고 변호인 측이 위법수집증거라고 주장하는 사안이었다. 그 문자메시지의 압수 경위가 조금 복잡했다. '필로폰' 투약 혐의로 긴급체포할 때 휴대전화가 압수되었는데, 그 문제의 문자메시지는 '대마' 관련 내용이었다. 휴대전화를 압수했다고 하더라도 그 압수의 범위는 혐의사실과 관련된 정보에 한정되기 때문에, 최초 압수한 범죄사실이 '필로폰' 관련이었다면 '대마'와 관련한 정보를 압수하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는 별도의 압수영장이 필요했다. 그런데 경찰이 별도의 압수영장까지는 발부받지 않은 것이다.
다만 피의자가 스스로 경찰관에게 메시지를 보여주었다는 정황이 있어, 그 ‘임의성’이 입증의 핵심이 될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필로폰' 투약 혐의로서의 압수가 적법했고 그 문자메시지가 '필로폰' 투약 혐의에 대한 증거로도 쓰이는 것이라면, 그 문자메시지는 다른 범죄 혐의의 증거로도 삼을 수 있다는 점 역시 강조할 필요가 있었다. 통화를 마치며 머릿속에서 논점들을 정리했다. 하루 중 가장 집중력이 높아지는 순간이었다.

통화를 끝낼 때쯤, 경찰관이 조심스레 말했다. “검사님, 경찰서에서 검사님을 천사 검사라고 부릅니다.”
우리 청은 4개 지역 총 인구 40만을 관할하는 청으로 경찰서와 경찰관들은 많이 있지만, 그나마 작은 지역이다 보니 검사는 다섯 명에 불과하다. 그래서 경찰관들 사이에 검사들을 대상으로 얘기가 오가고 어떤 소문이 도는 것 같았다. 소에 경찰들의 수고로움을 알기에 전화를 할 때에도 최대한 친절하게 말하고 보완수사를 요구할 때에도 그 이유를 납득할 수 있도록 상세히 기재하여 왔는데, 그 마음을 알아준 것 같아 내심 기분이 좋았다.

경찰과 검사는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는, 같은 목적을 가진 사람들인데, 정치적으로 서로 경쟁하는 관계처럼 비치는 현실은 아쉬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일선에서는 사실 검사와 경찰이 협조하며 수사를 해가고 있고,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늘 마음속에 있다.

저녁에는 검사들이 모두 모여 간단히 식사를 했다. 월말에 흔히 보기 힘든 여유였지만, 잠시라도 잡담을 하며 웃는 동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검사실로 돌아와 일을 시작한 지 한참 지나, 밤 열 시 무렵 선배 한 분이 찾아왔다.

“요즘 괜찮아?”

불필요한 수식 없이 건네는 그런 질문은 오히려 더 위로로 다가온다. 내가 공판, 수사, 기획 업무까지 겹쳐 바쁘다 보니 나를 보며 안쓰러워 하는 것 같았다. 사실 모두가 힘들다. 내가 이만큼 맡고 있다는 건 다른 검사들이 그만큼 더 분담하고 있다는 뜻이고, 결국은 모두가 조금씩 더 무겁다는 의미다. 그래서일까, 그런 와중에도 누군가 내 검사실까지 걸어와 “힘들겠지만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니 크게 위안이 되고 물이 나올 것 같았다.

오늘도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주어진 일을 순서대로 처리하고, 순서대로 지나간 하루였다. 그리고 내일도 비슷한 하루가 이어질 것이다. 나는 그 하루들을 하나씩 넘기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월말의 고단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