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이 나고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
오늘은 유난히 긴 하루였다. 아침 7시쯤 서둘러 출근했고, 사무실 문을 열자마자 책상 위에 쌓여 있는 기록들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별다른 숨 고를 틈도 없이 바로 사건 검토에 들어갔다. 종일 기록을 넘기고, 진술을 비교하고, 영상과 자료를 확인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니 시간의 흐름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해야 할 일’이 계속 내 앞으로 밀려들어오는 느낌이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머릿속에 남는 사건이 하나 있었다. 술집에서 나와 화장실로 가던 중, 벽타일을 발로 차서 깨뜨린 사건. cctv 영상을 보니 얼굴도 아주 또렷하게 나오고, 같이 있던 친구들까지 영상 보고 “이거 너 맞다”라고 지목하는 상황이었다. 어느 누구의 시선으로 봐도 명백한 사건이었다. 심지어 최초 경찰관이 출동했을 당시에는 경찰관에게 '자신이 깨뜨린 것이 맞고 변상하겠다'라고 말한 것까지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끝까지, 아주 단단하게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전화로 설명을 시도했지만 태도는 차갑고 성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반성은커녕 기본적인 예의조차 보이지 않는 말투였다. 처음엔 침착하려 했지만, 점점 말끝마다 짜증이 스며들어 나도 모르게 속이 꽉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증거가 이렇게 있는데도 왜 부인을 하지?’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잘못을 인정하고 처벌을 받는 게 오히려 더 빨리 끝나는 일인데, 인정하지 않고 버티기만 하니 절차는 더 길어지고, 그 부담은 결국 우리가 떠안게 된다. 당장 구금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고, 기소해서 재판으로 넘겨도 유죄 판결까지 한참 걸릴 걸 생각하니 한숨만 나왔다. 이런 순간엔 ‘이래서 검사보다 판사로 일하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일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물론 금세 마음을 다잡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유독 그런 씁쓸함이 남았다.
그렇게 기분이 살짝 가라앉은 상태로, 결국 밤 9시가 넘어서야 사무실을 나왔다. 하루 종일 긴장과 짜증이 뒤섞인 상태로 일하다 보니 몸도 마음도 축 처져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저녁으로 간단하게 만두를 데워 먹었다. 허기진 배를 채우는 데는 충분했지만 기분까지 채워주진 못했다.
그러다 얼마 뒤, 아내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비로소 그때서야 숨이 조금 풀렸다. 둘이 함께 TV를 보며 하루의 끝을 천천히 정리했다.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니 별말을 하지 않아도 묘하게 마음이 안정되는 시간이었다. 복잡하고 예민했던 감정들이 조금씩 가라앉는 느낌.
오늘은 유난히 긴 하루였지만, 그래도 하루의 마지막을 아내와 나란히 앉아 보내서 다행이고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