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잠을 자버린 주말 출근

얇은 기록마저도 쉽지 않다

by 히어로N

오늘은 분명히 아침 일찍 일어나 회사로 가서 기록을 보고 사건을 처리할 계획이었다. 눈을 감고 잠들기 전까지도 머릿속에서는 이미 8시에 출근 후 책상에 앉아 하나씩 사건을 보 있었다.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맞닥뜨린 현실은 그런 계획과는 거리가 멀었다. 늦잠이었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평소보다 조금 더 실망감이 밀려들었다. 그 실망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졌던 건 단순히 계획이 틀어졌기 때문만이 아니라, 오늘의 시간이 누군가의 배려로 만들어진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나를 위해 일부러 주말 아침 7시에 서울에 약속을 잡고 집을 나섰다. 평일 내내 내가 사건 처리 때문에 늦게 들어오고, 쉬지도 못하고, 집안일도 거의 맡기지 못하고, 여행조차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봐왔기에, 오늘 하루만큼은 내가 아무 방해 없이 온전히 일을 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시간을 비워준 것이었다. 그런 아내의 마음을 너무 잘 알기에, 정작 그 시간에 나는 침대 위에서 늦잠을 자고 있었다는 사실이 가슴을 꽉 움켜쥐는 듯 불편했다. 아내의 배려가 고맙고 감사한 만큼, 거기에 내가 제대로 보답하지 못했다는 미안함과 자책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결국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냉장고에서 꺼낸 사과를 서둘러 깎아 씹어 삼키면서 집을 나섰다. 마치 늦잠으로 망가진 책임감을 되살리고 싶다는 듯,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기록을 보기 시작했다.

오늘은 시간을 크게 잡아먹을 만한 민감하고 복잡한 사건들은 잠시 뒤로 밀어 두고, 절도, 폭행, 횡령, 사기 같은 비교적 얇은 기록들을 먼저 처리하기로 했다. 그런데 기록의 두께는 언제나 착시일 뿐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기록이 얇다고 해서 진실의 무게마저 가운 것은 아니고, 단순한 사건이라고 해서 판단이 쉬운 것도 아니라는 걸. 피의자가 부인하는 사건은 얇은 기록 안에서도 깊은 고민이 들게 하는데, 경찰에서 피의자 변소에 대해 충분하게 수사를 진행하지 않으면 결국 그 빈 곳을 메워야 하는 건 검사의 몫이 된다.


‘버려진 물건인 줄 알고 친구에게 넘겼다’며 횡령 고의를 부인하는 피의자의 진술에 대응할 관련 조사가 되어 있지 않아 추가로 수사할 방향을 다시 잡아야 했고, 농민회 회장이 회비를 특정 용도 외 사업비로 사용했다는 이유로 횡령 고소가 들어온 사건에서는 회비가 특정 용도로 모금된 것인지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아 고민이 들게 했다.

이러한 사건마다 보완수사를 정리해 적어내는 과정은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기록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하나하나 구조를 다시 세우는 일과 비슷하다. 그렇게 시간을 들이고 신경을 쏟고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주말에 출근해서 일하다 보니 점심시간에 밥을 먹으러 나갔다가 다시 회사로 돌아오는 그 시간마저 괜히 일의 흐름을 끊는 것 같아 결국 점심도 거르고 기록만 계속 봤다. 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밥 먹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졌기 때문도 했고, 어쩌면 늦잠 잔 나 자신의 과오를 만회하고 싶어 더 몰아붙였던 것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계속 일을 하고 건을 처리해도, 할 일은 여전히 산더미처럼 남아 있었다. 얼마나 갈아 넣어야 겨우 끝에 닿을 수 있는지, 그 끝이 정말 존재하긴 하는지, 그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가 금방 다시 업무에 집중하는 상태를 반복했다.


저녁 무렵, 서울에 갔다가 돌아온 아내와 함께 영화관에 갔다. 온종일 기록 속에서 머리를 조이고 있던 상태가 스크린 속 세계에서 어느 정도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팝콘을 꺼내먹는 아내의 손을 스치고 영화 장면을 함께 감상하 숨통 하나가 열리는 것 같았고, 기록과 보완수사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서 사라진 자리에는 사람답게 살고 있다는 느낌이 채워주었다.


그러나 곧 다시 집으로 돌아와 씻고 누웠을 때 현실이 떠올랐고, 피곤함이 밀려오는 와중에도 내일 아침에는 반드시 일찍 일어나 업무를 이어가야겠다는 마음이 자리 잡았다.

오늘 하루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마음을 거칠게 흔들기도 했지만, 늦잠으로 인해 느꼈던 실망과 자책, 그 감정 속에서도 결국 다시 일을 이어갈 힘을 얻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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