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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조호르바루-싱가포르 여행기 : 5일차

일정은 적었으나 생각은 많았던 여행의 마지막 날

by 전영웅

마지막날의 일정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첫째 조카 학교의 오픈데이 행사가 있어 온가족이 조카와 함께 학교를 구경하기로 했고, 간단한 쇼핑과 함께 조카들의 선물을 사주고자 아울렛 센터에 들르기로 한 것이 전부였다.

느지막히 일어나 간단한 아침을 하고 조카의 학교로 향했다. 중학교 1학년인 첫째 조카의 학교는 나름 국제학교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학비가 비싼 학교는 아니다. 한국에 들어온 국제학교의 일 년 학비에 비교하자면 4분의 1도 못 미치는 학비로 다닐 수 있는 중국계 국제학교인 것이다. 해외에 나와보니 국제학교의 개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쉽게 비유하자면, 학비가 조금 비싼 사립학교의 느낌이다. 물론, 이곳 Medini지역엔 미국이나 영국에서 설립한 최상위 부르주아들이나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비싼 국제학교들도 있다. 그러나, 자본과 교육자로서의 자질과 의지만 있다면, 저렴한 학비를 제시하며 국제학교를 설립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나라의 자사고나 외고 폐지문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고등학교부터 학력의 계급화를 초래하는 제도는 없어져야 마땅하다고 나 역시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제주와 인천 송도지역에 학비가 비싼 축에 속하는 국제학교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타지에 나와 보게 되는 교육상황과 우리나라의 상황을 비교유추해 보자면, 자사고나 외고 폐지는 유력해보인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국제학교라 명명되는 사립학교들의 출현이 예측된다. 물론, 비싼 학비의 그런 국제학교가 아닌 공립보다는 많이 비싸고 현재의 국제학교보다는 훨씬 저렴한 그런 국제학교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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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현지의 아이들의 학교일과는 조금 벅차보인다. 새벽 5시 조금 넘어 일어나 등교준비를 하고 6시면 집 앞으로 오는 학교버스에 오른다. 학교는 무척 멀다. 그냥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거리의 학교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될 정도다. 그러니까 서울 신림동에서 용산 정도의 거리를 비교적 트래픽 없이 달려 등하교를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새벽같이 등교하여 수업을 받고 점심을 먹은 뒤 집에 오면 오후 2-3시가 된다고 한다. 방학은 학과일정의 중간중간 2주씩의 짧은 방학이 여러번 있다고 한다. 그게 초등학생이던 중학생이던 비슷한 일과이다. 게다가 중국계 학교를 다니는데 체벌은 일상의 당연한 일이라고 한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 학교의 일과는 참 다행이고 행복해 보일 지경이다.

오픈데이 행사는 정말 대단했다. 학생들과 교사들이 주가 된 행사들이 곳곳의 부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룹 공연이나 무대행사도 열렸다. 먹거리들도 다양하고 많았는데, 중국과 동남아를 아우르는 스타일의 현지 음식들이 각 부스마다 넘쳐났고, 커피부터 빙수까지 후식거리도 많았다. 사람들의 인파는 먹거리 부스를 중심으로 북적였는데, 부스마다의 긴 줄을 감내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서로 떨어지면 연락할 방법이 없어 잃지 않게 붙어다녀야만 했다. 정말 좋았던 것은, 통이 아주 큰 교장선생님의 후원으로 품질이 아주 좋은 생 두리안을 방문객들에게 나누어주는 행사였다. 긴 줄 서는 것 싫고 복잡한 것 싫어하는 내가, 행사시작 20분 전부터 두리안 줄에 서서 기다렸다. 게다가 두리안을 싫어하는 조카들까지 불러모아 줄을 세웠다. 받는 대로 내가 거두워 다 먹기 위해서였다. 일회용 도시락에 두리안의 속살을 하나씩 얹어주는데, 향이 아주 좋고 노란색의 부드럽고 달콤한 최상의 두리안이었다. 그것을 뒤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교사들이 직접 쪼개어 나누어 준 것이다. 나는, 아들과 조카들이 받아온 두리안을 모두 거두어 선 자리에서 다 먹었다. 1일 1 두리안의 실천에 추가된 보너스같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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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pop이라 불리는 한국의 아이돌음악은 확실하게 팔릴만한 상품이었다. 다니는 쇼핑몰마다 아이돌음악들이 들리고, 노래방이 보였으며, 노래방 입구의 모니터에는 최신 아이돌음악의 뮤직비디오가 상영되고 있었다. 그 현상은 조카의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운동장에서 치어리더팀의 공연이 있었는데 총 4 팀이었다. 공연음악은 템포가 빠른 음악들의 조합이었는데 팝음악이 주로 섞여있었고 그 사이 한국 아이돌음악이 꼭 한 곡 이상씩 들어가 자리하고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한국은 나름 동경의 나라이자 문화였다. 조카는 반에서 유일한 한국국적이었고, 그 때문에 반 안에서 작은 동경의 대상이라고 한다. 동경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아이돌음악으로 대변되는 한국음악과 이니스프리 같은 한국 화장품 등에 기인한 한인에 대한 관심이었고, 두번째는 성형이었다. 한국은 성형 천국이자 성형기술이 좋고, 여자들은 나이가 들면 당연히 성형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카도 항상 질문을 받는다고 했다. ‘너도 크면 성형 할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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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호르바루의 가장 큰 쇼핑아울렛에서 조카들의 선물과 나의 구두를 사고 시내로 나와 처남과 나는 시장통 한 구석의 미용실에서 이발을 했다. 중국어와 영어를 구사하는 여직원의 손은 나름 만족스러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 근처의 가장 번화한 지역인 Bukit Inda에 들러 잠시 장을 보았다. Aeon슈퍼와 Tesco가 동시에 보이는 번화가 옆 상가에는 익숙한 이름의 간판들이 보였다. 봄날까페, 제주, 치맥까페, 엄마손 등등.. 한인들이 정착하여 영업중인 음식점들과 까페들이 어렵지 않게 보이는 것이었다. 나름 반가웠다고 해야 할까? 막막함을 숨길 수는 없었다. 저들은 어떤 이유로, 어떤 모습으로 이곳에서 삶을 꾸리고 있을까? 많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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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집으로 들어와 잠시의 휴식시간을 가졌다. 저녁에는 처남의 지인분이 우리 모두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는데 시간이 좀 남았기 때문이었다. 잠시 집에 있는 동안 나는 호라이즌 힐 지역 내 자전거도로를 따라 처남의 자전거를 타고 30여분 라이딩을 해 보았다. 자전거를 타기엔 더할나위 없는 환경이었으나, 피팅이 맞지 않는 자전거는 금세 무릎통증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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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 무렵 우리는 처남의 지인이 초대한 곳으로 차를 달렸다. 그곳은 작은 해협을 두고 싱가포르가 건너보이는 해변마을의 낡은 레스토랑이었다. 가는 길에도 역시 마주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오토바이들이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오토바이는 태국에서의 오토바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이것은 낭만보다는 생존의 느낌이 더 강하다. 빈부의 차이가 심한 이 나라에서 생존의 수단인 오토바이를 통제할 수 없어 고속도로를 차와 함께 달리도록 놓아둔다. 인상적인 모습은 오토바이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필수나 다름없는 물품이 있다. 그것은 비교적 두터운 겨울점퍼이다. 라이더들은 이것을 점퍼의 등을 가슴쪽으로 돌려서 팔을 넣어 입는다. 그러니까 달리면 점퍼가 라이더의 팔과 몸통 앞면을 가리는 형국이다. 왜 저렇게 입고 다니냐고 물어보니 이 더운 나라에서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다보면 추워서 그런다고 했다. 부자들은 추운 나라로 눈구경을 위해 두꺼운 옷을 장만할 때, 가난한 이들은 일하러 다니느라 춥지 않기 위해 두꺼운 점퍼를 장만한다. 나름의 생각이 많아지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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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남의 지인은 사업가이자 목사님이었다. 우리를 이끌고 도착한 해변의 레스토랑 주변의 풍경은 생소함과 긴장을 유발했다. 그곳은 개발의 손끝조차도 닿지 않은 듯한 낡은 풍경이었고, 그 안에서 크고 작은 아이들이 검은 얼굴과 맨발로 진흙바닥과 웅덩이를 개의치 않고 밟고다니며 놀고 있었다. 판넬 같은 재료로 대충 지어 만든 네모난 집 안에는 커다란 브라운관 티비가 깜빡이고 있었다. 그 집들은 반은 땅 위에, 반은 나무지지대에 의해 물 위에 떠 있었다. 가난한 동네인가보다 정도로 이해하고 차에서 내렸는데, 충격적인 장면은 그 때부터였다. 목사님은 갑자기 지갑을 꺼냈고, 그 광경을 본 주변 아이들이 목사님에게 달려들었다. 목사님은 영어로 조금 떨어져라, 줄을 서라 주문하며 아이들에게 지폐를 하나씩 나누어주는 것이었다. 뭐랄까, 이질적이고 조금 우월적인 느낌의 광경이었다. 그 광경에서 무얼 읽어야 하는지 잘 알 수 없으면서도 가벼운 거부의 느낌이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목도했던 광경의 이해는 어렵지 않았다. 그들에겐 그런 날것의 도움마저도 절실한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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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ang Asli.. 원래 있던 또는 최초의 사람들이란 뜻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말레이시아라고 명명된 땅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원주민들의 후손이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은 말레이국적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했다. 국적이 없고 국민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니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가 없고, 주민들은 당당한 직업을 가질 수 없다. 그러니, 특별한 자격조건이 필요없는 자리에서 얼마 되지 않는 보수를 받으며 일하면서 생계를 꾸린다고 했다. 국적을 부여받지 못하고 국민으로서 존재하지 못하는 이들이, 마치 국경을 바라보는 땅끝에 걸쳐있듯 살아가는 모습은, 국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미얀마의 로힝야족 탄압도 마찬가지이다. 역사적 이유가 있다 한들, 국경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당연할 건데, 국경안에서 살아왔음을 인정하면서 국적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의 폭력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반대로 생각하면, 원래 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터전이 국경이라는 가상의 선 안으로 수렴되고, 국가의 영향력을 피할 수 없게 되었는데, 국민으로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부당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국가라는 존재의 정체성과, 국가가 가지는 힘과 폭력의 정당성은 대체 어느 수준까지 인정할 수 있는 것인지 고민이 일었다. 고민이 연장되면 강정 해군기지와 성주 사드배치의 문제까지 이어져서, 국가는 정말 그러해도 되는가, 또는 그러할 수 밖에 없는가까지도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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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완전히 저물어 좁은 바다 저편의 싱가포르가 보이지 않았고, 어두운 불빛과 낡은 나무와 슬레이트 지붕 아래 쥐들이 오가는 아주 인상적인 곳에서 우리는 크랩요리와 중식요리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사님의 목소리는 활기가 가득했고 당찼다. 나오는 길에도 우리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자신이 나오면 차를 바짝 대어 따라오라고.. 동네 아이들이 일부러 차 앞을 막거나 몸을 부딫혀 문제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긴장하며 바짝 따라 나서는데, 길 옆의 아이들은 연신 ‘투 달러’를 연발하며 돈을 요구했다. 그렇게 가난이 어둠 안에서도 부유하는 동네를 벗어나 얼마 안되어 도로는 비포장에서 포장으로 바뀌었고, 경비들이 입구를 지키는 주택촌이 나왔다. 그 앞에서 목사님과 작별인사를 나누었고 우리는 지나는 길의 새우낚시터를 구경했다. 55링깃에 세 시간이라는 새우낚시터에서는 돈을 주면 빌려주는 작은 낚싯대의 작은 바늘에 가느다란 지렁이토막을 꿰어 새우를 낚는 형식이었다. 낚싯대로 새우를 잡는 것도 생소했는데, 사람들은 정말 그렇게 새우를 낚고 있었다. 새우는 타이거새우 종류였고, 물은 항생제를 얼마나 섞었는지 짙푸른 색이었다. 거기서 잡은 새우들을 살림망에 넣어 거두어가는 한 사람의 표정은 아주 밝았는데, 담배냄새가 멀리서까지 진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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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가기 전 다시 Bukit Inda로 나아가, 아이들은 슬러쉬를 사먹고 나는 마지막날의 두리안을 샀다. 시장의 두리안에 비해 번화가의 두리안은 스쳐가는 관광객을 대하듯 비싸고 맛이 조금 별로였다. 포장을 해서 집으로 들어와 역시 일본 슈퍼에서 비싸게 구입한 하이네켄 맥주와 함께 마지막날의 밤을 마무리하였다. 다음날 새벽 5시면 나를 창이공항까지 데려갈 차가 올 예정이었다. 나의 여행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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