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사루 해변에서 코타 팅기를 거쳐 푸테리하버로 이틀간의 여행기..
느지막히 일어나 짐을 챙겼다. 오늘 시험일정의 마지막이자 내일부터 방학인 조카들이 하교하면, 우리는 바닷가로 1박 2일의 여행을 떠날 예정이었다. 데사루(Desaru)해변으로의 여정이었다. 원래의 일정은 이것이 아니었다. 태평양으로 나아가 다랑어 낚시를 해보고 싶다는 내 바램을 우연히 흘렸다가, 아내는 처남과 함께 거창한 일정을 계획했던 듯 했다. 띠오만 섬에 가려 했던 듯 했다. 조호르바루에서 2시간을 달리고 다시 2시간을 배를 타고 들어가야 나오는 비교적 큰 섬은 말레이시아의 투박한 바닷빛과는 달리 청명한 바닷빛이라 했고, 나는 거기서 배를 타고 낚시를 하면 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다랑어낚시는 하루이틀로도 어려울 수가 있고, 더군다나 가족들이 모두 몰려간 휴양지에서 나만 잠깐 배를 탄다는 것도 서로에게 어색한 일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번 일정에서 다랑어낚시를 깨끗하게 포기했고 그것을 아내에게 전했다. 그렇게 수정된 일정은 데사루 해변이었다.
전날의 운전경험이 우리의 여정을 여유롭게 했다. 두 식구가 모여 총 8명인데다 짐이 많으니 한 차로 움직이기가 무리였던 것이다. 다행히 내가 전날의 작은 차를 짐차로 운전하는 걸로 하고 집을 나섰다. 늦은 아침이자 이른 점심으로 가까운 시내의 딤섬집에 들러 배부른 요기를 했다. 그리고, 초등학생인 둘째 셋째 조카의 학교로 가서 일과를 마친 아이들을 차에 태우고, 중학생인 첫째 조카의 학교로 가서 차에 태움으로 우리의 진짜 여정이 시작되었다.
여행이 휴양지로 이루어지는 여정은 사실 덜 인상적이고 그래서 글로 남길만한 것이 없다. 유명한 휴양지나 여행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다. 물론 말라카에서 만난 주말 야시장의 번잡함이나, 동서양과 오랜 과거로부터의 시간이 입체적으로 혼재한 도시의 모습같이 나의 뇌리를 강렬하게 관통하는 경험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만 말이다. 데사루는 조호르바루에서 동쪽으로 약 한 시간 거리의 해변인데, 현지인들이나 찾아가는 조용한 휴양지였다. 오후의 중간을 관통하는 시간이 되어서 우리는 예약한 리조트에 도착했고, 아이들은 수영장에서 곧바로 물놀이를 시작했다.
리조트는 조금 낡은 분위기였고 해변을 바로 마주했다. 태평양을 바라보는 넓다란 모래사장에서는 현지인들 몇몇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물이 투박하고 깊어보여 해수욕을 하기엔 적합해보이지 않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낚시꾼 서넛 말고는 해변에서 물을 마주하는 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평일이라 그런지 리조트도 한가한 편이었는데, 아랍인 중국인 말레이인 등등의 현지인들 속에서 한인은 우리 두 가족이 전부였다. 처남과 나는 현지 낚시꾼들을 보고 낚시가 살짝 동했다. 그래서 물어물어 차를 타고 낚시장비를 파는 가게를 찾아가 장비를 구입하려 했지만, 아무래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일이 될 것 같아 구입을 포기하고 돌아왔다. 그렇게 하길 잘 했다 싶은 것이, 어둑해지기 시작한 저녁부터 데사루에는 폭우가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폭우는 완벽히 어두워진 밤까지 두어 시간을 내리다가 그쳤는데, 이후에도 벼락이 내리쳐서 낚시는 사실상 불가능했던 것이다.
리조트 옆의 타이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우리는 저녁시간을 이야기를 하며 보냈다. 벼락이 종종 내리치는 밖을 바라보며 술을 마시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미리 사간 맥주를 마시고, 여정 첫날 포레스트 시티에서 구입한 와인을 마셨다. 울프블라스 블랙라벨 쉬라즈는 그날 밤의 한적하고 습한 밤분위기와 나름 잘 어울렸다고 생각된다.
다음날 아침 조식을 먹자마자 아이들은 다시 수영장으로 들어갔다. 수영장은 다양한 인종의 집합소였다. 동시에 다양한 패션의 전시장이었다. 백인과 흑인을 제외하고, 피부가 검고 털이 덥수룩한 아랍인부터 조금 덜 검은 현지 말레이인들 그리고 중국인과 우리같이 황인종들이 뒤섞여 수영장에서 놀았다. 조카들같이 수영복이라기보다는 간편복에 가까운 물놀이복부터 시작해서 팬츠, 비키니가 있었고, 검은 히잡으로 온 몸을 감싼 아랍여성들의 무리까지 다양한 패션들이 공존했다. 특히 검은 히잡으로 몸을 감싼 아랍 젊은 여인들은 무리지어 수영장 가장자리에 앉아 있다가 사람들이 조금 빠지니 뒤늦게서야 물에 들어가 자기들끼리 놀기 시작했다. 미묘한 문화적 거리감이 느껴졌다.
정오시간에 체크아웃을 하고 우리는 가까운 곳에 있다는 악어농장으로 구경을 갔다. 30여분을 달려 바다와 강이 만나는 하구에 위치한 악어농장은 중국인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말이 농장이지 악어를 가두어두고 구경만 시키는 그런 곳이었다. 콘크리트 칸마다 연령대의 악어들이 무리지어 있었고, 가만히 있으면 재미가 없으니 길다란 쇠막대기를 든 아이가 맞은편을 따라다니며 봉으로 악어를 건드려 움직이게 했다. 수령은 2-3년생부터 해서 150년 된 악어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한바퀴를 돌아 구경을 하고, 우리는 가까운 작은 강변마을에 내렸다. 하구로 길게 뻗은 정자에서는 동네 할머니들이 낚시로 전갱이 비슷한 것을 낚고 있었고, 통발을 넣어 게도 잡고 있었다. 하옆으로 보이는 뻘 가장자리엔 모스크가 보였고, 멀리로는 건설한지 얼마 안되어보이는 다리도 보였다. 동네 주민들과 부근 마을에서 교통여정상 거쳐가는 사람들만 보이는 한적한 동네는 작고 고요했다. 보이는 몇군데 식당 아무데나 들어가 현지식 요리하나 주문해서 맥주를 마시는 건 어떨까 싶었지만, 그럴 수 없음은 자명했다. 우리는 다시 늦은 점심을 먹으러 출발했다.
일정은 코타 팅기(Kota Tinggi) 폭포를 보러 가는 것이었다. 그 전에 코타 팅기를 흐르는 조호르 강의 반딧불 포인트에 있는 중식 식당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 것이다. 낮이니 당연히 반딧불을 볼 수는 없었고, 진한 흙탕물에 쓰레기가 중간에서 줄을 지어 떠다니는 강 옆의 식당에서 우리는 점심을 해결했다. 전날의 비로 크랩을 잡을 수 없었다며 크랩요리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수그러뜨렸다.
코타 팅기 시내를 관통해서 산 속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로드킬 당한 원숭이 한 마리가 도로에 쓰러져 있었다. 여기는 원숭이가 사는 동네임을 문득 깨달았다. 작년에도 놀러간 휴양림에서 원숭이를 만났었다. 그렇게 한참을 들어가 폭포 입구에 도착했으나, 입장료가 있었는데 사기업에서 리조트 이용료까지 포함하여 폭포입장료를 계산해서 무척 비쌌다. 자연경관을 개인이나 기업소유로 허가할 수 있는 건가? 의문이 들었지만 여기는 내가 사는 나라가 아니었다. 폭포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보기로 하고 조금 아쉬운 마음에 돌려 나오는데, 때마침 원숭이 무리와 마주쳤다. 30여마리의 원숭이 떼가 도로에 나와 앉아있는데, 우리가 차의 속도를 줄이다가 멈추자 다들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원숭이 무리들은 구분하기가 쉬웠다. 일단 우두머리 수컷은 딱 보기에도 덩치가 제일 크고 앞장 선 위치에 있고, 그 뒤로 고만고만한 것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개중에는 이제 막 새끼를 낳아 배에 새끼를 매달고 다니는 암컷들이 너댓마리 보였다. 그래, 폭포대신 원숭이라 반갑고 고맙다는 마음이 들어 가지고 있던 쌀과자를 하나하나 던져주었다. 우두머리의 눈치를 보느라 주변 것들은 쉬이 접근하지 못했고, 새끼를 배에 매단 암컷 두어마리가 용감하게 달려들어 쌀과자를 받아 먹었다. 대부분은 우두머리가 채어 혼자 먹는 것이었다. 차 안에서 무리들을 보며 조우하고 우리는 다시 여정에 나섰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조호르바루 중심가를 관통하여 집으로 향하다가 나온 김에 아예 저녁까지 해결하기로 하고 우리는 집 근처의 푸테리 하버(Puteri Harbor)로 향했다. 오징어 튀김이 맛있다는 집이 있어서였다. 싱가포르와 마주한 조호르바루의 해변은 곳곳이 급격한 개발로 변해가고 있었다. 바다를 메워 도시급 휴양거주 상가를 만들겠다는 포레스트 시티를 비롯하여 이곳 푸테리 하버나 당가 해변 등등.. 마치 높은 빌딩과 상가들로 싱가포르를 가려버리겠다는 듯이 무섭게 변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급격한 개발이 이루어지는 만큼 자본의 투자와 흐름도 상당한 규모였고, 규모만큼 막대한 자산가들이 오가는 동네가 된 것이다. 푸테리 하버의 상가와 그 앞의 요트정박장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일단 분양이 되던 말던 짓고 보자는 듯 엄청난 수와 부피의 건물들이 건축중에 있었고, 이미 완공되어 가게들이 입주한 상가엔 어둑해진 저녁의 분위기를 즐기러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정박장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수억대는 되어보이는 초호화 요트들이 줄을 지어 정박해 있었고, 요트를 구입하려는지 아랍계 대가족들이나 중국계 대가족들이 요트관리인의 설명을 들으며 요트 안으로 드나들고 있었다. 수많은 풍경의 중간중간, 제복을 입은 검은 피부의 말레이인 또는 남아시아인들은 오가는 사람들에 거수경례를 하고, 난간에 오르지 못하도록 통제를 하며 무심한 표정으로 제 할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급격한 개발로 자기가 살던 터전을 잃어버려 그랬을까? 길이가 1미터가 조금 안되는 길다란 도마뱀 한 마리가 가로수와 벤치 아래 덤불사이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다가 어슬렁거리며 햇볕에 데워져 아직도 따뜻한 바닷가 난간석에 오르더니 몸을 낮추고 데우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완전히 어두워진 시간, 다시 판단시장으로 차를 몰아 이 날 분량의 두리안을 사서 먹었다. 생각해보니 전날 하루 두리안을 먹지 못했고, 그래서인지 시장 두리안가게에서 두 개를 쪼개어 먹은 다음 하나를 더 사서 포장해 집으로 가져가 먹었다. 1일 1 두리안을 하루때문에 실천에 실패했지만, 양으로 보아서는 실천에 충분한 셈이었다. 이틀간의 근교 나들이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