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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Feb 21. 2020

[독후감] 세실의 전설

  2015년 7월 28일, 전 세계 언론은 한 사자의 처참한 죽음을 알린다.  짐바브웨  황게 국립 야생공원 내에서 살고 있던 사자 세실이었다.  미국의 치과의사 월터 팔머는 우리 돈으로 약 6천만 원을 내고 합법적인 사냥 패키지를 구입했다.  사냥 가이드인 테오 브롱크 허스트는 죽은 코끼리 고기를 야생 국립공원 경계 바로 바깥에 두고 사자를 기다렸다.  옆에서 같이 기다리던 월터 팔머는 사자가 나타나자 미리 장전해 둔 석궁을 쏘았다.  사자는 바로 죽지 않았다.  놀라 도망을 갔지만 출혈이 심해 뒤쫓은 인간들에 바로 추격당했다.  그리고 걸음을 멈춘 수풀 안에서 목숨을 잃는다.  2015년 7월 2일이었다.    


  사자를 죽이고 난 후에 가이드는 당황해한다.  목에 걸린 GPS 감시기 때문이었다.  사자의 목과 가죽을 재빨리 처리하고 월터를 먼저 보냈다.  그는 감시기를 나뭇가지에 걸어 둔 후, 몇 시간 후 다른 이를 보내 감시기를 들고 주변 반경 몇 킬로 이내를 걷게 했다.  사자의 행적을 가짜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2015년 7월 4일, 감시기를 철로에서 부수어 버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죽인 사자는 국립공원 관리인들과 수많은 연구원들의 관심을 받고 있던 사자 세실임이 드러난다.  월터 팔머의 사냥 목적은 단순했다.  트로피 헌팅이었다. 

  세실의 죽음은 야생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에 상당한 변화를 주었고, 그들이 함부로 목숨을 빼앗기지 않도록 제도적이고 구체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관심을 받는 대상이 이미 사라진 후에야 제대로 된 변화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어리석음은 여전하지만, 다시 우리는 그거라도 다행이다라는 뒤늦은 후회를 반복한다.  그리고, 합법이라는 근거로, 테오 브롱크 허스트는 무죄 선고를 받았고, 미국인이었던 월터 팔머는 기소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단지, 국제적인 비난의 대상이 되어 그는 운영하던 치과를 닫을 수밖에 없었을 뿐이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바라볼 때, 크게 두 가지 시선으로 나뉜다.  동물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와, 인간과 동물은 공존이 가능한가.  여기서는 주로 야생동물을 의미한다.  시선은 쉽지 않다.  월터 팔머의 목적은 취미였기 때문에, 그의 행위를 포함한 트로피 헌팅 자체를 비난하기는 아주 쉽다.  단순히 존재의 목숨을 재미로 빼앗는 행위는 비도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재미나 여흥으로 야생동물들을 마주하기도 한다.  인간이 정한 합법이라는 테두리 내에서 말이다.  당장의 나 자신만 해도 낚시가 취미이다.  얼마나 잡을 것인가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필요한 만큼만’이라는 모호한 기준을 두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합리적인 기준이지 알 수 없다.  수십 마리를 낚아 올려 과시하는 모습이나, 바늘을 물고 올라온 작은 물고기들을 귀찮다며 내동댕이치는 낚시꾼들에 대한 양심적 불편함 정도에서 머물 뿐이다.


  동물과 인간의 공존 문제는 내가 사는 섬에서도 자주 고민된다.  노루의 증가로 밭작물이 피해를 보니 보호종은 어느새 유해조수가 되어 사냥을 통해 무분별하게 개체 조절을 당한다.  이 책에서도 이 문제는 깊이 다루어진다.  경쟁에서 밀려난 사자가 무리를 떠나 먹이를 구할 수 있는 곳은 인간의 마을이었다.  가축들을 습격함으로 배고픔을 해결하면, 그것은 습성으로 굳어진다.  인간과 사자의 관계가 악화되는 것이다.  야생동물 관리원들이 가장 고민하는 지점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사자나 야생동물의 활동영역을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그 안에서만 생존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에 대한 고민도 동시에 생긴다.  다른 종과는 확연하게 구분되어 버린 인간의 생존 방식이 생태계의 관점에서 정당한가, 그리고 인간의 생존 방식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야생동물의 침입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의 고민은, 자연이라는 거대한 순환 공간을 의식하는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난제이다.  


  짐바브웨 황게 국립 야생공원에서 사자의 생태를 모니터링하는 연구원의 이야기이다.  그는 세실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세실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사자를 연구하면서 생태계 전반을 이야기하고, 자연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피할 수 없는 난제에 대한 끝없는 고민을 한다.  세실을 잃고,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세실 이후에 세상은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 비중 있게 서술했다.  세실을 죽인 월터 팔머에 대한 개인적인 분노가 읽힌다.  하나의 사건이 우리에 주는 전환과 변화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사건의 전개과정을 통해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지점은 어디에 있으며, 사건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우리가 가져야 할 상식은 무엇인가 고민해 본다.  동시에, 사건을 통해서만 깨닫는 인간의 변하지 않는 어리석음까지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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