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의 땅은 다 뒤집었다. 삽 하나로, 하루에 한두 이랑 넓이로, 조금씩 이어갔다. 시간이 보다 여유로운 주말에 몰아서 작업하는 것과는 달리, 봄볕에 땀이 적당히 났고 몸도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삽을 쥔 손바닥에 물집이 조금 잡혔을 뿐, 몸에 별다른 신호가 없으니 오히려 마무리가 허전하고 무언가를 빠뜨린 기분이 들었다. 마지막 삽을 뜨고 허리를 펴고 한 숨을 내뱉으니, 평일 오전의 봄볕이 따사로웠고 바람은 적당했다. 추운 시기에 마당일을 할 때 입는 잠바는 이제 부담스러웠다.
텃밭 한가운데 있는 귤나무를 전정했다. 나는 아직도 귤나무 전정법을 잘 모른다. 그렇지만, 교차하는 가지들을 정리해주고 나무줄기 사이로 바람이 잘 통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는 이야기 정도는 들어서 나름의 방식으로 전정을 해 주었다. 나무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솟은 줄기를 잘라주고, 잔가지들을 쳐 주었다. 이파리가 빼곡했던 나무에 홀가분과 시원함이 생겼다.
귤나무 옆으로 구석진 자리에는 딸기 덤불이 퍼졌다. 2년 전, 네 뿌리 정도를 사서 심어둔 것이 꽤 넓게 퍼져나가서, 이제는 텃밭 자리로 넘어오려는 것들을 정리해 주어야 할 정도다. 맨땅에 퍼뜨린 딸기 덤불에 기대한 것은 딸기가 아니었다. 때마다 수풀을 이루는 잡초들 대신 땅을 덮어주길 바란 것이다. 어느 정도는 기대대로 되었다. 주말에 구석진 터를 중심으로 잡초를 거두어 내는데, 딸기가 퍼진 자리에는 잡초가 거의 없었다. 자잘한 잡초들과 돌멩이들로 호미를 놀리기 까다로운 그늘진 구석자리에서, 딸기가 퍼진 자리만큼 일거리가 줄어든다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자 만족이었다. 고개를 낮게 세운 하얀 딸기꽃들이 덤불 사이사이에서 간결하게 피었다.
텃밭 준비는 대략 마무리되었다. 시간이 지나 퇴비가 발효되면, 모종을 심기 전에 자리를 가늠하고 이랑과 고랑을 만들면 된다. 그렇지만, 나는 쉴 수 없다. 텃밭에 집중했던 시선을 텃밭이 아닌 곳들에 두어야 한다. 다시 호미를 잡고, 마당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마당 잔디 사이로 뿌리내린 괭이밥과 쑥과 다른 잡초들을 뿌리째 거두어냈다. 콘크리트를 경계로 하는 가장자리엔 마른 잔디와 잡초가 뒤섞여 작업하기 힘들었다. 텃밭과 마당을 경계로 놓은 돌들 주변 역시 잡초들이 틈새마다 무성해서 일일이 뽑아내야 했다. 반려견 녀석의 화장실이나 다름없는 자리 주변으로는 잡초들이 무럭무럭 자랐다. 민트 사이사이에서 숨어 지내듯 몰래 자란 녀석들은 일일이 솎아내야 했다. 반려견 녀석은 마당 멀리서 작업하는 나를 보고 약 올라하다가, 녀석이 닿을 수 있는 자리에서 작업을 할 때는 몸을 비비고 핥으며 놀아달라고 성화였다.
잡초관리는 일 년 내내 해도 끝나는 법이 없다. 공간은 한정되어 있는데, 작업은 끝나지 않는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 위에 주저앉아 오리걸음 하는 기분이고, 에셔의 출구 없는 현실을 걷는 것 같은 느낌이다. 잡초도 철이 있고, 작은 것들은 일일이 거두지도 못한다. 그렇게 한 번 훑듯 지나가면, 다른 자리에 무성한 잡초들이 나를 기다린다. 마당을 대충 훑으니, 그늘진 구석자리로의 잡초들이 보인다. 민트와 로즈마리 사이의 키 작은 잡초들과 무화과와 대추나무, 살구나무 아래로의 잡초들이 보인다. 주저앉아 그것들을 거두다 보면, 부추도 보이고 고수도 보였다. 그런 것들은 다치지 않게 조심하면서, 작업을 이어나간다.
주차장 진입로의 수국과 라벤더가 있는 자리까지 작업을 이었다. 이제 집 주변을 한 바퀴 돌며 작업을 해야 한다. 날마다 조금씩 천천히 해 나가니 힘들지는 않다. 그러나, 잡초를 관리하는 작업은 아마 늦가을의 쌀쌀함이 북풍에 실릴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오일장에서 사다 심은 모과나무는 자리를 잘 잡아가는 중이다. 이른 봄날 옮겨 심은 사과나무 두 그루는 긴장 속에서 자리를 잘 잡기를 기대하고 있다. 옮겨 심은 올리브나무는 이파리들이 말라 가는 중이다. 걱정이다. 뿌리를 좀 다쳤었는데 그것 때문인지, 아니면 자리를 잡느라 힘들어하는 과정인지 알 수 없다. 미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마르지 않게 양분과 물을 넉넉히 주며 기다리는 일뿐이다. 기다림 역시 몸을 놀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중요한 노동이다.